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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벌써부터 길거리에는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겁게 노시다가 가십시오” 라는 글귀의 현수막이 설의 시작을 알리고 철도역, 버스터미널, 공항이 북적인다. 그래서 한국의 설은 길 위에 있다고 한다. 가족이 끌어당기는 가족애의 끈이 얼마나 질긴지 모른다.
의류점, 식품, 제수용품 시장은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이 붐비고 떡방앗간은 쌀자루가 줄을 서며 택배물류 창고도 요동친다. 은행의 세뱃돈 신권이 바닥날까 창구가 복잡하고 기차표 예매로 밤을 새우며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은 설 용품을 들고 바쁘게 왕래한다.
지금의 설이 오는 소리와 풍경은 70년 전의 설 준비 풍경과는 격세지감으로 감회가 새롭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민속 설은 1930년대 기구한 운명으로 일제 강점기에 설을 빼앗기고 1945년 광복 후 우여곡절 끝에 1985년부터 민속의 날로 부활되면서 우리의 자유스럽고 행복한 설을 만끽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인 1940년대 체험한 설에 대한 추억들을 회상해 본다.
그때 빈농(貧農)의 설을 앞둔 겨울 날씨는 지금보다 더 추웠던 것 같고 가을 추수가 끝나고 미처 치우지 못한 지푸라기들이 바람에 날려서 뜨락 밑에 쌓여있고 집 뒤안 음지에는 잔설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끌어 모은 갈비가래는 밥 짓는 데 걱정이 없었다.
농가에는 소가 반농사라고 하는데 외양간에는 큰 누렁이가 고된 일철을 지나고 한가롭게 누워서 되새김질하기에 바빴다.
마당에는 닭들이 충혈 된 벼슬과 윤기 나는 깃털을 뽐내고 바람에 살랑이는 꼬리를 가진 수탉끼리는 암탉을 시샘하면서 한가로이 꼬꼬댁거렸다.
어머니는 방안에서 배를 짜고 배틀 뒤에는 짚으로 만든 콩나물 둥우리가 매달려 있다. 아랫목 실경 위에는 매주장이 매달려 있고 방바닥은 낡고 곤때 묻은 돗자리가 설을 앞두고 새 자리를 바꿔 달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겨울 입성은 솜 놓은 무명바지 저고리와 내복 없이 견뎌 냈으며 초가집 방문은 문풍지를 달았지만 소위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방안은 온돌방이지만 외풍으로 물그릇이 얼어 터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세수를 한 손으로 방문 고리를 잡으면 차가운 문고리에 언 손이 착 달라붙었다.
이런 여건에서 설 준비를 하려면 우선 배틀을 먼저 치우려고 어머니는 밤을 새면서 배 짜기를 마쳐야 했고 배틀 소리와 가래떡을 만들려고 쌀 빻는 디딜방아소리는 평화롭게 들렸다. 메주도 딴 방으로 옮겨야하고 방에는 새 자리를 깔아야 했다.
주부들은 제기(祭器)를 닦고 냇가에 쪼그리고 않아 얼음을 깨고 찬물에 빨래를 하여 말리고 곱게 다려서 설빔으로 어른에게 드려야 했다. 설날에는 덕담을 나누면서 떡국을 먹고 세배를 했다. 세뱃돈을 받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요즈음 뉴스를 들으면 금융권에서 세뱃돈이 1조원 이상 출금됐다고 하는데 백만원 이상 받는 어린이들이 있고 명절 뒤에는 백화점을 비롯하여 구매력이 왕성하다고 한다.
차례를 지낸 뒤에 음복주를 먹고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미풍양속이었다.
설의 양면성(兩面性)과 명암(明暗)은 남들과 같이 설을 풍성한 먹거리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지 못하고 생산 현장이나 경비부서를 지켜야 하는 근로자는 빈손으로 고향 부모 앞에 갈 수 없어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들은 착찹한 마음으로 방콕 신세가 된다. 또 병상에서 사경을 헤맨 불우한 사람들은 설이 무의미하고 괴로울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파지를 줍는 독고 빈고의 파지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의 처지를 위정자들은 알고 있는지.
지난 세월 파지노인들의 희생과 열정이 국가 재건의 초석의 주역일진데 국회의원은 당리당략과 입신출세로 혈안이 되어 민생은 뒷전이고 이합집산 책사 줄서기를 선택하는 행위는 짜증이 나고 가증스럽다.
민생복지를 위한 입법을 당대당간의 의견의 대치와 시비로 일관하고 “원샷법”도 합의 못한 채 오늘 하루도 저문다. 아무쪼록 국록이 아깝지 않도록 대오각성 하기를 국민들은 갈망하고 있다.
부연하면 설을 맞이하고 보내는 정서면에서도 물질이 풍부할수록 인심은 오히려 각박하고 메마른 반면 가난했던 시대에는 가족이웃 간에도 인정이 넘치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기중심의 아집과 풍요가 상대적 빈곤으로 가족 간에도 설날의 모임이 갈등과 불화로 번지고 주부들의 음식준비 및 손님접대로 육체적 고통과 가사노동 때문에 명절 후유증이 있다.
설을 맞이하여 조상숭배보다는 차례만 지낸다고 모처럼 만나 가족들은 정담도 나누지 못 한 채 골목에 세워 놓았던 자가용을 타기 바쁘게 뿔뿔이 흩어지는 현상이야 말로 우리 고유의 전통명절을 망각하는 행위다.
끝으로 전통 민속 문화를 숭상하면서 그늘진 곳에서 설을 맞이하는 양면성의 명암의 없는 설 풍경으로 온 가족이 일손을 놓고 한자리
에 모여 서로 정을 주고받는 즐거움으로 후유증 없는 설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