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6-27 12:28:4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원격OLD
뉴스 > 종합

삶의 향기- 꽃을 지우는 시간

윤애라(시인·아동문학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3월 25일
ⓒ i김천신문
봄꽃들이 앞 다투어 꽃을 피우자 내 정수리도 드문드문 꽃을 피운다. 희끗한 꽃술에 조금 컴컴한 꽃잎을 가진 ‘시간’이라는 꽃이다. 하루에 0.3밀리씩 열심히 자라나는 그 꽃잎을 처음에는 하나씩 뜯어내기도 했었다. 거울 앞에서 눈을 치켜뜨고 족집게를 동원하기도 하고 아들 무릎에 누워 용돈을 흥정하기도 했다. 한 올씩 돋아나는 그 꽃잎에 조바심이 나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온 몸에다 공평하게 제 영역을 확장시키며 새치와 노안과 주름을 선물하고 있다. 희끗한 꽃잎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람의 부러울 때도 있지만 아직 나는 그런 용기가 없어서 자주 그 꽃잎을 지우고 있다.

 오래 전, 어머니와 아버지를 나란히 앉으시게 해서 염색을 해드리곤 했었다.
염색약을 비비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둥근 등에는, 창을 열고 들어온 햇살이 노랗게 업혔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주억이며 말씀을 이으시던 그 따뜻한 두 분의 둥근 등. 
 나는 일류 미용사인 양 요란한 빗질로 아버지 어머니 흰 꽃잎을 까맣게 지워드렸다. 두 분의 시간은 평행선이 되었고 수년의 터울을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 목소리에서 깊은 종소리가 났고 어머니 두 뺨은 홍매처럼 붉어졌다.
아버지 얇게 덮인 피부 속에서 푸른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올 것 같았다.
쌍 겹이 무거워 축 처진 어머니 두 눈은 별빛이 튈 것만 같았다.

 나는 새하얀 교복 깃을 단 열일곱쯤으로 돌아가 있었다.
희끗한 세월 까맣게 지우고 싶으셨겠지. 하얗게 엉켜버린 세월을 검은 빗질로 가지런히 뉘어 놓고 싶으셨을 것이다.
다시 흰 꽃이 정수리를 덮을 때 까지 두 분은, 검게 칠한 그 시간을 그렇게 즐거워하시더니 언젠가부터 염색을 마다하셨다. 희끗한 게 보기 좋다는 자식들 말을 그대로 믿으시는 척, 허옇게 자라나는 그 시간을 진심으로 수용하고 계셨다.
무얼 그리 지우려고 애를 쓰느냐, 눈 나빠지니 자주 하지 마라 종용하게 타이르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꽃을 지우며 산다. 무얼 그리 지우고 무얼 그리 숨기며 살아가는 것인지 흰 꽃잎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지운다. 염색약을 바르고 앉아있는 내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만 두어 달 동안의 검은 머리칼은 잠시 시간을 되돌려 놓는다. 나무는 열매를 얻기 위해 꽃을 지우는데 정수리에 핀 이 꽃을 지우면 어떤 열매로 돌아올까. 아마도 까맣게 반짝이던 그 시간의 내 꿈들을 뒤적여 보는 시간이 아닐까. 하릴없이 뒤적이며 과거에 자신을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잠깐이나마 빛나는 그 지점에 서 있다가 다시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은 것이다. 이러다 서서히 꽃을 지우는 그 간격을 넓히며 하얗게 발효되고 싶다. 시간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으며 그대로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꽃을 지울 시간, 벚꽃 길을 봄밤이 까맣게 지우듯!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3월 25일
- Copyrights ⓒ김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김천소방서 김유빈 소방장,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로 ‘포기하지 않는 소방관 정신’ 실천..
김천시인사..
배낙호 김천시장, 2025년 하반기 첫 승진의결 단행..
철도중심도로 도약! 중부내륙철도 개설 순항..
‘이승원 시즌 첫 골!’ 김천상무, FC안양 꺾고 홈 2연승 질주!..
배낙호 시장, 대신동 찾아 ‘소통과 공감’ 간담회 열어..
김천대학교 중장기 발전계획 ‘VISION 2030’ 선포식 개최..
국토부‘강소형 스마트도시 조성 사업’에 김천시 선정..
미래 드론 산업을 현실로! 김천시 드론 배송 시연 행사 개최..
미래를 위한 나눔, 함께 만든 기적..
기획기사
김천시가 운영하는 김천녹색미래과학관이 2014년 개관 이래, 11년 만에 누적 이용객 130만 명을 돌파하면서 지역 대표 과학문화 기관.. 
김천시는 6월 환경의 달을 맞아 시민들의 환경 감수성을 높이고, 생활 속 환경보호 실천을 독려하기 위해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 도서.. 
업체 탐방
안경이 시력 교정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그 역할이 변화해가는 트랜드에 발맞춰 글로벌 아이웨어(eyewear)시장에 도전.. 
김천시 감문농공단지에 위치한 차량용 케미컬 제품(부동액, 요소수 등)생산 업체인 ㈜유니켐이 이달(8월)의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선정패 .. 
김천신문 / 주소 : 경북 김천시 충효길 91 2층 / 발행·편집인 : 이길용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의숙 / Mail : kimcheon@daum.net / Tel : 054)433-4433 / Fax : 054)433-200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67 / 등록일 : 2011.01.20 / 제호 : 김천신문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4,897
오늘 방문자 수 : 33,764
총 방문자 수 : 100,407,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