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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IMF로 다니던 직장이 부도가 나서 백수가 된 남편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가 보다. 아침만 먹으면 출근하던 사람이 두 아들 학교에 가고 마누라 우유 배달 가고 나면 혼자 덩그러니 집에 있으니 짜증만 늘어 우유 배달하고 온 마누라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나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가장이 일자리라도 알아보러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게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남편도 일 나가면 집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다가 집에 있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한 둘이 아니었는지 잔소리 하는 날이 잦았다. 서로 부딪히기만 하면 짜증이 나 다투고 말도 퉁명스럽게 했다.
그런 어느 날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통화가 길어지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을 더 화나게 했던 것 같다. “그만 끊어!” 하는데도 친구가 반가워하며 전화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아 끊자 소리를 못해 계속 통화를 하는데 화가 난 남편이 듣다못해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도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참 만에 돌아온 남편이 식식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중요한 전화라도 오면 어떻게 하려고 아직도 통화하고 있어!” 하며 전화 코드를 확 빼 전화기를 마당에 던져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이 차를 타고 시내 나가서 집으로 전화했는데 그때까지 통화 중이었고 집에 왔을 때까지 두 시간이 넘게 통화를 하고 있어 화가 났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친구와 재미있게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를 끊으면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남편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그 와중에 친구 걱정만 했다.
결혼해서 10년 넘게 친구들도 못 만나고 두 아들 키우며 열심히 살아주었는데 돌아오는 대우가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쫑알거리며 대들었다.
그랬더니 “이게 잘못했다고 빌어도 시원찮은데 대들어?” 하며 내가 부업해서 장만한 원목 밥상을 던져 다리가 부러졌다. 부러진 밥상을 보니 “차라리 나를 때리지, 힘들게 장만한 상을 던져?” 하며 나도 이렇게는 못 산다. 다리 부러진 상과 마당에 던진 전화기를 불살라 버렸다.
남편도 그제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놓고 나니 나도 집에 들어가기 쑥스러워 논두렁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며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며 실컷 울고 나니 밤이 되었다.
남편은 두 아들을 닦달하며 “이놈들아 엄마가 없어졌는데 안 찾고 뭐 하는 거야” 하는 게 아닌가! 나 때문에 죄 없는 애들만 혼이 난다 싶어 집에 들어가려니 용기가 나지 않아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다 더 어두워지길 기다렸다가 몰래 집에 들어가 안 쓰는 창고 방에 숨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남편이 어떻게 알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이불을 확 걷어치우는 바람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싸움은 거기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두 아들은 학교 가고 나는 우유배달을 나갔다. 집에 와보니 남편이 전화기와 장화를 사왔다. 집에 있으면서 보니 구멍이 나서 물이 들어오는 장화를 신고 다니는 게 안쓰러워 사왔다고 했다.
그런 남편 마음도 모르고 전화기를 던지고 부업해서 장만한 밥상을 부순데 격해 맞장을 뜬 나를 보고 남편은 절대 좋은 성격은 못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동안 착하고 얌전한척 양의 탈을 쓰고 살았는데 성격이 들통 났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 그리고 동창회에 가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그때 왜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고 사과 한마디 없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렇게 전화통화 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 못 할 것 같다. 고향친구와 장장 두 시간 통화이후 남편과 대판 싸움을 하고 그 친구는 백혈병에 걸려 동생에게 골수이식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은 하루 종일 있어도 무선전화 한통 오지 않는다. 전화통화도 한 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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