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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대구나 부산을 갈 때마다 김천을 지나가면 감회가 새롭다. 참으로 많이 발전했고 변했다는 느낌이다.
몇달 전 친척 어르신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도립병원을 방문하였다. 도립병원 주위도 많이 변했지만 그 곳에서 김천여고 쪽으로도 참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되돌아보면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 김천중앙국민학교를 입학했을 때 그땐 흙벽돌의 임시건물이었다. 책상 걸상도 없었고 그냥 쪼그려 앉아 서로를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3월초 였을 텐데 왜 그리 추웠던지 두꺼운 중공군외투 같은 꾀죄죄한 외투에 머리는 짧게 깎고 코엔 누런 콧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코를 닦기 위해 자기 가슴보다 더 큰 흰수건을 오른쪽 가슴에 달아 놓았다. 지금 유치원생이나 1학년생을 보면 정말 그 때 아이들은 전쟁 고아 같은 느낌이 든다.
3~4학년 정도 되었을 땐 새 건물도 지었고 제법 초등학교 교정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즈음 아이들은 여느 초등학생처럼 장난치고 깔깔거리며 놀곤 했었다. 당시 교실바닥은 나무 바닥이었고 이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늘 양초 칠을 한 후 반질반질하게 닦다가 여럿이 모여 청소하다 말고 깔깔대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교정에 꽃도 가꾸고 백엽상에서 온도도 재곤 했었다.
4학년이 되어 미술반에 들어갔고 미술반에서 가끔 직지사에 가서 그림을 그리곤 한 기억이 난다. 때론 남산공원에 가서 미술 사생대회에도 참가한 기억도 난다. 그림 잘 그린 친구들에게는 아침 조회 때 교장선생님이 직접 상을 주기도 하셨다. 중앙초교 변두리에 당시 77택시란 택시 회사가 있었다. 그 곳이 꽤 낮아 학교 교정과 언덕을 만들고 있었다. 그곳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작은 나무사이로 전쟁놀이한 것이 기억난다. 그때의 까까머리 친구가 지금은 회사 임원에서조차 은퇴하였다니 참 세월이 무상하다.
전쟁놀이라고 하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 집이 성내동 동사무소에서 김천여고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전기가 풍부한 시절이 아니라서 저녁만 되면 금방 컴컴해지고 골목길엔 가끔 백열전구의 가로등이 있었다. 이것도 듬성듬성 있고 밝기도 약해 그 주위만 약간 밝을 뿐 동네가 온통 어두웠다. 친구들하고 열심히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전쟁놀이 아니면 딱지놀이를 하는데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큰 소리로 몇 번 부르셔도 우리 귀엔 잘 안 들린다. 열심히 전쟁놀이하다가 어둑어둑해지면 그 때가 놀이를 멈출 때였다.
집에 들어오면 이미 저녁상은 다 부엌으로 물린 뒤다. 배가 고프니 어두운 부엌에서 이것 저것 주섬주섬 먹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곤히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요즈음 아이들 흙이라도 만져볼 기회가 있는가? 흙도 만지지 않았는데 엄마들이 집에 들어오면 아이 손부터 씻긴다. 요즈음 아이들이 너무 깨끗해서 아토피성 피부염이 창궐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면역체계가 너무 약해지기 때문이다.
한 번은 로켓을 만들겠다고 당시 철공소에 가서 양철로 제법 큰 로켓 모형을 만든 적이 있다. 둥근 몸통에 다리를 달고 몸통의 꽁지엔 노즐같이 구멍을 내고 몸통의 머리엔 깔때기처럼 원추의 양철을 달았다. 제법 설계를 해가지고 철공소 아저씨께 부탁하여 양철을 재단하고 용접해 만들었다. 여기에 폭죽의 폭약을 채워 꼬리에 불붙이면 로켓이 아주 멀리 날아갈 판이었다. 다행히도 폭약이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아 폭약을 채워 날리는 것은 포기하였다. 정말이지 폭약을 채워 불을 붙였으면 나와 내친구들은 전부 일찍이 이세상 하직하고 김천신문 뿐 아니라 전국신문에 크게 날 뻔 했었다.
과학을 공부해 평생을 과학자로 국립대에서 연구를 하고 지금도 국립연구소에서 뇌과학 소장을 맡고 있지만 어린시절에도 이런저런 기계만지는 것을 좋아해 컴퓨터도 뚝딱뚝딱 만들곤했다. 아마 그때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던 모양이다. 모두를 날려버릴 뻔한 그 양철 로켓은 어디 갔노?
김천중앙초등학교 정문에서 내려오면 철길 위로 성남교 다리가 있다. 당시에는 김천역으로 가는 기차가 칙칙폭폭 증기기관차였다. 이 기관차에서 나오는 증기는 가히 엄청났다. 그래서 조그만 우리가 다리 난간에 있으면 다리 밑에 지나가는 증기기관차의 증기가 우리 몸 전체를 확 덮곤 한다. 이 때 가끔 그 증기를 향하여 오줌을 누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 오줌이 증기에 밀려 도로 다리위로 올라와 우리의 얼굴에 뿌려지기도 했다. 그래도 좋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 친구들 다 어디 갔노?
참으로 강산이 다섯 번 바뀌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김천을 이래저래 지날 때마다 그리운 그 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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