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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례 선생님

이신화(철학박사·김천예술고 명예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9월 09일
ⓒ 김천신문
 10여년 전의 일이다. 구미에 거주하는 김천예술고 졸업생 박미숙(가명)양이 찾아 왔다. 다음 달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주례를 꼭 서달라는 요청을 하러온 것이다. 나는 첫 마디에 “주례자를 모시는 일은 일생일대에 한 번 있는 일이니 나보다 덕망이 있고 인품이 훌륭한 분을 찾아 부탁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박양은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례를 서 달라며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거절하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 마음이 착잡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모처럼 졸업생이 찾아와 이렇게 간청을 하는데 수락하자니 부담스럽고 안하자니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례식 주례를 별로 서본 기억도 없는데다 또 서볼 생각도 아예 해 본적이 없는데 주례를 서게 되다니, 웃음이 나왔다. 더구나 이제 인생의 첫 출발을 하여 신혼부부가 되는 이들 앞에서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도 걱정스럽거니와 주례를 해보지 못한 내가 만의 하나 실수라도 한다면 혼주나 당사자 보기에도 얼마나 민망스러운 일인가!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양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교장 선생님 너무 걱정 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결혼예식 순서를 상세하게 다 적어 오겠습니다. 적어 놓은 대로 보시고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오죽했으면 박양이 이런 말까지 하겠나 싶어 어쩔 수 없이 주례를 하기로 허락을 하고 말았다. 박양은 금방 생기가 돌고 희색을 띄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한 뒤 다시 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박양의 시집가는 날이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 박양이 가져다 준 그대로 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살펴보았다. 개식사로 시작하여 주례자 입석 및 소개, 양가 화촉점화 대략 이런 순서로 짜여져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적어 준대로 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싶기도 하지만 내용을 살펴 보건데 사회자라는 별도 인물이 진행을 맡아 보면서 독주(?)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그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이윽고 당일 아침을 맞이하니 날씨가 쾌청하고 새소리 요란했다. 지난밤 요점만 정리해 놓은 주례사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백년해로(百年偕老)와 해로동혈(偕老同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서로 사랑하고 그것을 실천해라”, “건강해라”, “열심히 일을 해라”라는 그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이들 신혼부부에게 얼마만큼 유익하고 적합한 메시지가 될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내용이 어떻든 이제 첫 출발과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와 축하를 해주는 일이 내가 맡은 소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부터 정리했다.

예식장은 구미 금오산 기슭 저수지를 뒤로하고 경관이 수려한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이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차량홍수에다 어른잔치까지 겹쳐 인산인해를 이루어 온 예식장 주변이 뒤범벅이 되었다.
사람들 틈새로 겨우 식장에 들어서니 박양 부모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간단히 인사를 끝낸 뒤 좀 어색한 마음으로 주례를 보기 위해 주례석으로 등단을 했다. 사회를 맡은 신랑친구인 듯한 K라는 청년이 아까부터 자기가 써온 시나리오를 보고 계속적으로 뭔가를 중얼중얼하면서 예행연습을 하는걸 보니 너도 어지간히 긴장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되어 신랑입장으로 시작하여 예식이 진행되었는데 카메라맨의 등살이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주례사를 하는 중인데도 카메라의 스폿 라이트는 계속 내 얼굴만 쏘아대고 있는 게 아닌가.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마치 오늘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신랑신부 뒤쪽에서 찍어대는 불빛이 내 얼굴을 강타하는 것을 보고 나를 찍는 줄 알고 어리석게도 주인공 같은 생각을 하면서 한번 ‘씨익’ 웃어 보였다. 주례사를 무사히 잘 마쳤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박양이 가져다준 시나리오 순서를 사회자 마음대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주례사 다음에 신랑신부의 부모가 하객들에게 따로 인사를 하는 순서가  생략되고 가족대표와 함께 인사를 하는 순서로 바뀜에 따라 순간적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나리오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데다 박양이 시키는 대로 진행을 따르고 있는 중에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염려했던 대로 사회자의 진행독주가 이어지고 따라서 나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이렇게 되니 사회자 K군은 주례자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지막 순서를 자기 마음대로 진행을 함으로서 어딘가 마음 한구석 개운찮은 여운을 남기고 예식은 끝났다.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데는 할 말을 잃었다. 예식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고 마음 역시 그리 유쾌하지를 않았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예식이 끝났다고 안도를 한 탓인지는 몰라도 온 몸에 약간의 땀이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허  거참!” 이 한마디를 내 뱉으면서 문을 나셨다.

밖을 나오니 여전히 복잡했다. 그러나 금오산 주변의 공기는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저기서 유행가 테이프를 파는 이동차량에서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먼발치로 보이는 금오산 정상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니 마음이 평안했다. 산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역시 주례를 맡을 인물이 아니야, 주례할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5년 09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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