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 한 번 써 보는 것이 평생소원인 사람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용케 운이 따라주었는지 높은 곳에서 전갈이 왔다. 감투가 하나 있는데 한 번 써보겠냐고. 얼마나 기다렸던 감투인데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그 사람은 친구를 찾아가서 “이제 감투를 쓰게 됐으니 내 지위에 어울리게 당장 새 옷을 맞춰 입어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훌륭한 옷집 주인을 알고 있는데 어느 고객에게나 완전무결하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준다”며 한 옷집 주인을 소개했다.
그는 당장 그 옷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신중하게 그의 치수를 다 잰 다음에 이렇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알아야 할 일이 있는데 선생님은 벼슬을 하신지 얼마나 됩니까?” 벼락감투를 썼다고 대답하기가 멋쩍기도 하려니와 또 한편으로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여간 의아스럽지 않았다. 그래 그는 애써 위엄 있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아니 옷을 만드는데 내 몸의 치수만 재면 되지 그런 걸 알아서 뭐하는가?”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을 알아야만 옷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신 분은 흔히 그 감투에 걸맞게 위엄을 부린다고 잔뜩 고개를 쳐들고 턱도 치켜 올리고 가슴은 활짝 내밀고 위풍이 당당합니다. 그래서 저는 도포의 앞자락이 뒤보다 길게 만듭니다. 그래야 앞뒤의 길이가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두 해가 지나서 맡은 일에 열중하고 조금씩 이력이 나고 사리에도 밝아지게 되면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고 백성을 위해 뭣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도포의 앞단과 뒤의 길이가 똑같도록 재단해야합니다. 그리도 또 한 두해가 지나면 그는 책임감에 눌리고 격무에 시달리고 그러는 가운데 오만스러움도 가시고 겸손하게 되어 자연 허리가 굽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도포의 뒤가 앞보다 길게 만들어야합니다. 그러니까 옷이 당신에게 어울리게 만들려면 당신의 벼슬경력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월남 야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는 능력이 부족하고 경륜도 풍부하지 못한 반식대신(伴食大臣)들이 많다. 그들은 아랫사람이 말하는 대로 그냥 따라 다닐 수밖에 없다. 권위란 능력이며 행동력이 밑거름이 되어야 비로소 몸에 붙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외모로 권위를 나타내려 하고 거드름만 부린다. 엄청난 실책을 하고도 자리에 미련이 남아 미적거리다가 망신살이 뻗히면 그제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우리나라에도 감투에 맞는 옷을 재단하는 곳이 있으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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