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6-26 20:40:2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원격OLD
뉴스 > 수필

살며생각하며)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윤애라(시인)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2년 02월 09일
돋보기안경을 세 번째 바꾸었다. 시력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다. 신문은커녕 웬만한 책들도 안경이 없으면 읽지 못한다. 물에 풀어진 밥알처럼 둥둥 떠다니는 활자들 앞에서 말 그대로 눈 뜬 장님이 된 지경이라 한 번씩 막막해 질 때가 있다.

그래도 기어이 읽어내려고 하는 이 미욱함이란! 읽어 머리에 새겨지면 좋으련만 내 눈에 반사되었다 산산이 흩어질 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사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으니 활자중독증에 가깝다고 하겠다.

새해 벽두에,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도 내 물건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하여 마음을 단호하게 잡고 책과 옷가지부터 버릴 것과 둘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책을 한 권씩 폐지로 넣을 때마다 저자에 대한 송구함과, 내용에 희비가 교차하던 지난 감정, 상식의 보고로 뿌듯했던 내용들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내가 좀 더 젊었을 때의 지식과 추억이 한 박스씩 쌓여가고 어느새 비어진 책장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요즘 옷은 낡지 않으니 옷가지를 정리할 때에는 수없이 망설였지만 며칠 동안의 수고로 서랍속도 헐렁해지고 옷장 안에도 깨끗한 바람이 드나든다.

이제 저 곳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아, 나는 또 채울 것을 염려하고 있구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 되었구나, 가능한 한 끝까지 묶어두려고 하는 이 정신적 사치에 민망함이 들었다.

그러나 이전보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버리는 것에 대한 미련보다는 새 공간을 바라보는 홀가분함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또한 새 물건에 대한 욕심이 신기하게도 줄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의 여백은 오롯이 살아나고 난 그 여백에 얹혀졌다. 감히 이것을 두고, 나이를 먹어가는 소중한 덤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새해 다짐은 ‘쇄소응대(灑掃應對)’로 정했다. 물을 뿌려 쓸고 응대한다는 뜻으로, 집 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웃어른의 부름이나 물음에 응하여 상대함을 이르는 말이다.

인생의 모든 단면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속에 에너지의 형태로 닻을 내린다. 잡동사니를 걷어내면 내 존재 자체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과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다른 잡동사니를 걷어내겠다는 다짐이 일상의 크고 작은 돌부리에 자꾸 걸린다. 해서 그것이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되어 마음의 잡동사니로 남고 있다.

내 안팎은 여전히 추하고 복잡하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으로 때때로 서 있다.

물을 뿌려 쓸고 응대하는 삶의 모습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새해에 얻은 나이의 덤, 여백의 즐거움을 모질게 이어가리라. 그러면 언젠가 웃어른의 물음에 지극한 마음으로 응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부름과 물음에 조아리고 싶은 내 아버지는 아니 계시지만.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2년 02월 09일
- Copyrights ⓒ김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김천생명과학고, 청년리더 작목반 현장학습 열기 후끈..
`찾아가는 행복병원` 김천에서 대규모 합동진료..
㈜BHI건설 이근양 대표, 김천시에 고향사랑기부금 1,000만 원 기부..
조마초, 드론 체험으로 미래를 날다..
자연 속에서 쉼과 회복을!..
배낙호 김천시장, 농소면·남면·율곡동 소통 간담회..
푸른코끼리와 함께하는 학교장 지지 선언..
김천시, 상반기 신속집행 대책 보고회 개최..
한일여고 황인서 학생, 태권도[품새] 청소년 국가대표 선발..
김천생명과학고, 청년리더 작목반 현장학습 열기 후끈..
기획기사
김천시가 운영하는 김천녹색미래과학관이 2014년 개관 이래, 11년 만에 누적 이용객 130만 명을 돌파하면서 지역 대표 과학문화 기관.. 
김천시는 6월 환경의 달을 맞아 시민들의 환경 감수성을 높이고, 생활 속 환경보호 실천을 독려하기 위해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 도서.. 
업체 탐방
안경이 시력 교정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그 역할이 변화해가는 트랜드에 발맞춰 글로벌 아이웨어(eyewear)시장에 도전.. 
김천시 감문농공단지에 위치한 차량용 케미컬 제품(부동액, 요소수 등)생산 업체인 ㈜유니켐이 이달(8월)의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선정패 .. 
김천신문 / 주소 : 경북 김천시 충효길 91 2층 / 발행·편집인 : 이길용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의숙 / Mail : kimcheon@daum.net / Tel : 054)433-4433 / Fax : 054)433-200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67 / 등록일 : 2011.01.20 / 제호 : 김천신문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56,610
오늘 방문자 수 : 38,810
총 방문자 수 : 100,367,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