3대 기적
KTX 김천역 · 전국체전 · 혁신도시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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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도시유치 확정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김천시 공무원들 |
초일류도시 비상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다
박팔용 시장 민선 11년의 가장 큰 성과는 고속철도 김천역, 2006년 전국체전, 혁신도시 유치 3대 기적을 일궈냄으로써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1991년 고속철도 노선이 확정된 후 김천의 심장부를 관통하게 될 고속철도는 지역발전의 커다란 장애요소였다. 민선이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 온 노선변경이나 지하화 등 그 어느 것도 관철되지 않았고 그대로 있자면 두 동강난 도시의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민선이후 김천시는 고속철도 김천역 유치를 장기적 과제로 선정, 전담부서를 지정 운영하며 꾸준히 유치활동을 펼쳐왔다. 건교부를 찾아가고 전문기관에 학술용역을 의뢰해 김천이 중간역 설치장소로 최적지라는 보고서를 책자로 3천부 제작, 대통령과 중앙요로 등에 보내 건의했다.
고속철도 김천역 유치를 범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관내 160여개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명실상부한 ‘경부고속철도김천역유치범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 김천과 인근 11개 시·군지역을 대상으로 김천역 유치 서명운동을 전개해 32만 명의 서명을 받아 ‘서명록’을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요로에 직접 전달했다.
불같은 집념으로 펼친 유치노력
고속철도 정차역 유치전에서 단연 돋보여
10여 년 동안 시민과 함께 불같은 집념으로 벅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역의 의지를 결집시켜 역대 대통령, 국무총리, 건교부 장관, 각 당 대표, 중앙요로를 수백 번 방문·면담·건의한 유치 노력과 전략들은 여러 지자체의 고속철도 정차역 유치전에서 단연 돋보였다. 드디어 2003년 11월 14일! 경부고속철도 김천역사가 최종 결정됐다.
김천인 모두가 기쁨과 감격의 탄성을 질렀다. 경부고속철도 김천역 유치는 시민과 시 행정이 하나로 뭉쳐 이룩한 역사적 쾌거이며 시민승리의 표상이었다.
전국 제일의 지방자치단체로 가는 첫 단추를 훌륭하게 끼운 김천시에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은 2006년 전국체전 유치였다.
도내에서 가장 먼저 시로 승격되었지만 지역개발의 정체와 자체재정 취약으로 발전이 늦어져 운동장 시설이 노후하고 비공인규격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개최하지 못한 도민체전을 김천시보다 작은 상주, 문경, 영천, 영주까지도 치렀는데 대해 시민들은 크게 자존심 상해 있었다.
민선자치이후 시에서는 운동장 현대화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도민체전범시민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도민체전 개최는 늦었지만 어느 시보다 훌륭히 도민체전을 개최해 시민 자존심을 회복하자는데 발 벗고 나섰다. 도 관계관을 비롯한 도 체육회 이사진, 이의근 도지사를 수십 차례 면담, 건의해 1996년 38회 도민체전 개최지로 결정됐다.
또한 2000년 4월15일 주경기장 4만9천264평, 보조경기장 1만3천565평으로 총 6만2천829평 부지에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 선수실, 중계방송실, 음향조정실, 각종운영실과 성장속도와 회복력이 빠르며 잎의 촉감이 부드럽고 쿠션이 좋아 선수보호와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독일 수입 사계절 천연잔디까지 갖춘 국제공인 1종 규격의 종합운동장을 45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건립했다.
김천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2000년 도민체전은 자원봉사자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빛을 발해 역대 가장 성공적인 체전으로 평가받았다.
2000년 도민체전에서 얻은 자신감과 용기로 전국체전 유치전 돌입
김천시는 도민체전에서 얻은 자신감과 용기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전국체전 유치전에 돌입했다. 먼저 2001년 5월 경상북도체육회에 전국체전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는 한편 전국대회와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자신감과 경기운영 노하우를 쌓아갔다.
