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펼칠 때마다 폭염에 대한 기사가 몇 개씩 꼭 나온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밀양이 38.4도로 40년 만에 최고의 폭염을 기록했다고 한다. 청도군의 한 농가에서는 더위에 지친 소에게 얼음을 먹이는 사진을 올려놓았다. 또 잠 못 드는 열대야가 보름 넘게 지속되다 보니 열대야 속 수면요령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금모으기 하듯 집집마다, 공장마다 전기를 아끼자는 이야기도 계속 되고 있다. 관공서에는 에어컨을 끄고 승강기 가동을 줄여 땀범벅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더위는 매년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아주 큰 난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앙보건소 역시 최대한 에어컨을 자제하고 가능하면 전등도 끄고 있다. 만성실에 방문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이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오셨는데 시원하게 식혀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대신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을 드리면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때는 이미 더위는 뒷전이다. 그런 것을 보면 덥다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덥기만 할 뿐이고 다른 방법으로 열기를 낮추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체감온도 10도 낮추기>
* 들어주기
78세인 박정길 어르신은 두 달 전에 위암과 폐암 수술을 동시에 했다. 건강검진에서 암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에 놀란 마음이 먼저 떨려서 눈앞이 캄캄했다는 얘기를 하신다. 퇴원한 지금에는 자식들 누구도 빈말로라도 입원비는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 않아 섭섭하다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주에는 생일인데 전화 한 통화 없었다면서 자식 다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하신다. 난 맞장구도 칠 수 없고 그저 부부가 최고라며 사모님께 잘해드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알지만 성질이 급해서 자꾸 아내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하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배려하고 이해할 것 같은데 우리는 약한 인간이기에 모두 다 내려놓을 수가 없다. 언제까지나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같아서 이리저리 흔들리고야 만다. 안부전화와 따뜻한 몇 마디의 말이 더위를 10도는 내려주겠다.
* 들려주기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건지 친구들에게서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밴드 초대이거나 동창회를 연다는 문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다른 친구를 통해 번호를 알았다며 꼭 만나고 싶다는 친구. 단체 문자는 답장을 안 해도 무관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촉의 문자가 와도 선뜻 마음이 일어서지 않는다. 20여 년 동안 연락 없이 지냈던 친구의 목소리는 다시 그 시절에 빠져보는 시간이 되었으며 서로 궁금한 질문만 하다가 결국은 조만간 만나기로 날짜를 잡고서야 통화를 끝냈다. 습관적인 문자보다 내가 먼저 마음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들려주면 반가움은 배가 되며 더위도 한풀 꺾인다. 그 외에도 복날 몸보신은 좀 했느냐는 전화라든지, 노인복지관 노래방에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시원해진다.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강조하며 얼마나 맛있게 부르시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보면 천사 미하일이 벌을 받고 땅에 내려와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사람 안에는 사랑이 있으며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 안에는 분명 사랑이 있다는 증거이다. 사랑으로 대한다면 땀을 흘리면서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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