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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김천신문 |
소복소복 눈 내리는 한겨울 밤이다. 친구에게 금방 쪄낸 고구마 조금 마음으로 보낸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인생의 세 가지 여유로움이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 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글이다.
그래 맞다. 글을 읽고 지우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가족이 함께 모인 저녁상. 눈 내리는 겨울 밤 곳간을 드나드는 즐거움, 아들 딸 다 결혼시키고 부부가 건강하게 보내는 노년 그래 그게 제일이지…….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가.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사실 나는 결혼 14년차다 그런데 한 십년은 남편이 하늘인 줄 알고 살았던 것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동안 하루에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시작해 딱 십년을 썼더니 책이 열권이나 된다. 누가 쓰라 한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 죽는 날까지 쓰겠다고 다짐했건만 3년째 펜을 놓고 있다.
그동안 무슨 내용을 썼는지 궁금할 것 같다. 뭐 사랑한다고도 했고 때론 세상이야기도 했고 여하튼 속에 있는 마음을 매일 A4용지 반장 정도는 썼다.
그런데 살다보니 미운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찌 이럴 수 있겠냐 싶고, 이 사람 원래 이런 사람이었냐 싶기도 하고, 내 팔자거니 한숨도 쉬었다가 도마 위에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기도 한다.
굽이굽이 또 굽이 끝없이 흘러가는 인생, 마치 나는 한 통의 생수가 아닌가 싶다. 목마름을 채워주는 시원한 한 잔의 물이었다가 냉동실에 꽁꽁 얼은 얼음통이었다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한 통의 내 심장. 하지만 힘듦을 겪어본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함을 알게 되는 것 아닐까.
배가 고파봐야 음식의 고마움을 알고 수술대에 누워봐야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만이 고마움을 알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감사함만이 꽃길인데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인데……. 도대체 이 괴로움들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 일까. 더 갖고 싶고 이미 가진 것을 놓치기 싫어서 오는 것은 아닐까.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고 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가지 않으면 세월이 아닌 것을 왜 잊고 사는 걸까. 이 모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는 지나 갈 텐데…….
카톡 하나가 또 들어온다. 2세 때는 똥 가리는 게 자랑, 3세 때는 이가 나는 게 자랑, 12세 때에는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 18세 때는 자동차 운전 하는 게 자랑, 20세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자랑, 35세는 돈 많은 게 자랑이다가 60세가 되면 사랑하는 게 자랑, 70세는 친구가 남아있다는 게 자랑, 80세는 이가 남아 있다는 게 자랑, 85세는 똥 오줌가리는 게 자랑이라 했다. 하하 인생이란 결국 똥·오줌 가리는 게 자랑이구나.
나도 카톡에 답장하나 보낸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행복이라 말하고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몸에 생긴 흉터는 옷으로 가리고 얼굴에 생긴 흉터는 화장으로 가리고 사랑은 그 모든 허물을 가려준다. 모든 고통과 행운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는 것이니 그것까지 감사하며 살자고…….
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앞만 바라보며 달려갈 뿐이다. 이제 시작하는 사람, 반 쯤 걸어 온 사람, 다 와가는 사람, 그런데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 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세 가지 그 말 맞지 않는가. 친구야 고맙다.
맑은 날만 있다면 생명은 다 말라죽지/ 적절히 비도오고 오늘처럼 눈도 오고/ 그래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