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형편이 어려운 어느 가정의 자녀 결혼 주례를 섰다. 내가 결혼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남의 결혼 주례를 삼십여 쌍 서게 되었으니…… 언제 세월이 이렇게 후딱 흘러갔는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주례를 설 때마다 한껏 꾸민 신랑 신부가 너무나 아름답고 그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이제는 주례사를 하면서 신랑, 신부를 솜솜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하객들의 반응을 저울질하는 여유까지 챙기기도 하는데…… 행복의 문으로 들어섰으니 한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간곡하게 당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이들 세 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니…… 왜 이혼을 할까? 말할 것도 없이 행복하지 못 한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행복! 세상사람 모두가 이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공부도 더 하고 결혼, 사업도 하며 좋은 직장을 선호한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매우 애매모호하다. 그리고 그 잣대마저 천양지차(天壤之差)일뿐 아니라 상대적이어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라고 질문한다면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이름들이 오르내리겠지만 막상 그 당사자들에게 “당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고개를 저을 것 같다.
어느 종합병원 식당에 하루 일용직으로 부름을 받고 일하러 간 여인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는 정규 직원이 너무 부러워서 “참 행복하시겠습니다.”했더니 “뭐, 행복요, 우리는 병원에서 제일 밑바닥 인생 아닙니까? 적어도 간호사 정도는 되어야지요…….” 식당에 들른 간호사를 바라보며 “행복하시죠.”했더니 “우리는 의사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인데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마 행복하시겠죠.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이니까.” 의사 선생님을 어렵게 만나 “선생님 병도 고치고 돈도 많이 벌고 정말 행복하시겠습니다.” “하하, 행복요, 의사 골치 아픕니다. 환자가 많으면 너무 피곤하고 환자가 없으면 스트레스 받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적어도 원장 정도는 되어야지.” 늦은 시각 식당에 온 원장님을 만나 “원장님은 이 병원에서 제일 높으니까 정말 행복하시겠습니다.”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신경 안 쓰고 보내는 날이 하루도 없고 편안하게 잠을 자본 날이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을 보려면 병원 입구에 있는 포장마차 붕어빵 장수한테 가보시오.” 일을 마치고 포장마차에 가보니 수수하게 생긴 주인아저씨가 음악을 틀어놓고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며 신나게 빵을 굽고 있었다. “아저씨, 어째서 그렇게 신나십니까?” “예, 저는 오늘 목표액을 벌써 다 벌고 이제부터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줄 빵을 굽고 있습니다. 나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서 이렇게 신이 납니다.”
인간은 저마다 저다운 마음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그 안경의 빛깔이 검고 흐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맑고 깨끗한 사람이 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고차원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지혜를 실생활에 옮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본인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제시해 주고도 남는다.
포장마차 붕어빵 장수가 바로 그렇다. 의사나 원장도 체험하지 못하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의 조건은 돈, 명예, 권력, 인물, 지식이 아닌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육안(肉眼)과 높게 그리고 멀리 꿰뚫어보는 영안(靈眼)으로 남을 배려하면서 사는 삶 그것이 바로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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