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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한국가요사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8년 10월 02일

시인이  쓴  한국가요사
김천에 한국 가요 진흥의 뿌리 있었네(5)
민경탁


 


 일제 치하 우리 겨레의 국권 상실 의식을 나그네의 정서에 빗대어 표현한 가요이다. 가수 백년설의 대표곡이기도 한, 일제 시대의 망명 의식과 실향의 애상을 띈 노래로 지금도 우리 대중에 나이와 계층에 큰 구분없이 애창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노래의 탄생 배경에는 이러한 에피소드가 전한다.


 


 1938년 12월 어느 추운 날, 조경환과 백년설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한국인의 사상범 관계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 ; 오늘날의 정부 제일종합청사 맞은편에 있었음)에 불려가 밤샘 조사를 받았다. 조경환은 일본 와세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반일(反日) 행동을 자주하여 곧잘 경찰서 출입을 하던 사람으로서 일본 경찰의 불순분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당시 그는 태평양 악극 가무단의 작사자 겸 극작가로서 그 악극단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밤새도록 혹독한 문초를 받고 다음날 새벽 6시경에 이르러서야 시말서를 쓰고 파김치가 되어 풀려났던 것. 인적이 드문 광화문 거리에 초겨울 새벽 공기는 너무도 차가웠다. 마치 이국땅에 내팽개쳐진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몸은 비록 내 나라에 있건만 마음은 이국을 헤매는 나그네처럼 처량해졌다.


 백년설이 말했다. “형님, 언제부터 낯익은 서울 거리가 이국보다 더 살벌해 졌습니까?” 이 말을 들은 조경환은 갑자기 무엇을 느낀 듯, 걸음을 멈칫하였다.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목로주점으로 들어갔다. 조경환은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시킨 다음 양복 주머니를 뒤졌다. 찾고자 하는 수첩은 경찰부 고등과에 압수당하고 없었다. 다시 뒤적이니 담뱃갑이 나왔다. 조경환은 담뱃갑을 뒤집어 그 위에 무언가를 휘갈겨 적어 나아갔다.


 


 낯익은 거리다 마는 이국보다
     차거워라. 가야할 지평선엔
     태 양도 없다.
     새벽길 찬서리가 뼈골에
     스미는데 …….”
 


 조경환이 조금 전 백년설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싯구를 적어나간 것이다. 두 사람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며 참을 길 없는 울분을 달랬다. 나라 잃은 설움과 이민족 통치하의 민족적 슬픔을 우회적으로 깔아놓은 노랫말은 이렇게 씌어졌다.


 조경환이 원래의 담배갑에는 이 구절을 제1절로 기록하였지만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나중에 제3절로 빼돌렸다. 그 후 곧 이 가사를 완성시켰다. “나그네 설움”이란 제목을 붙여 이재호에게서 곡을 얻어 백년설이 불렀다.


 


 1940년 2월’나그네 설움’의 레코드판이 나오자마자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이로써 태평레코드사는 창사 이래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리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당시 조선의 1년간 레코드 판매실적이 120만 장, 이 가운데 한국어 음반 판매량이 50만 장을 넘지 못하던 그 시대에 이 음반은 10만 매를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로써 가수 백년설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며, 그는 불과 1년 만에 당시의 최고 인기 가수였던 채규엽과 남인수를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명곡’나그네 설움’은 1982년 1월 일본 가수 미즈노 고오지(水野浩二)가 한국가요 앨범을 출반할 때 타이틀곡으로 사용했으며, 최근 유럽에도 전파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1999년에 내한 공연을 한바 있는, 독일의 재즈 그룹 살타첼로(Saltacello)의 두 번째 음반에도’진도 아리랑’과 함께 이 노래가 수록되었다.


 


2. 고려성, 김천에 전국 음악
    콩쿨   대회 유치하다


 


 8·15 해방 이전에 레코드회사의 문예부장 역할이란 문예활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매우 광역했다. 가요 작사는 물론 레코드 제작의 기획, 매월 새 레코드를 제작하여 판매부에 넘기는 일 모두를 맡았다. 곧 가수의 인선, 선곡, 작곡자 · 편곡자 선정, 악극 각본 창작 심지어 가수의 연습, 취입 예산 편성, 가요 취입 후의 매월 신보(新譜:새로 취입한 레코드) 선정, 선전 방법 선택, 선전 문구 검토 등등 이른바 오늘날의 프로듀서와 같은 직책이었다고 할까.


 조경환은 1939년에 박영호의 뒤를 이어 태평레코드사에서 문예부장을 맡았다. 본격적인 가요 작가, 가요 프로듀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그가 남긴 가요 진흥 업적 가운데 하나가 전국 음악콩쿨대회를 거친 신인가수 선발, 육성, 배출 사업이었다. 조경환의 배려로 나화랑도 이 무렵 가수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그 신인 가수 선발 대회의 일환으로 프로듀서 조경환은 1939년 7월 29 ~30일에 전국 음악콩쿨대회를 김천에 유치하였다. 조선일보 김천지국과 태평레코드사가 공동 주최한 이 대회는 전국 신인가수 선발대회를 겸한 것이었다. 당시 대회 개최를 예고하는 신문 기사를 보자.


 


<다음호에 계속>

관리자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08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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