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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팔순 넘은 엄마가 쉰 넘은 딸의 생일이라고 점심 한 끼를 사신단다.
“미역국도 끓이고 생선이라도 한 마리 굽고 싶건만 다리가 아파 시장도 못가고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시며 그것도 내 눈치를 보며 말씀을 하신다.
“뭘 그래 엄마, 됐어!”했다가 그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지난번에 보니 니가 참 맛있게 먹더라”하며 한참 전에 생일날 다시 오자 했던 장어집을 가자고 하신다.
아침엔 시어머니가 오셔서 새벽부터 톡탁톡탁, 지글지글 생일밥상을 차려주시고 점심은 또 친정엄마가 사신다고 하니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딸은 괜히 미안해진다.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 앞으로 가니 엄마는 나름 꽃단장을 하시고 지팡이에 의지해 벌써 나와 계신다. 지팡이 짚기 싫어 자존심 세운다고 맨날 우산만 짚으시더니 이젠 그것도 포기 하셨나보다.
장어가 지글지글 익자 엄마는 얼른 한 점 내 접시에 올려놓는다.
“꼭 꼭 씹어라 몸에 좋단다”는 말씀은 잊지도 않으셨다.
나는 입에 넣다 말고 후후 불며 “식으면 먹어라”고 아들 접시에 올려놓았다. 가만히 보니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 반찬이나 국물만 떠드시고 나는 아들 실컷 먹이고 싶은 마음에 이야기 하는척하며 아들접시에 계속 올려놓았던 것 같다.
장어 양은 왜 그리도 적은지. 몇 점 드시지도 않은 엄마는 배부르다며 바지 속 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신다.
이걸로 꼭 계산해라.
어떻게 해야 할까.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젊은 날 남자 두세 몫을 하시던 대장부 같은 엄마였건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평소 너 낳는다고 고생했으니 내게 맛있는 것 사라 하시던 엄마가 만 원짜리 한 장 한 장을 차곡차곡 모아 밥값을 내시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엄마 없이는 나 못 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들은 “엄마, 장어 너무 많이 먹어 배불러요”하며 끄윽 트림을 한다.
가시고기가 그런다지. 그냥 알을 낳으면 다른 물고기들이 잡아 먹을까봐 어미고기는 수컷 입에 알을 낳고 수컷은 새끼들이 헤엄쳐 나갈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입속에서 키운다지. 그래서 새끼들이 다 헤엄쳐 나가면 그 마른 몸까지 새끼 먹잇감이 되어 준다지.
어제도 가까운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듣고 겁이 덜컥 났다.
엄마한테 내가 잘 되어서 잘사는 모습 보여 드려야 할 텐데. 그래야 엄마가 마음 편하게 눈 감으실 텐데. 사는 게 왜 이리도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남들한테 말도 못하고 검버섯 생기듯 속이 썩어 들어간다.
효도는 과연 뭘까? 내가 자식을 낳아보니 하나 있는 자식이 제일 무섭고 그저 좋기만 하다. 해줘도 해줘도 모자라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못해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어머니나 엄마도 그렇지 않을까.
그저 알콩달콩 따시게 살고 줄반장이라도 하나하면 기뻐하실 텐데…….
하늘이 높고 가을이 익어간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행복한 얘기만 들려주는 것
그도 그렇지만 사는게 별게 아닌 것 같다. 내일내일 하지만 내일은 늙어지고 병든 몸만 생길지 모른다.
모든 건 一期一會(일기일회)라 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내 인생의 항상 처음이고 마지막 날이다. 주저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기쁘게 사는 게 장땡이다.
좋은 것이 뭐 있겠냐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실 좋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어떤 이는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해 평생을 손짓으로 표현하는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고 좋은 음악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거기다 팔 다리 성하니 뛸 수도 있고 춤출 수도 있지 않은가.
여름 내내 나는 덥다 덥다 했건만 저 곡식들의 몸은 알알이 영글었다.
당당하게 어깨 활짝 펴고 사는 자식을 볼 때 엄마는 기뻐하실 거다.
사는 게 과연 정답이 있을까?
하늘에게 물어보면 높게 보라 할 테고 바다에게 물어보면 넓게 보라 할 테고 비에게 물어보면 모두 다 씻어 내라 하겠지. 모든 것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 일 테고 나는 곧 이 우주의 주인일 테다.
이렇게 맑은 가을 하늘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길 이번 주말엔 엄마 손잡고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엄마 귓가에 코스모스 한 송이 꽂고 사진도 찍어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