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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이태옥(수필가,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8년 08월 14일
ⓒ 김천신문
요즘 세상에 생활이 행복하다면 별 사람도 다 있다고 탓할지 모르나 난 가끔씩 작은 행복을 맛본다. 내 삶터 주변이 온통 산이어서 작은 여유만 있어도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 있기 때문이다. 준비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고 혼자 혹은 동호인 몇이서 한 시간쯤의 여유만 생기면 운동화 끈을 동이고 나서면 그만이다.

산에 오르면 세상의 온갖 잡생각을 다 털어 버리고 새소리와 바람소리 물소리에 젖어서 자연인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풍요로워 행복해진다. 고풍 애잔한 절터가 나를 맞고 그 곳을 지나면 할아버지 혼자 기거하는 초가에 산이 좋아 산에 사는 할아버지, 산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계신다.

산 속에 사는 혈혈단신 할아버지,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산으로 흘러 들어온 지 40여 년, 이제는 세상과는 담을 쌓고 은둔자가 되어 세상일을 잊고 산다. 밤에는 뭇 짐승의 방문도 받고 낮이면 등산객들과 만나면서 보낸 세월이다. 노인은 나무와 구름과 산새가 너무 좋아서 이 산골을 떠날 수가 없다. 남들이 볼 때는 산골 거지같지만 세상을 모르니 불편이 오히려 편리가 되고 장작불에 덥힌 방바닥에 누우면 세상이 온통 내 것이다.

연금으로 시장에 내려가서는 술도 사고 고기와 쌀이며 과일까지 사 지게에 지고는 허이 허이 올라가 산과 대작하는 재미도 있다. 더러는 등산객이 남기고 가는 떡 한 조각이 저녁이 되고 세속의 인정도 맛본다. 그러나 거지 같이 산다고 어떤 이는 동정하고 어떤 이는 핀잔하는 말이 오히려 가소롭다. 산이 좋아 산에 사는 것을, 혼자가 좋아서 산에 사는 것을, 초가삼간 집이 어느새 무너지고 겨우 부엌과 방만 남기고 부서져 내렸다. 재산이 온통 방 한 칸에 빼곡히 들여서 몸 하나 눕힐 터만 남았다.

사람이 싫어 찾아 든 산골이다. 살다 보니 또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던가. 이제야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알 즈음, 한 세상은 다가고 조용히 사그라질 생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을 무던히도 이겨 보려고 골짝을 혼자 지키면서 산기슭이 오직 나의 터 내 세상으로만 살아온 삶을 위로하면서 술에 취해도 보고 세상의 욕도 서슴지 않는다는 노인의 고백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만 살기 좋은 곳이 아니듯이 부귀만이 인생의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희로애락이 다 자기 마음이요 자기 취미와 자기 성정에 따른 것일 뿐이다. 어떤 이는 혼자 사는 게 좋아서 속세를 등지고 고독을 벗하는 이도 있고 오히려 속세에서 고독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미련하게 열심히 사는 이도 있으니 사는 방법도 살아가는 모양도 가지가지여서 인생은 재미있고 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재미로 사는가 물으면 그 노인은 서슴지 않고 말한다. 사람들이 없어서 좋고 산이 말이 없는 것이 좋고 소중한 과일 나무가 있어서 산다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산골짜기 좁은 터에는 감나무 자두 복숭 사과나무도 심었다. 생전에 사과는 열매가 달릴지 모르면서 열심히 거름 주고 땅을 북돋운다. 산에 홀로 사는 노인이나 현실에 얽매여 사는 생활인이나 결국은 매 한가지다. 어린 과일나무를 심고 거름을 북돋운 것을 보면서 속된 생각으로는 고소를 머금는다. 사과나무를 심는 행위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지금 현장에서 소망을 잃지 않는 삶의 귀감을 본다. 때로는 소주 한잔으로 얼큰해지면 산이 떠나가라고 혼자 웅변을 한다. 젊은 시절의 이루지 못한 한을 모조리 풀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하다.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왠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 일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세상을 초탈했다는 선언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8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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