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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김천신문 |
새는 날개라는 신체의 일부를 가지고 태어나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새들은 예민하여 사람들을 경계하지만 잡힐 듯 말 듯 날갯짓을 하며 쉬고 싶을 때 아무 곳에서나 쉬기도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떼를 지어 한 번씩 하늘 높이 올라 공중 곡예로 마치 온 세상이 제 것인 양 자유를 누리며 사람들을 비웃는다. 새를 볼 때마다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게도 몸을 가볍게 할 날개가 있어 이젠 날 수가 있다.
며칠 전 문경새재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가는데 모내기를 끝낸 논과 시골 풍경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파도가 일지 않게 해주었다.
작년 여름의 일이 생각났다.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에게로 찾아와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막상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마침 둘째 딸이 시험을 끝내고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수술을 하기 전 엄마랑 걷고 싶다고 문경새재를 권유해서 딸과 다녀왔었다.
그때 딸이 그랬다. “엄마, 씩씩하게 잘 걸어가는데 수술할 사람 맞아?” 했다. 딸한테 지기 싫어 힘들지만 참고 조령관(제3관문)까지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찾게 되었다.
내가 다닌 곳 중 최고의 휴양지나 다름없다. 주차를 하고 먼저 눈을 즐겁게 하는 건 여러 색의 코스모스가 계절을 무시하고 반겨주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문경새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 1위를 차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까지 왕복 13km인데 직선과 곡선이 교대로 나오고 지루하지 않아 아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넓은 길 양쪽으로는 계곡과 자연 그대로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쉴 곳도 많아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다.
오가는 사람마다 화려한 등산복을 입었는데 나도 나름대로 신상품 등산복으로 멋을 내고 갔으니 하나도 부럽지 않고 오히려 혼자 가는 나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보통 걸음으로 걸었다. 집에서 사진 찍는 연습을 많이 해서 괜찮은 곳이 나오면 나 자신을 찍으며 가는데 내가 생각해도 별짓 다 한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배경 좋은 곳은 부탁하면 될 일인데 이대로 즐기고 싶었다.
다른 지역은 날씨가 엉망인데 비해 내가 택한 곳은 나를 위한 것처럼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신바람이 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걷는데 땀을 흘려도 시원한 땀으로 바람이 금방 말려 주었다. 잘 다져진 넓은 길은 평정심을 가져라 하고 숲을 이룬 나무 사이로 살짝 보이는 햇빛은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라고 하는 것 같다.
내 삶의 황금기는 지금이다. 첫 남자를 만나 26년 동안 장애물이 많았지만 수술 후 생각이 달라졌다. 제3관문인 조령관에 갈 때까지 지난 날 매웠던 양파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면서 가니 매운 맛도 점차 단맛이 났다.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은 나에게 힘을 주고 계곡 물은 고요히 흘러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걷는 동안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기도 늦은 시간이라 간단하게 준비를 했는데 어딜 가나 혼자 먹는 것도 이젠 익숙해져야겠다. 가끔은 안 하던 딴 짓,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침표를 찍고 금의환향 길로 내려가는데 그 기분은 장원 급제하고 가는 기분으로 날개가 쫙 펴졌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보면서 이 길을 어떻게 걸었지 나에게 칭찬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연생태공원에 들러니 여기는 내 천국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더운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작년에는 수많은 해바라기가 일제히 나를 보고 있어 깜짝 놀랐는데 올해는 아직 키가 작은 탓에 해바라기는 놓쳐 아쉽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 몸과 마음이 문경새재의 기를 받아 너무 가볍고 함창에 왔을 때 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갑자기 게릴라성 폭우로 변했다. 기분 깨지 않으려고 많이 참았다가 농부의 얼굴을 활짝 펴주는 하늘에게 고마운 날이었다.
내 삶의 전환점에서 무거운 짐 벗어 던졌으니 가벼운 몸짓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련다. 여럿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날개는 누가 대신 달아주지 않으며 스스로가 날개를 달아 힘껏 날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의 황금기는 지금부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