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갑자기 어디에서 뚝 떨어진 문제인 것처럼 매스컴은 호들갑을 떨고 있고 여기저기서 그 해결 방법을 찾느라 부산하다. 경찰과 교과부, 심지어 청와대까지 말이다. 급기야는 형사처벌의 나이를 12살로 낮추자고도 한다. 그야말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대구의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논란이 봇물 터지듯 마구 쏟아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자살한 그 중학생의 부모는 두 사람 모두 교사라고 한다. 떠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폭력을 예방하기보다는 폭력을 쓰는 아이들을 격리시키고 더 강력히 처벌하자는 지금의 대응책으로는 절대로 학교폭력을 막을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학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우리들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 모두가 방관자였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봐도 도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도 가슴 아파할 줄 모르며, 잘못을 저지르고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뻔뻔한 세상이 아니던가. 우선 가정에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내 아이들과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돈 벌기에 바빠서 아이들과 같이 지낼 시간이 없다고 변명할 건가? 정말로 내 아이보다 돈이 그렇게 중한가? 그래서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내 아이를 남에게만 맡겨놓고 있는가? 아이가 유치원에만 들어가면 해방되었다고 좋아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방학이 되면 아이가 집에서 놀기만 하는 꼬라지도 보기 싫고 하루 종일 시중들기도 힘들어서 빨리 방학이 끝나 개학하기를 바라는 부모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입시경쟁을 해야 한다. 아니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죽으라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이를 꾸지람하면 공부는 하지 않고 혹시 빗나갈까 봐 내 아이가 잘못하는 걸 봐도 모른 척 덮어둔다. 도덕이나 예의는 살아가는 데 별로 중요하지도 않으니까. 왜 내 아이를 하루 종일 학교에 맡겨두는가? 그러면서도 학교를 욕하고 교사에게는 무한책임을 요구한다. 오직 공부만 강조하는 부모의 등쌀에 교사들은 인성지도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지금의 학교는 군대와 마찬가지로 어쨌든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곳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새벽부터 밤까지 최소한 하루 14시간 정도를 학교에서 지내고 있다. 어쩔 수 없어서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경찰관은 학교를 창살 없는 감옥이라 말하기도 한다. 점심과 저녁도 학교에서 먹고 깜깜한 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잠시 잠만 잘 뿐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부모와 얘기할 시간도 없다. 부모는 그런 아이가 안타까워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그저 오냐오냐할 뿐이다. 왜 학교가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가? 왜 교사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가? 가정에서 가르치지 않는 예의범절을 어떻게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가? 가정에서 아이를 꾸지람하지 않는데 어떻게 학교에서 아이를 꾸지람할 수 있는가? 부모는 어쩔 수 없으니 선생님이 대신해 달라고 한다.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이 틀을 깨부수지 않고는 절대로 학교폭력을 막을 수 없다. 공부만 잘하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게 우리들의 부끄러운 현재 모습이다. 유치원 때부터 온갖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이 사회구조를 하루 빨리 해체하고 가장 기본적인 민주시민의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인권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야 한다. 잘못하는 것은 엄하게 꾸지람도 해야 한다. 꾸지람할 줄 모르는 부모는 부모가 아니다. 꾸지람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 가족의 소중함과 내 이웃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내 친구를 따뜻하게 대하고 이웃을 배려할 줄 알며 다른 사람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수 있겠는가?
답답한 가정과 학교에서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부모와 교사를 외면하고 오직 컴퓨터와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폭력과 음란물이 넘쳐흐를 뿐이다. 사랑도 배려도 아무것도 없다. 며칠 전, 예전에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함께 TV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농부 전희식이 쓴 ‘똥꽃’이란 책을 읽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를 정신이 없는 엄마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늘 극진히 대접했다. 어머니의 자존감을 되찾도록 오직 사랑과 정성으로만 대했다. 온 방에 똥칠갑을 하고 오줌에 절은 옷이 쌓여 갔지만 그는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배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였다. 한 번도 어머니의 실수에 화를 내거나 꾸지람을 한 적이 없다. 노인의 존엄을 생각한 것이다.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큰절을 하며 어머니가 집안 어른으로서 체통과 권위를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사랑은 죽은 세포도 되살리고 정성은 통증도 경감시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노인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오죽하면 어머니의 똥칠갑을 ‘똥꽃’이라 표현하겠는가. 그는 노인의 품위와 존엄성을 모심의 최고 가치로 여기고 있었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대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더 존중해주고 더 배려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도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 어른들은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을 봐도, 여러 놈이 한 아이를 때리고 있는 것을 봐도 못 본 척 눈을 감고 그냥 지나간다. 어른답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하다. 친구에게 물고문을 자행하는 잔인한 아이들이다. 힘없고 약한 이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을 우리들이 묵인하고 방조해서는 안 된다. 정의를 가르쳐야 한다. 재벌 총수가 몇천억의 돈을 횡령했다는데 기업경영과 국가경제를 생각해서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임을 보여준다. 정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다. 아니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뉴스를 보고 돈만 있으면 적당하게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존중받지 않아도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무섭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게 제대로 풀린다. 교사들도 좀 더 아이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힘을 쓰는 교사를 학교 성적을 떨어뜨리는 교사로 매도한다고 해서 그냥 좌절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교사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학급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같은 반 친구를 전혀 소중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아이들이다. 더 큰 사랑으로, 진정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속된 말로 교사라고 해서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겠는가? 그러나 도적 불감증에 빠진 아이들을 그래도 사랑으로 품어주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교사밖에 없다. 학교 현장에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교사밖에는 없다. 잘못된 제도를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인성지도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더 열성을 보여야 한다. 교사는 학교폭력 예방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고, 이제 우리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어떤 이는 아이들에게 매를 못 대게 해서 교육을 다 망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교실에서 교사에게 ‘씨팔’, ‘좃나’란 말을 예사로 쓰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이지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그런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매로는 절대로 아이를 내편으로 만들 수가 없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니 뭐니 해서 아이들을 높여주기만 하는 게 문제라 하기도 한다,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아이들에게 무한 권력을 주고 그들의 방임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학생 자치와 참여를 통해 그들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배워 서로서로 존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접받는 사람이어야 남도 대접할 줄을 안다. 아이들을 더 존중하고 그들의 자존감을 더 높여 주어서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참에 학교에서는 인권교육을 더욱 강화해 인권조례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은 통제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인권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 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이 사회에서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억압하는 답답한 세상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이 아이들을 입시위주의 경쟁체제에서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가정이다. 첫째도 가정이고 둘째도 가정이다. 이 모든 것이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위엄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좋은 대학이 결코 아이들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빨리 깨달아야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최고이고 사람이 최우선이다. 우리 모두가 아이들을 폭력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선이 가정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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