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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름값

이우상(수필가·한국문협 김천지부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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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사회는 갑·을 관계로 세상이 시끄럽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세 가지 값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를테면 얼굴값, 나이값, 이름값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세 가지 값 중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다 어렵겠지마는 아마도 이름값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옛날, 일자무식(一字無識)이면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주인이 새로 들어온 머슴을 불러 성씨(姓氏)를 물었다. 머슴이‘배씨’라고 말하자 벽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한참 뒤에 머슴을 부르려는데 갑자기 성씨가 안 떠올라 벽에 써 놓은 것이 생각나서 벽을 보니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공서방!” 하고 불렀다. 한참 뒤에 머슴이 다가와서 “어르신, 저는 배서방입니다”했더니, “아차, 꼭지를 안 그렸구나” 하면서 동그라미에 꼭지를 그려 넣는 것을 보고 머슴은 그 다음날부터 마당에 숯으로 글자를 써놓고 일부러 큰소리로 외치면서 다녔는데 주인이 자기체면을 내려놓고 종이에 그대로 그려서 머슴이 외친 소리를 익히기 시작하여 일 년이 채 안 되어 어느새 한글을 줄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기쁘고 고마워서 머슴의 생일을 알아내어 진수성찬을 차려 후하게 대접을 하고는 자기 재산의 일부를 머슴에게 나누어 주고 앞으로 사부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면서 의형제를 맺고 평생,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주인과 머슴의 관계를 초월한 이름값을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전라북도 김제에 가면 지금도 이름값을 세세토록 발하고 있는, 양빈이 머슴을 섬긴 일로 유명해진 금산교회가 있다. 1905년 경남 남해의 이자익이라는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곡창지대인 전북 김제에 도착하여 그 지역의 최고 부자인 조덕삼 댁을 찾아 마부로 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머슴이, 아들이 다니는 서당 곁을 지나다니며 귀동냥으로 들은 천자문을 줄줄 외는 것을 보고 아들과 함께 공부를 시켰고 이에 감사한 이자익은 더욱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두 사람이 함께 집사직분을 받아 교회를 섬기던 중 얼마 후에 교회 장로를 선출하게 되는데 투표결과 놀랍게도 조덕삼은 떨어지고 머슴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었다. 조덕삼은 그 지역의 최고 부자일 뿐 아니라 금산교회 설립자요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자였으며 그동안 이자익을 돌봐준 은인이기도 한 관계였는데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선교사를 통하여 당선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고 계속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낙선한 조덕삼 집사가 앞으로 나왔다. 모두들 긴장하여 조덕삼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데“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 모두 이자익 집사님을 장로로 섬깁시다. 힘찬 축하의 박수를 보냅시다.” 너무나 의외의 발언에 깜짝 놀란 교인들이 안도의 숨을 쉬면서 우렁찬 박수로 두 사람 모두를 축하하고 격려했다.
 
그 후 조덕삼 집사의 훌륭한 인품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얼마 뒤 자기도 장로가 되고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보내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모셨으니…….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 현실로 남아, 백 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름값을 넘치게 다한 조덕삼 장로의 훌륭한 인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병원을 경영하는 친구의 장로 은퇴식에 다녀왔다. 이십오 년이라는 긴 세월을 장로 이름값 이상으로 섬기고도 은퇴사를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여 줄곧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에서 콧등이 찡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세상의 삼라만상 모양 가진 것 중에 이름이 있는 것도 있고 혹 없는 것도 있지마는 역할이 분명한 것 치고 이름이 없는 것은 거의 없다. 또 그 이름에는 나름대로 거기에 어울리는 뜻이 있다. 정명(正名)으로 이름값을 다 할 때 사회가 바르게 잡힌다. 사람이 그저 태어난 것이 아니고 이름 또한 그저 붙여진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태어난 값을 하라고 태어났고 이름 또한 제 이름값을 하라고 붙여진 것인데 이름값을 제대로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상대방에게 따뜻한 미소로 사랑이 넘치는 이름값을 다 할 때 훈훈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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