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입대한지 두 달된 막내아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아들 면회 날이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새벽에 출발하여 세 시간 반 만에 강원도 홍천에 도착했다. 면회 접수 순서대로 열 명씩 2열 종대로 면회소로 나오는 장병들. 8시쯤에 도착했지만 먼저 온 면회객들이 많아서 한참동안 기다려서 만난 아들.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충~성~” 거수경례하며 면회 외박보고를 했다.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구릿빛 건강한 얼굴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군기 들어 긴장하는 눈빛이 어미의 마음을 짠하게 했지만 논산 훈련소에서 화상 입은 무릎은 검은 딱지가 앉았고 오랫동안 애를 먹이던 감기도 다 나아서 건강하였다. 예약한 펜션에 도착하여 숨고를 사이도 없이 아침밥을 먹지 않고 나왔다는 아들을 위해 서둘러 추어탕을 데우고 고기를 구워 아침상을 차렸다. 이것저것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밥숟가락에 얹어주며 자꾸 먹으라고 권해보지만 아들은 얘기를 하느라 먹는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어느 전우 하나가 화장실금연을 지키지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수까지 하지 않아서 아들 중대원 전원 250명이 교육 끝날 때까지 px 이용과 tv 시청이 금지 되었다는 이런저런 밀린 얘기들을 했다. 그러다 잠든 아들을 두고 펜션 주위를 둘러보니 마당 너머에 울창한 숲속으로 맑은 계류가 흐르는 계곡이 보였다. 암벽을 타고 넘는 햇살 투영된 맑은 계류 속에는 다슬기의 초록 몸빛이 선연하다. 낯을 가리지 않는 펜션의 공짜 옵션 강아지는 내가 어디를 가거나 졸졸 따라 다니며 꼬리를 흔들어댄다.
주어진 시간에 아들과 보내는 하룻밤이 아쉽고 애틋하기 짝이 없는데 작은 수첩갈피에서 마른 네 잎 크로버를 꺼내 엄마 선물이라며 건네준다. 어릴 적 엄마하고 네 잎 크로버 찾던 일이 생각나 생활관 앞뜰에서 찾아 말렸단다. 젖은 시간을 누구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크로버 밭에 쪼그리고 앉았던가. 네 잎 크로버를 찾는 아들의 시간을 그려보는 어미의 가슴은 먹먹하고 눈물강이 흘렀다.
며칠 밤 잠을 설치고 먼 길을 달려와 건강한 아들을 안아보고 쓰다듬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아들이 엄마 일어나 별 보시라고 흔들어서 화들짝 깨어나 밖으로 나갔더니 달도 없는 강원도의 밤하늘에 누가 보석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무수한 별들이 촘촘히 반짝인다. “아들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이 보였다는 북두칠성은 어디쯤일까. 북극성은 어디 만큼에 있을까. 전부 고향쪽에 있을테지.” 아들이 듣거나 말거나 혼자 중얼거렸다.
강원도의 달밤은 메밀꽃이 소금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아찔하게 아름답다고 했는데 지상이나 하늘이나 궁극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강원도의 밤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내 아들과 함께 보낸 마음이 행복하지만 헤어질 생각에 가슴이 시리다. 새벽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새벽이 전속력으로 빨리빨리 지나가 제대하는 날짜가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밝은 아들의 얼굴을 대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어떻게 보낼까. 보내고 어떻게 살까. 아들 낳는데 나라에서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공짜로 21개월 금쪽같은 아들을 나라에서 쓴다는데, 왠지 억울하고 분하고 그랬었는데 남자로 태어나 나라를 지키는 것만큼 값진 일이 또 있을까. 유약하기 그지없는 아들이 갖은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야 할 세상으로 진짜 사나이가 되어 돌아오는데 박수를 치며 응원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미 곁에서 잠든 군인 아들이 참 든든한 밤이다. 아들아, 부디 군복무 충실히 하여 나라 잘 지키고 건강한 몸으로 제대해서 돌아오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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