김천시보다 뒤늦게 구미시가 전국체전 유치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이를 제치고 전국체전 경상북도 단일후보지로 선정된 김천시는 대한체육회이사 개개인에게 계획서, 홍보물, 영상테이프, 시장서한문 등을 수십 차례 발송하는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지방체육 육성과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전국 일간지와 지방신문 등에 특별기고를 하는 등 끈질긴 설득을 해 나갔다.
또한 박시장이 한국체육대학 출신으로 우리나라 스포츠계를 좌지우지하는 전국 유명 체육인맥을 총동원해 전국체전 유치 로비를 벌인 일화는 후일 김천 체육사의 비화로 남게 됐다.
인구 100만의 수원시, 85만의 부천시, 결코 쉽지 않은 유치전에서 김천시는 전국 및 국제단위의 각종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탁월한 운영능력과 체계적이고 완벽한 준비와 유치활동, 시민의 염원, 단체장의 열정과 추진력 등이 높게 평가받아 우리나라 체전사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키며 인구 50만미만의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2006년 전국체전 개최지로 결정됐다.
체전사에 파란 일으키며 전국체전 개최지로 결정,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 김천을 경이롭게 생각
태풍의 폐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극복한 가운데 이뤄낸 것이기에 시민들의 기쁨과 보람은 더욱 더 컸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김천이 한국체육사에 새로운 변화와 이정표를 제시하며 부각되자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천시는 ‘역대 최고의 성공체전 개최’라는 목표아래 경기장 건립, 도로망 확충, 도시정비와 임원선수단 숙소문제 해결 등 예산과 인력을 집중 투입하고 범시민 전국체전추진위원회를 출범토록 하는 등 발 빠른 준비를 시작했다.
또한 실내체육관, 국제공인 실내수영장을 비롯한 10만여 평의 종합스포츠타운 조성 등 오는 10월 전국체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성으로 감동시키자며 혁신도시 유치에 모든 열정
2005년 12월 김천시는 혁신도시 유치라는 김천역사상 가장 큰 위업을 달성함으로서 3대 기적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민선자치 10년의 노력과 땀들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2004년부터 시장직속으로 유치기획단을 구성해 청와대, 중앙부처와 관련인사들을 300여회 방문하면서 입지적 장점을 부각시키고 혁신도시 건설의 최적지임을 알리기 위해 팜플렛, 전단지, 차량용 스티커·깃발, 베너기를 제작, 이전 및 관련기관에 건의문과 홍보자료를 520여회나 전달하는 등 혁신도시 유치활동에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었다.
비록 김천은 건교부의 평가기준별 점수로 해도 접근성 측면만 다소 유리할 뿐 대기업과 4년제 대학, 연구단지가 없어 산·학·연 협력도 어렵고 교통접근성도 엄격히 보면 타 시군이 더 유리하는 등 김천이 경북도내에서 5·6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20명의 선정평가위원들 중에는 포항, 안동, 영주, 상주, 구미, 영천, 경산, 칠곡 등 지역출신이 다 있는데 유독 김천출신은 없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박팔용 시장, 1천여 공직자를 비롯한 15만 시민은 혁신도시 유치를 위해 김천만의 특성을 내세우며 정성으로 감동을 시키자며 멈춤 없이 뛰었다.
2005년 9월 혁신도시 입지 선정을 심사하게 될 경상북도 혁신도시 입지선정위원회가 구성되자 시에서는 입지 선정위원에게 시장서한문, 김천시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도면과 분석내용을 발송하고 김천의 특성과 장점 그리고 미래상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요약분과 혁신도시 후보지 설명 도첩을 별도로 제작하는 등 후보지 신청 시에도 완벽과 차별화를 기했다.
