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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친정엄마

한외복(구성면 출신 구미 거주 수필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4년 09월 24일
 
ⓒ i김천신문
  햇콩 타작하여 청국장 만들어 놓았다고 가져가라는 친정엄마 전화가 빗발쳐 친정 나들이를 했습니다. 추수하기 전 곰국이라도 한 솥 끓여 드리고 진즉에 한 번 다녀왔어야 하는데 일상에 치여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부모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친정집 수문장 돌배나무 누르스름한 이파리가 뚝뚝 지는 햇살 따사로운 마당에는 가을이 풍성합니다.
 노란 메주콩, 적팥, 양대, 검정콩 등 갈퀴 같은 엄마의 손으로 거둬들인 추수가 보석처럼 찬연합니다. 

 엄마의 무료한 시간을 충만하게 해주었고 고단한 삶의 위로가 되었을 고마운 것들입니다. 오랜 시간 엄마의 속내를 말없이 들어주었을 저 찬란한 가을이 바쁜 자식들 보다 더 많은 기쁨을 어머니께 드렸을 겁니다. 

 눈 오면 호박죽 끓여 먹으라며 늙은 호박 가지고 가라고 오며가며 몇 번이고 말씀하십니다. 덮어놓고 안 가지고 간다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무얼 가지고 가라고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 안 가져간다고 합니다. 호박 한 덩이가 필요하다고 말씀 드리면 다섯 덩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차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섯 덩이의 호박은 내년에 호박 심는 구덩이가 늘어나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이고 편찮으신 엄마의 노구를 더 고단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게 노인네들이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엄마한테 농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무턱대고 농사일을 말리지도 못하겠고 잠자코 지켜보자니 수족을 쓰지 못하실까봐 두렵습니다. 

 친정 갈 적에도 예고도 없이 그냥 갑니다. 미리 기별을 하면 그때부터 구부러진 허리로 숨이 턱에 차도록 텃밭과 집안을 뒤져 먹거리와 딸에게 소용되는 물건을 챙겨 보따리를 싸기 때문입니다. 급한 성격이 연로한 몸을 따르지 못해 넘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난다고 화를 내며 말려도 귓등으로 넘기고 돌아오는 차 빈공간이 없도록 채워 넣습니다. 

 햅쌀 찧었다고 한 푸대 실으라고 하여서 묵은 쌀이 있다고 아주 조금만 주십사 하고 차를 들여다보니 내가 설거지 하는 동안 올망졸망한 엄마의 가을이 내 허락도 없이 차안에 그득하게 실려 있습니다. 

 “아이고오, 내가 못살아 못살겠어요. 허리 다치면 어쩌려고 이 무거운 걸 어떻게 차에 실었대요? 엄마 엄마 엄마아~.”
 내가 들기에도 버거운 누런 호박을 내려놓고 안 싣고 오면 서운해 하실 것 같고 곁에 계시는 엄마만 자꾸 불러제꼈습니다. 

 내려놓고 안 가져갈까봐 딸 눈치 보시는 엄마가 먹먹해서 또 “엄마 엄마 엄마아~”
 살림에 소용되는 것을 더 실으려는 엄마와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일이 늘어날까봐 안 가지고 가려는 딸과의 실랑이가 촌극을 빚기도 합니다. 안 가지고 간다는 걸 엄마가 나 몰래 차에 실어놓으면 난 엄마 눈에 안 띄게 얼른 내려놓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짐을 부리면 내가 내려놓았던 것들이 그대로 들어있어 한참을 혼자 웃습니다. 번번이 엄마의 사랑은 말리지도 못하고 못 이깁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도 꺾이지 않고 푸른 댓잎 같은데 육신이 흙담처럼 무너져 내리는 엄마의 허리는 기역자로 구부러지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다리를 끌고 다닙니다. 주고 주고 육신이 망가지도록 또 주는 성자 같은 엄마 사랑을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요. 

 유모차에 몸을 의지한 엄마가 대문 옆 돌배나무 아래 서서 떠나는 딸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듭니다.
 이내 덮는 고샅을 벗어나는데 눈에서 엄마가 뜨겁게 흐릅니다. 엄마!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4년 0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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