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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김천신문 |
스티븐 포스터와 질 나마크 박사가 같이 지은 책의 이름입니다. 내용을 보지 않아도 그 제목에 흐르는 사랑의 힘과 사랑을 통한 생명에 대해 작가의 넘치는 학문적 체험과 영성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투표소 저 앞에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 쓰인 포스터를 보던 사람이 “개~뿔”이라며 비웃듯 던집니다. 범죄자들이, 그것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어 어긴 법이 아니라 폭행, 음주운전, 소란, 의료법 등 어기지 말아야 할 질서법까지 어긴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 그러면서도 서로를 진흙탕 구덩이에 밀어 넣는 모습을 보고 비아냥하는 것이겠지요. (멀쩡한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는) 차마하기 못할 비난과 정쟁이 아닌 일에 벌리는 악다구니가 어찌 민주주의 꽃이 될 수 있느냐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투표는 이루어졌고 당선인은 확정되었습니다. 진흙탕에서 연꽃으로 피어나는지, 아니면 썩은 개울물을 가시 엉컹퀴보다 더한 독초가 되어 강물을 라떼로 만들지는 오로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결정했습니다.
내용을 차지하고라도 한 바탕 웃음으로 떠들썩한 잔치를 여는 이도, 아픔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모두가 이런 결과를 만든 지역민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감사에 앞서 먼저 이 말을 던지십시오. “여러분들이 지역을 사랑함으로 저에게 생긴 좋은 일이 되엇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사랑에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일이 여러분에게 생기게 되기 위해 힘을 다할 것입니다”라고요.
이제 당선되신 분이 돌려드려야 할 사랑은 이러합니다.
첫째는 다수의 선택에서 생각하는 소수에 대한 사랑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만이 우리 지역의 문제해결의 정답이 아닙니다. 도덕이 바탕이 된 정의에 대한 해석과 그 해석에서 나온 방법만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리주의라는 참 편한 정치원칙, 마치 정당한 듯 보이는 정치철학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는 소수자와 그들의 가족의 정의, 약한 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빕니다. 마이클 샌덜의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반드시 읽고 임기를 시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는 지키는 사랑입니다. 하라고 떠밀어서 한 약속이 아니고 귀하들께서 스스로 한 약속이 아닙니까? 말 뿐이 아니라 종이로, 심지어는 노래로까지 약속하여 맹서한 공공의, 공개적인 약속이 입에 발린 꿀처럼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지키지 않는(않아도 되는) 약속이 되어 어린이들에게 ‘선거에서의 공약이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가 곧 높은 사람(?)이 되는 비도덕, 비 윤리의 극치’라는 잘못된 행위를 이제는 끊어내시기를 강청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난 여름당신이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처럼 귀하의 모든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내용 그리고 사람됨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셋째는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자기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의 도리로 알았는데 어쩌다 입이 닳도록, 온갖 선거 홍보물을 가득 자기 자랑이며 자기 과시로 채우고 앞 다투어 우기며 자랑하시는지요?
그래도 그리 노력하셨으니 참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들을 혼자의 힘으로 가능했었습니까? 이 세상이란 절대로 혼자서 해결하는 일이란 존재할 수 없게 된 구조이고 비록 한 개인이 스스로 먹는 밥이며 배설하는 지극히 단순한 생활조차 숱하게 많은 이들의 노력과 협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이 말은 귀하가 했다고 자랑했던 그 일은 귀하와 대립의 각을 세우면서 경쟁했던 사람의 노력도 분명히 있었고 그들의 지지자, 그들의 가족의 힘이 귀하의 성공에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이제 귀하께서 약속하신 일들을 반드시 지키시겠다면 우선 귀하를 반대했던 사람을 품고 감사하며 같이 손잡는 일, 함께 만드는 우리 동네를 위해 사랑하면서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지역을 사랑하셨지만 지역민이 알아주지 않아 쓴 잔을 마시게 되신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드립니다. 정말 지역을 사랑했는데 왜 나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원망하시지는 않으신지요.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절치부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사랑의 방식에서의 문제점이 있거나’ ‘잘못 사랑’ 시작하지 않고 ‘공천을 주지 않았던 정당’을, ‘남보다 더 쓸 돈이 부족했음’을,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상대를 정확하게 볼 줄 모르는 민심(?)을 탓하는 것’은 치졸한 모습을 더욱 가중시킬 뿐입니다.
겸허하게 자신에게 저울을 내 밀며 평가하고 선거동안에 있어왔던 숱한 정쟁과 토론, 심지어 감정상의 문제까지 먼저 용서하고 용서받는 자세를 보여 주시기를 빕니다. 제발 선거에 떨어졌으니 ‘이제까지 한 약속이란 지킬 필요가 없다’ 가 아니고 그 공약을 당선인이 실천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같이하는 큰 그릇의 모습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만이 다음에 있을지 모르는 좋은 일에 단초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