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공양미 한 가마니
-쌀벌레
강순희(주부)
음력 팔월 초하루. 여름은 제 삶을 열심히 살다 가을에게 반항 없이 자리를 내어 주고 말았다.
올해는 장마가 끝난 9월 초까지 거의 매일 같이 비가 내려 사람들 마음을 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높아진 가을 하늘 아래로 날마다 변화를 주는 들판은 눈을 팔게 하고 발길을 붙잡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에 공양미가 되고 한가위 차례상에 올려질 벼들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앞 다투어 물들이기에 바쁘다. 만삭에 고개 숙이는 벼들이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는 법을 가르친다.
매월 초하루가 되면 급한 일 아닌 이상 일을 미루고 다니는 사찰이 있다. 어느 날,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기도를 마치고 공양까지 마친 시간이었다.
스님께서 “보살님! 갈 때 쌀 좀 가져가시오”하는 것이었다.
쌀은 20kg들이 포대로 사 먹고 있지만 친정이나 시댁도 아닌 절에서 쌀을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부끄럽다.
스님께 여쭈어 보니 “작은 사찰이라 공양주가 따로 없다 보니 혼자 살림살이에 손 가는 곳이 너무 많다”며 “창고로 사용하는 방에 보관했더니 쌀벌레가 좀 생겼다”는 것이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미리 마늘 몇 통을 자루에 넣어 놓았더라면 쌀의 보관 상태는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지만 거의 매일 같이 내리는 비를 쌀이라고 이길 수 있을까? 사람이 먹을 식량을 쌀벌레는 굶주림도 눈치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욕심만 내어 훔쳐 먹으니 배가 터질라 한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절에 쌀이 넘쳐나서 신도들이 막 퍼간다 생각할 수도 있다. 있을 때는 재워 놓더니 인심 쓰는 척 벌레 먹은 쌀을 이웃에게 나눠 주면 욕이나 하지 않을까 혼자 고민을 한 모양이다. 요즘은 기초생활자도 벌레 먹은 쌀은 먹지 않고 살터인데 말이다.
“어떻게 처리하기에 곤란하면 제가 가져갈게요.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린 쌀을 함부로 할 수가 있나요. 보관 방법에 따라 쌀은 벌레가 생길 수도 있지만 벌레가 생긴 지도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골라내어 가래떡이나 해서 먹으면 되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니 스님은 쌀을 주면서도 몹시 미안해하는 것이다.
한 가마니 정도 되는 공양미를 늘 동행하는 불자와 함께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반 가마니씩 거절 없이 나눠 가졌다.
‘벌레 좀 먹은 쌀이면 어때 벌레 먹은 채소들은 무농약이라 잘도 먹는데.’ 쌀자루를 그냥 방치하면 자루 속에서 작은 벌레들이 더 살 맛 날 것 같아 쌀을 양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집 뒤 베란다로 쌀을 가져가 눈에 가끔 보이는 벌레를 한 마리씩 잡아내기 시작했다.
검은 바구미도 아닌 녀석들이 쌀 속에 숨어 살 때는 천국이 따로 없더니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피난처를 찾아 바쁜 걸음으로 도망가기에 목숨을 건다. 그래 봤자 손바닥 안에서 놀 것은 뻔한 일인데 말이다.
반 가마니 정도의 쌀벌레 소탕 작전이 드디어 끝났다. 햅쌀이 아니라서 그렇지 먹는 데는 별 이상이 없으니 다행이다. 햇볕에 말리면 쌀이 빨리 건조되는 잇점도 있지만 쉽게 갈라지는 단점도 있다. 오늘 같이 통풍 잘 되는 앞 베란다에 널어놓으니 가져올 때의 쌀과는 달라졌다.
효녀 심청이는 공양미에 팔려 제물이 되어 그 갸륵한 효심에 아버지 눈을 뜨게 했지만 나는 오히려 공양미를 갖다 먹는 복 받은 사람이 되었다.
공양 올린 쌀이라 벌레들이 먼저 탐을 냈을까? 지금은 소포장 단위로 판매되어 벌레 걱정 없이 먹지만 한세대 거슬러 올라가면 장마철에 벌레와의 전쟁은 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쌀이 귀한 시절에는 보리혼식으로 끼니를 채우며 살았지만 쌀은 곧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쌀벌레는 잠시 배부른 세상을 살았지만 그래도 살고자 도망가는 몇 놈까지도 모두 잡아 수돗물 한 대야로 벌레는 오늘 제대로 홍수 만난 거다.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것에 탐을 내지 말고 남을 해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을 해하면 도리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제대로 쌀벌레처럼 물 만날 수도 있으니까.
마음에 쌀벌레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지 자주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