또한 선정위원들의 후보지 현장 답사 시에도 김천시는 후보지 설명 도첩, 현황판 및 혁신도시 예상조감도 제작 비치 등 가장 체계적이고 열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립에 서야할 경상북도마저 북부권 운운하는 등
악조건 속에서 꿋꿋이 맞서
한편 입지선정 막바지에 일부 경쟁 자치단체의 경부선축 배제론, KTX김천역사, 2006 전국체전의 정부특혜론 등 도를 넘어선 견제는 물론 입지선정의 주체로서 중립을 지켜야 할 경상북도마저 낙후된 북부권 운운하며 김천을 배제하고 상주, 안동에 나누어 주려는 악조건 속에서도 김천시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 사실을 서면과 시장이 심사위원들을 수차례씩 직접 방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홍보하는 한편 경쟁상대인 어느 시·군이 혁신도시에 선정되더라도 승복하고 축하를 보내겠다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고수하며 유치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입지선정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혁신도시 김천 확정
마침내 2005년 12월13일 경상북도 혁신도시 입지 선정위원회의 입지선정 발표결과 입지선정위원 20명 중 14명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아 김천이 혁신도시로 확정됐다.
고속철도 김천역, 2006 전국체전 유치전 등을 지켜보면서 과연 김천 같은 작은 도시가 해낼 수 있을까 하던 모두의 우려를 떨치고 작은 거인 김천으로 반전을 일궈낸데 대한 관심이 혁신도시 유치전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혁신도시 김천, 그것은 민선자치 10년간의 외롭고 힘겨웠던 땀과 눈물의 결정체이자 15만 김천시민의 위대한 승리였다. 김천시 농소면과 남면 일대 170만평에 들어서는 김천 혁신도시는 2012년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김천시 2006년 예산 3천억 원인데
13개 공공기관 1년 예산은 8조원
2006년에야 겨우 3천억 원인 김천시 1년 예산에 비해 김천시에 이전해 올 도로교통·농업기술혁신·전력기술 관련 13개 공공기관은 1년 예산만 8조원에 달하며 공공기관 임직원 및 가족, 연관업체들까지 동반 이전하게 되면 3만 명의 인구증가 외에 총2조2천여억 원의 파생효과가 예상된다.
김천시는 KTX 역세권 개발과 연계해 최단시일 내 전국 최고 수준의 혁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15만 시민과 1천여 공무원이 혼연일체가 돼 노력하고 있다.
성공한 지자체 되기까지 박팔용 시장의 땀과 눈물,
시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터
민선자치 11년!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사전준비와 시대를 앞서가는 실행능력, 넓고 깊은 통찰력, 시민의 신뢰와 의지가 함께해 그동안 대한민국지방자치경영대상, 행정분야 전국 최우수시, 전국도시환경문화대상, 전국도시행정종합평가 대상, 한국조경대상 대통령상 등 전국단위 최우수와 대상만 130여회 수상했다.
시장 개인 수상으로는 전국기초자치단체장 개인평가 1위, 한국지방자치최고경영자상, 민선자치 10년 평가 기초자치단체장 부문 1위, 21세기 한국인상, 전국기초자치단체장 주민만족도 1위 등 화려한 수상실적이 그 사실을 대변해 주듯 지방자치 이후 가장 성공한 지방자치단체로 지방자치의 모범이라 칭해도 손색없는 대표주자가 됐다.
민선 11년 김천이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전국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박팔용 시장의 지도력과 추진력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는 민선 3기 동안 열정적으로 일했고 그에게는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머슴처럼 시민들을 받들고 시 전체 천 번은 족히 돌았을 부지런함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를 향한 그의 열정과 노력, 그의 땀과 눈물은 시민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받는다.
김천을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시장 박팔용은 영원히 시민들의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다.
김천의 화두 ‘멈춤 없는 신화창조
민선 4기가 7월1일부터 출범됐다. 김천의 더 큰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난 11년 김천의 발전은 전국을 놀라게 했다. 낙후의 오명에서 지방자치의 희망으로 떠오르기까지 땀과 노력, 염원과 결집력은 그 어느 지방자치단체와도 비할 수 없는 김천만의 힘이다.
김천시는 지난 11년을 발판으로 민족 대화합의 드라마가 연출될 2006년의 전국체전을 역대 가장 훌륭하고 성공적인 대회로 개최하고 고속철도 역사건립과 역세권 개발, 혁신도시 건설을 완벽히 추진해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21세기 국토중심의 신성장 거점도시’, 대한민국의 중심도시, 21세기 초일류 도시로 거듭나는 미래 김천의 큰 꿈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