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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초대석-부모님을 여의고 직지사에서 밥을 먹다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1년 11월 17일
내 고향은 경상북도 김천이다.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인구 14만의 소도시이긴 하지만 근처에 있는 고찰 직지사는 지금까지도 나의 큰 자랑거리이며 내 마음의 둥지 같은 곳이다.

직지사는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이 해마다 꼭 한번은 찾아간 소풍의 장소였다. 신라 눌지왕 2년(418년)에 창건되었다는 직지사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 삼층석탑, 대웅전 삼존불탱화 등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있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주었고, 천불선원과 설법전, 대장전 등도 절의 위엄을 더해주는 고풍스런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들어선 만덕전은 큰 행사를 할 수 있는 멋진 현대식 강당이다. 김천이 낳은 큰 시인인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을 기려 백수문학제가 해마다 직지사에서 행해지고 있다. 백수문학관은 대항면 운수리에 있다.

얼마 전 8월 6일에 나는 제3회 백수문학제에 초청강연자로 초대를 받아 갔다. ‘짧은 시의 매력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한 시간 강연을 하고 나서 개막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두 번째 강연자인 이우걸 시인의 강연이 끝나니 어언 6시 반, 저녁 공양 시간이었다.

서울서 내려간 문학인들, 김천의 여러 문학인들과 문학제에 참가한 일반 독자들과 단체로 공양을 하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의 물결이 밀려와 밥이 목에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때마침 밥은 비빔밥이었고 백설기도 식후 디저트 격으로 먹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왜 목을 막히게 했을까? 바로 이 절을 함께 둘러보곤 했던 아버지, 어머니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2007년 2월에, 아버지는 올해 4월 16일에 돌아가셨다.

저녁 공양을 끝내고 독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니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그래서 ‘내 추억의 장소’에 가볼 수는 없었고, 다른 곳에 있는 숙소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추억의 장소는 우리 가족이 해마다 한참 더울 때 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던 직지사 계곡이다. 가본 지 10년도 넘었지만 그 계곡의 차고 맑은 물은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해서 가계를 꾸려갔다. 아버지는 경찰직을 그만두신 이후 별다른 수익이 없는 사회단체에 나가시다 그마저도 그만두어 실직가장이 되셨다. 두 분이 같이 가게를 보긴 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이상과 너무나 먼 가게 일에 다소 방관자였다. 어머니로서는 살림을 하시면서 시어머니와 남편, 세 자식을 위해 가계를 꾸려가는 일이 무척 고달팠을 것이다. 고향이 상주인 어머니에게 김천은 객지였다. 정을 나눌 친구도 없었고 계 같은 것을 하지도 않아 외로운 가운데 1년 내내 가게 일만 열심히 하셨다.

가족이 직지사에 가는 소풍날은 어머니로서는 1년에 딱 하루 문을 닫는 날이었다. 설날에도 아침에 차례를 지낸 뒤 오후에는 반드시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들고 장난감을 사러 오기 때문이다. 몸살을 앓아도 가게 문은 열었고, 병원에 갈 때도 아버지한테 맡겨 가게 문은 닫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가게 문이 닫히면 1년에 한번 가는 가족 나들이 날임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싸주시는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학교 소풍 때 다른 집 아이들과 김밥을 바꿔먹어 보았지만 어머니가 싸주는 김밥의 맛에 견줄 수는 없었다. 언젠가 학교 담임선생님의 김밥을 부반장이었던 내가 싸 갖고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김밥이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데 그냥 인사치레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날 형과 나, 누이동생은 계곡 물에 참외와 수박, 그리고 사이다 병을 넣어놓고 실컷 놀았다. 놀다가 목이 마르면 과일을 먹거나 사이다를 마셨다. 아버지는 이때다 하는 기분으로 술을 드셨다. 취하면 꼭 18번 ‘번지 없는 주막’을 한 스무 번쯤 부르셨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쿠려”가 지겹도록 이어졌다. 어머니는 “아이고 그 노래 지겹지도 않수. 레퍼토리 좀 바꾸셔” 하고 놀려댔다.

금비늘 은비늘로 빛나는 그 맑은 계곡물,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황악산, 아버지의 노래, 어머니의 웃음소리……. 연로하신 두 분 모두 30년 가게 일로 심한 허리병을 얻어 다른 먼 곳으로의 여행은 엄두도 못 내셨다. 그저 직지사가 정들고 만만한 우리 가족의 여행지였다. 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직지사 계곡으로 소풍가고 싶다. 아버지의 노래와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 계곡의 물은 지금도 그때처럼 맑고 차가울까.

나는 지금도 누가 고향을 물어보면 직지사가 있는 김천이라고 대답한다. 태어난 곳은 경북 의성군 안계면이지만 자라난 곳은 김천이다. 다음번에 직지사에 가면 절밥을 목이 메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직지사 계곡 바위 위에서,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이 너무나 먹고 싶은 날이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1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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