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소외 극복의 의무 김수화(시인·객원기자) 태초 모든 존재는 양면성을 띈 채 태어난다. 하루는 낮과 밤으로 학문은 인문학과 이공계 두 갈래로 나뉘곤 하는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자아는 타인이 바라보는 외향과 내면의 서정적이고 한없이 나약해 벌거벗은 자아가 존재한다. 사람들 틈에 섞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소란히 스친 실바람 한 결에 고개든 자아는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곤 한다. 현대인의 밤은 너무 무거워 늘 상념을 동반하고 자신과의 완전한 소통을 절대적으로 필요시 한다. 오늘날 세계를 특징짓는 두 가지 조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세계화를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한참 떨어진 다른 지역에 영향을 주는 정도로 서로 다른 지역을 연결시키는 범세계적인 사회적 관계의 집중화’로 정의했는데 이는 인간의 상호관계가 더욱 다양해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는 관계의 범람 속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현대인을 각박한 사막으로 내몰고 있다. 비교적 규제가 자유로워진 산업은 빠른 기술 혁신을 일으켰고 사회 곳곳에서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공동체들이 붕괴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해체는 대인 관계를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경제적 재건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음울함과 절망이 유럽의 사고를 강력하게 장악했다. 더욱이 산업화는 인간이 스스로 생활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회의감을 형성해 비인격적 수치심을 소외로 전이시켰다. 과거 미국의 경제 대공황은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인간 소외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7세기 부활한 신자유주의는 시장기구의 자유를 주었지만 사물의 판단기준인 ‘시장성’에 인간마저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해 단절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린 ‘인간 소외’는 미국 발 경제 위기와 만나 악영향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근대 전후 여러 학자들은 우울함과 소외를 연구했지만 현대인의 단절은 마치 뱃속에서 잉태된 출생처럼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중성은 두 존재가 확고한 의미를 지녀야 가능한데 우린 밤은 곧 낮이 다가옴을 깨달아야 한다. 대인 관계의 홍수 속엔 아름다운 원석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이와 다차원적인 관계를 맺는 지금 사회에서 겉만 그럴듯한 속빈 강정 같은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도는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자아를 스스로 파괴하는 일인 동시에 사람의 빛을 잃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지독한 고독에 휩싸인 현대인은 아마도 4대 의무가 아닌 5대 의무를 지는 듯하다. 국방·납세·근로·교육의 의무와 ‘소외극복의 의무’말이다. 하지만 매번 찾아오는 밤에 무기력할 순 없다.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황혼이 오기 전 빛과 함께 날개를 펴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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