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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친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퍽 소리가 났다고 했다.
골목마다 땅거미가 끼고 분탕질하는 돌개바람 따라 눈발이 회오리 칠 때면 공연히 마음도 날씨 따라 불안해진다.
직장과 집 어느 곳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바쁘게 돌아치느라 친구에게 소원했더니 얼굴 잊어버리겠다고 서운한 속내를 내비치는 친구를 만나서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헤어지기 아쉬워 유혹의 여신 세이렌 로고를 내 건 카페에서 작은 컵의 아메리카노 두 잔과 쿠키를 놓고 창가에 앉았다.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하게 돌변하는 눈 오는 창밖 풍경이 시선을 빼앗아 갔다.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뀌고 카페 안은 커진 눈송이만큼이나 수런거리는 목소리도 커지고 들떠 꺄아악거리는 젊은 처녀들의 목소리와 귀가를 서두르는 불안한 낯빛의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다.
신호등 없는 1번 도로 횡단보도 앞 차량의 흐름이 잠시 끊기고 옷깃에 목을 푹 파묻은 서너 명의 사람들이 사 차선 도로를 횡단 하는데 나도 섞이며 아프지 말고 조만간에 또 보자하고 잡은 친구의 손을 놓았다.
걸음을 재촉하여 도로의 중간을 넘어 서는데 손님을 내려놓은 회색빛 영업용 택시가 김천방향으로 속도를 높여 달려온다.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멈출 것이라고 택시를 읽고 나와 서너 발자국 떨어져 앞 서 걷는 사람들의 무리가 되기 위해 뜀걸음을 했다.
나와 택시와의 간극이 바람의 속도만큼 좁아졌을 때서야 택시가 오답을 선택했다는 걸 깨닫고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거대한 힘이 오른쪽 어깨와 엉치를 후려쳤다. 1m쯤인가 2m쯤 몸이 허공에 떠오르고 여기저기서 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피할 수 없었다는 택시의 오답과 맞닥뜨린 0.00 몇 초 찰나의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로드킬 당한 짐승처럼 도로 한가운데 철퍼덕 떨어지며 눈 오는 날 불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삭의 내 배는 맹꽁이 같지 않고 우아하고 예쁘게 나올 것이라는 착각처럼 내 주검 또한 폼나게 멋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시시하게 생을 마치는구나.
삶의 전부였던 아이들과 남편조차 생각할 유언할 틈 없이 창졸간에 당한 일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무감각하고 막막하고 진원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통증이 몸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번졌다 아득한 순간이 지나고 길을 가다가 멈춰 선 구경꾼들이 웅성웅성 거리고 더러는 큰일 났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람과 눈발은 구경꾼과 가세하여 기세등등하게 퍼부었다. 지옥 문 앞에서 탈출한 비참한 몰골이 창피했다. 흰바지와 손바닥은 아스팔트 아스콘에 갈리어 시커멓고 친구를 만나기 전에 샀던 시집은 핸드백과 함께 도로에 나뒹굴었다. 번잡한 시가지 한복판에 널브러졌다가 개구락지 모양새로 일어나 앉으니 얼이 반쯤 나간 친구가 달려오고 사색이 된 기사가 말을 더듬거리며 괜찮은지 물었다.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으니 다들 진정하라고 친구와 기사를 안심시키며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에 택시는 다음 횡단보도에서 또 다시 사람을 피해 급정거 했다. 사고 차를 타지 말아야 했지만 친구도 나도 사고 초보라 우왕좌왕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도로의 모든 차들이 괴물이 되어 내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사지가 사시나무 떨리듯 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이 교통사고라는 걸 사고가 난 후에야 알았다. 연말연시 온갖 모임으로 몸과 마음이 바쁠 때 안전운행 안전보행만이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다
죽음의 신 하데스가 쎄게 한 번 당겼다가 놓아 준 교통사고, 아직은 타고난 명줄이 남았겠고 이루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남았고 좀 더 낮추고 겸손하게 살라는 그 분의 뜻이리라.
삶과 죽음은 한 몸으로 절벽 끝을 걷는 듯 아슬아슬 하다. 어느 시귀(詩句)처럼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이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