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직선제개헌을 위한 민주항쟁을 통해 우리는 5년 단임제의 대통령선거를 하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의 12년, 박정희 대통령의 18년간 집권을 경험했다. 장기집권 세력은 시대의 산물일 수도 있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기본권을 일정부분 통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야당과 국민들이 저항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어떻든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성장이라는 성공한 역사를 갖게 됐다.
민주주의는 서구의 왕권신수설을 무너뜨린 사회계약설의 연장선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왕의 권력은 신이 처음부터 준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의 통치를 위해 위임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국민은 왕의 학정(虐政)에 저항할 수 있다는 논리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대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 헌법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재선한 후 스스로 3선 출마를 포기했다. 그는 스스로 권력에 대한 욕심을 자제했다. 미국 대통령제의 성공을 담보하는 조치였다. 그 이후 어느 대통령도 법적인 제약은 없었지만 3선에 도전하지 않았다. 다만 루즈벨트 대통령만 1930년대의 대공황,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4선을 했다. 미국은 1951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은 3선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엘고어 후보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국민 전체 투표에서는 50만여 표를 이겼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5표 차이로 석패했다. 그런데 플로리다주(선거인단수 27표) 일부 선거구에서 개표 오류가 발견되었고 전면적인 재검표를 할 경우 결과가 뒤집혀 선거인단에서 역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정치문제에 사법부가 관여하는 것은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재검표 중지 결정을 하였고, 엘고어와 민주당은 깨끗하게 승복했다.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의 힘이 미국의 위기와 분열을 막을 수 있었다.
엘고어는 2004년,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버락 오바마가 47세의 나이에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다. 엘고어는 실패의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지구환경보호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엘고어의 권력에 대한 태도는 미국의 정당과 민주주의 정치의 감동요소가 아니겠는가? 그는 아름다운 패배자였다.
금년 10월 26일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고, 우파의 나경원 국회의원과 범좌파의 박원순 변호사가 경쟁을 하고 있다. 서울시장이라는 직책과 대통령의 직책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이번 선거는 내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우파와 좌파는 이승만의 건국의 역할, 대한민국의 정통성,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등에 관해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우파와 좌파의 정치사상적 논쟁보다는 행복한 삶의 방식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념적으로는 중도주의가 대세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성숙을 통한 선진국가로의 도약은 우리 시대의 책무가 아닐까?
안철수 교수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서울시장후보직 양보 과정을 통해서 국민들은 감동받았고, 안철수 교수를 내년 대통령선거의 후보자로 생각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권력을 쟁취하려고 악전고투하는 모습보다는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이 우리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서 양대세력의 후보는 이 시대에 걸맞은 명예로운 대결을 펼쳐야 한다. 낡은 방식의 네거티브 전략보다는 정책의 문제, 자질의 문제를 향한 정정당당한 승부를 해야 한다. 오세훈 전 시장은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통령의 권력을 포기했다.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 정치가 성숙했다는 증표일 수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헌법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후보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름다운 패배자를 보고 싶다. 또 내년 12월 대선에서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안아서 국민들과 지방이 차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통합하고, 통일을 향해 함께 전진할 수 있는 정의로운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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