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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아버지의 장사

한외복(김천 출신 구미 거주 수필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8년 07월 02일
ⓒ 김천신문
친정아버지께서 택배로 자두를 보내셨다. 박스를 열었더니 봉인 되었다가 풀려난 자두 향기가 집안 가득히 번진다. 지금의 아버지는 자두와 벼농사를 짓지만 서른 살 때부터 시작한 소장수를 35년 동안 하셨다.

상주, 청리, 용궁, 옥산, 성주, 거창 오일장에서 소를 사고 김천, 지례 장에 팔았다. 이장 저장 장돌뱅이로 사시장철 떠돌았다. 주로 거창 장에서 사온 소를 지례 장에 팔았는데 이윤이 적으면 팔지 않고 그 다음날 김천 우시장에서 팔았다. 주변 오일장의 마지노선과 같은 김천 장에서는 웬만큼 밑져도 팔아야 시세에 어두운 오지의 장에서 저렴하게 소를 또 살 밑천이 생긴다. 김천 인근 지역의 장날이 제각각 다른 날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장사 밑천은 큰 소 네댓 마리 정도였다. 인근 장에서 5일 동안 제일 많이 사들였을 때가 다섯 마리를 넘지 않았다. 김천 우시장에서 다섯 마리를 다 팔고나면 옷 속에 차고 있는 전대가 두툼했다고 한다.

김천시 구성면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거창 우시장까지의 거리는 100여리, 김천 우시장까지는 50여리 된다. 거창 장에서 매수하는 소는 채꾼에게 채 삯 500원을 주고 위탁하여 집까지 몰아왔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그때는 주로 우시장까지 소를 몰고 걸어서 이동했고 당일치기가 안 되는 거리가 먼 곳은 마방에서 유숙했다. 우시장에서 소만 몰아다 주는 사람들을 채꾼이라고 하는데 어른 한 명이 열 마리씩 몰고 다녔다. 채꾼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 아이도 있지만 혼자는 위험해서 어미 소 따르는 송아지처럼 어른들을 따라 소고삐를 쥐고 다녔다. 자갈길을 걷는 소발에 짚으로 만든 신발을 신겨 상처가 나지 않게 하는 일도 채꾼들이 했다.

김천 우시장에서 파장까지 팔지 못한 소를 아버지는 직접 몰고 오십 리 길을 걸어오셨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소는 많이 밑지는 경우라 깊은 어둠을 몰고 오는 아버지의 귀가는 집안을 침울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감천을 끼고 구불구불 생겨난 도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미루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하고 움푹움푹 패인 길은 자갈투성이었다. 비오는 날 차가 지나면 흙탕물 세례를 받고 차바퀴에서 튀어나온 돌멩이가 정강이를 때리기도 하는 대부분의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지례 장은 내가 다니던 지례 중·고등학교를 지나야 하는데 멀리서 소를 몰고 오는 아버지가 보이면 얼른 도로 건너편으로 도망쳐 모르는 사람인 척 고개를 돌렸다.

초승달이 기운 어느 해 겨울은 아버지가 소를 앞세우고 대방이재를 넘는데 소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채 워낭도 흔들지 않고 옴짝달싹을 안 했다. 소는 어떤 기척을 느끼면 워낭을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기보다 힘센 적을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머리를 숙여 항복의 표시를 한다. 머리끝이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 돋는 무서움이 엄습하여 소코뚜레를 힘껏 잡아끌면서 “이랴 이랴” 고함을 질러도 소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버지는 항복한 소의 목덜미에 딱 붙어 서서 소와 함께 어둠이 점령한 도로를 대책 없이 노려보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때쯤 불빛을 비추며 차가 지나가자 그제야 소가 움직였고 아버지는 자정이 한참 지난 뒤에 집에 도착했다.

소 턱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아버지 눈썹에도 서리가 얼어붙은 맵찬 날이었지만 식은땀이 배어난 속옷은 축축하게 젖었다. 혈기 방장한 못된 청년들이 소장수의 전대를 빼앗으려고 대방이재에서 행패를 부리며 산적질을 하기도 했다. 산적들보다 대방이재에서 소의 오금을 못 펴게 했던 정체모를 적이 더 무서웠다고 아버지는 지금도 그 때 일을 떠올리시면 몸서리를 치신다.

아버지는 한 마리 이윤이 삼천 원만 되면 판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소장수를 하셨다. 그 시절 어미 소 한 마리가 칠판만 원 하는 때였고 암소 값이 비쌌다. 암소와 황소의 몸값은 시대별로 차이가 나는데 고기 값이 비싸면 황소가 값이 더 나갔고 번식 소가 적으면 암소가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어쩌다가 어미 소와 함께 사고파는 송아지 시세도 그랬다. 본전에 넘기기도 하고 밑지고 파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픈 소인 줄 모르고 샀다가 큰 낭패를 보기도 하고 이윤을 많이 남긴 날은 새끼줄에 매단 고등어나 찐빵이 아버지 손에 묵직하게 들려 있기도 했다.

삶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사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인지 내 나이 아버지 소장수 때의 나이가 되고 알게 되었다. 인적 없는 깜깜한 밤 소를 몰고 걸었을 아버지의 50리 자갈길을 이제는 안다. 염천의 갈증을 진흙내 나는 뜨뜻미지근한 봇도랑의 물로 달래고 엄동의 눈길을 소와 걸으며 늑골까지 파고드는 한기와 허기를 고스란히 견뎠을 아버지. 별도 달도 없는 컴컴한 밤 진눈깨비를 맞으며 50리 길을 타박타박 걸었을 우리 아버지.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갔다가 어두운 저녁을 몰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고단함을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았던 일과 회한으로 사무친다.

순간순간 얼마나 소고삐를 놓고 싶으셨을까 소장수 우리 아버지. 그 긴긴 세월동안 식솔 많은 집안을 떠받치느라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보릿고개 무섭던 시절에도 소장수아버지 덕분에 돈이 없어 주눅 들거나 서러운 일은 당하지 않고 살았다. 콧등을 베여 피범벅이 된 사춘기 딸의 얼굴을 보면서도 소고삐를 놓지 못하셨던 아버지의 그 심정을 내가 삼 남매의 부모가 되고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아버지가 삼십 여년 붙잡고 있던 그 소고삐에 병환 중인 노부모와 처자식들 생계가 무겁게 매달려 있었던 것을 비로소 깨우침은 섭리일런가!
농촌 집집마다 한 마리씩 키우던 일소가 사라지고 대량으로 사육하는 농장주들은 도축장하고 직거래를 하니 소장수들도 우시장을 떠났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도록 소장수였던 아버지는 노구를 이끌며 농사를 짓는다. 농사일도 이제는 힘에 부친다고 일을 그만 하라고 만류하지만 자두나무도 소고삐처럼 쉽사리 놓지 못하고 십 년째 붙잡고 계신다.

분이 뽀얗게 묻어난 자두를 쓱쓱 닦아 한 입 베어 무는데 쩔렁거리는 워낭소리와 함께 소장수 아버지 생각이 난다. “비싼 자두를 시장에 내다 팔지 왜 보내셨어요?” 전화를 드렸더니 “딸한테 파는 게 제일 비싼 값을 받는 것이다. 내가 한평생 뭔가를 팔아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지금은 자식들하고 손자들 먹이는 게 제일 많이 남는 장사더라”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신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8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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