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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설은 음력 정월초하룻날로써 원단(元旦) 연수(年首)라고도 불려왔으며 근신하며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에서 신일(愼日)이라고도 불렸다.
지난해는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있음을 중시하였으며 세시풍속은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로 전해오고 있다.
내 어릴 적 고향은 경남 김해군(김해시) 대동면의 작은 산골마을로 산 아래 저수지를 둔 50~60호 초가마을로써 동네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부산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었지만 동네에 자동차를 구경하기란 그리 흔치 않았다.
설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식혜와 조청을 만들어서 각종강정을 만들고 설탕이 귀하든 시절 흰떡을 조청에 찍어먹곤 했다. 특히 섣달 그믐날 자정이지나면 복조리 장사들이 한 짐 가득 매고 동네를 다니면서 사라고 외쳐댔다. 각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일찍 살수록 좋다고 부엌은 물론 집안곳곳에 걸어두었다.
목욕은 1년에 두 번씩 추석과 설 전날 가마솥에 끓인 물로 어머니가 동생들과 같이 씻어 주면서 때가 많다고 부지깽이로 때려 울었던 생각도 난다.
아침에는 준비해준 설빔을 입고 검정고무신 대신 새로 산 운동화를 몇 번씩 신어보곤 했다.
이어서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모처럼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상을 물리고 떡국을 곁들인 세찬과 온 식구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그리고 순서를 따져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세배 돈을 받던 일, 덕담을 들으며 동네친척을 찾아 세배를 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특히 이날은 동네에서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 놀이로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민족 특유의 풍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시절(초등 4년) 연날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대나무를 꺾어서 가늘게 깎아서 연을 직접 만들어 연실에 유리조각 풀을 만들어 무명실에 묻혀 얼레에 감고 연을 높이 띄워 다른 아이들과 연 싸움을 즐겼다. 연줄을 서로 교차하여 다른 연줄이 끊어질 때 그 기분은 지금도 짜릿한 동심으로 다가온다. 또 내 연이 다른 연줄에 끊어져 날아가는 연을 쫓아 수 킬로미터를 달려갔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올 때의 허전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난한 그 시절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하였지만 동네 모든 분이 이웃사촌이며 인정 많고 한 식구 같았던 그 모습들이 지금도 그립기만하다.
그때 비하면 우리의 생활모습은 편리하고 많은 풍요를 가져왔지만 늘 시간에 제약을 받는 현대인의 생활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으며 때때로 충전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재산가였던 죤D록펠러는 낮 12시가 되면 사무실에서 꼭 1시간 동안 낮잠을 잤으며 그 시간에는 대통령도 통화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빌게이츠는 회사의 미래전략구상과 아이디어 연구를 위해 1년에 두 번씩 ‘생각주간’을 가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벌목장에서 두 장정이 도끼로 벌목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 장정은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해왔고 다른 한 장정은 잠간씩 쉬었다가 다시 도끼질을 하곤 했는데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한사람보다 벌목양이 훨씬 많았다고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간 중간 휴식을 가진 장정은 쉬는 동안 도끼날을 세우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휴식은 결코 멈춤이 아니었으며 전진을 위한 활력이 되었다.
2016년 새해가 한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가해보니 나 자신마저도 방식을 바꾸지 않고 새로운 생각도출에 인색하며 몸만 바쁘게 움직여 온 것을 반성한다. 지난날 우리의 조상들이 설날을 맞이하여 대보름까지의 짧지 않은 기간에 충분히 휴식하며 이웃과 유대를 다지고 농사도구를 손질하며 반성하고 계획을 세웠던 지혜가 다시금 감명으로 다가온다.
까치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김천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