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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청소년 백일장을 다녀와서

윤경수(작가·대항면)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3년 05월 30일
지난 토요일 강변공원을 갔었다. 오월인데도 하늘은 너무 눈부셨고 공기는 아주 뜨거웠다. 공원 안에도 기온만큼 열기가 후끈했다. 예상 외였다. 요즘 아이들이 문학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학이 뭐 하는 건가요? 아, 시험 과목이긴 하네요.” 그런 얘기들.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오동작을 일으켜 운전 내내 예민해진 신경에 오월의 더위는 더욱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현장은 공원의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삼삼오오 흩어져 글쓰기에 열중하는 중고생들로 가득 했다. 그리고 보았다. 공기 중에 머물고 있는 어떤 감정들을. 날카로운 신경을 일순간 잠재우는 그 공기의 색깔을.

그 때는 남산공원이었다. 무엇 때문에 백일장에 참여했을까. 그 시절도 여전히 입시가 최고인 시절임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괴롭지 않았다. 그 시간만큼은 매일 학교에서 느끼던, 그물에 걸려있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 아니었다. 남산 공원에 있는 수목들처럼 살아 있는 듯했고 공원 안을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된 기분이었다. 공기 또한 너무 투명하게 느껴져서 피부에 닿는 감촉이 레몬처럼 상큼했다.

원고지를 받고 글 제목을 보면서 심장은 비행기가 되어서 날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흥분해서 창공을 날면서도 동체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요동치기도 했다. 지금은 소설가가 되었지만 당시 나는 시를 썼다. 머릿속에는 그동안 해오던 습작 노트 속의 온갖 시들이 떠다녔다. 평소 좋게 생각했던 시어를 준비해간 연습장에 나열하기도 했다. 시험지에 답안을 다는 것처럼 정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엇이든 다 정답이 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언제나 정해진 답을 쓰지 못하면 틀린 답이 되는 세상에서 무엇이든 내가 선택한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

앉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강변공원 주변을 서성거렸다. 가급적 시선을 한참 글쓰기에 열중한 아이들에게 두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어떤 기분일까. 저 아이들의 감성은 하늘을 날고 있을까, 아니면 바다를 유영하고 있을까. 얼마 전부터 나는 신문을 보지 않고 있다. 뉴스를 보더라도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 대문에 걸린 큰제목만 스쳐 지나간다.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들도 보지 않는다. 내가 나이 든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근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바꿀 힘을 상실했음을 자각해서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잔인한 세상, 무서운 세상, 불합리한 세상, 이기적인 세상, 세상 앞에 붙는 온갖 수식어는 부정의 관형어 일색이다. 백사장에 검은 자갈들이 가시처럼 박혀 있는 세상이다. 자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이다. 나는 매일의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정보로 접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백일장은 끝나고 심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중등부 산문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느 새 비문과 맞춤법, 원고지 표기법, 악필에 신경 쓰이는 전문 글쟁이가 되었나 보다. 사실 내용도 요즘 추세를 반영하듯 설명문이나 논설문들이 다수였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입시를 위한 논술 교육의 충실한 수강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조금씩 입가에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글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상이 있었다. 순수와 평화와 소망과 희망이 때론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공존했다. 나와 가족과 사회가 함께 있었다.
입상자들의 선정을 마쳤을 때 입가에 어린 내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5월답지 않은 한여름 기온에 몸서리치던 피부가 더 이상 경직되어 있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전과 다른 생각이 철 이른 매미처럼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다.

세상이 바뀐 건 아냐.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예전보다 검은 자갈의 숫자가 더 많아졌을 뿐이지, 세상은 여전히 백사장이지 않은가. 곱고 보드라운 흰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그리고 여전히 거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예술이 있지 않은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3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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