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대 시장으로 명성을 떨치며 번성했던 김천의 원도심이 시나브로 쇠퇴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편집회의를 통해 도심공동화를 주제로 3회에 걸쳐 기획보도하기로 결정하고 1361호 4면에 <상>편을 게재했다. 지난 지면에서는 상가쇠퇴 현황을 지역민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달하고 인구감소 및 얼어붙은 부동산, 폐교위기에 놓인 초등학교 등 장기침체의 늪에 빠진 김천의 현황을 다뤘다.
이번 <중>편에서는 도시재생에 성공한 도시를 사례별로 살펴보고 번성했던 김천의 역사를 다룬다. 다음호에는 최종편으로 김천의 도시재생사업을 알아보고 진척현황 및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1.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재개발사업과 달리 일률적으로 전면 철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도심의 특색을 살리고 유지하면서 재정비하는 사업이다.
도시재생이란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1970년대 국내에서 재개발사업이 시작된 지 20년 만이다. 도시재생이 활성화 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라고 한다. 2011년경 독일의 ‘팩토리 베를린’, 영국의 ‘테크시티’ 등 다수의 도시재생 해외 성공사례가 있다. 국내는 서울 창신숭인지구가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창신숭인지구는 공청회를 열어 성공사례를 홍보할 정도이며 해설사를 동행한 시티투어를 통해 각 지자체의 벤치마킹이 이뤄지고 있다. 또 한국의 산토리니로 유명한 부산 감천마을, 마산 창동예술촌 등이 도시재생사업에 성공한 사례이다.
△서울 창신·숭인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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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신·숭인지구는 재개발사업지구였지만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도시재생지역으로 변환·지정되며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특색있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봉재산업이 밀집된 창신·숭인지역은 동대문패션산업의 배후단지였다.
쪽방촌과 무허가 건물 등 4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폭이 4m 미만인 도로 접도율이 40.6%에 달해 차량이 자유롭게 진입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봉제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매출이 급감, 업체수가 감소하고 작업공간도 나날이 열악해졌다. 이에 서울시와 국토부는 이 지역을 도시재생선도구역으로 지정하고 2014년 국비와 시비 200억원을 투입해 계획을 수립,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벌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곳 도시재생사업 시행에 있어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지역주민의 이탈방지 △지역산업보호 △지역의 역사 발굴 및 문화산업 지원 등 지역에 중심을 두고 3가지 역점에 주력한 점이다.
지역주민의 주거환경을 위해 도로, 하수도망, 건축물 등을 정비하고 지역산업보호 및 역사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체화시켰다.
봉제역사관 ‘이음피움’, 낙산과 동망봉이 품고흐르는 ‘행복마을’ 등을 운영하고 주민공동시설 ‘회오리마당’ 등 각 동별로 거점지역을 마련해 주민공동사업 및 주민쉼터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창신소통공작소’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기서는 책처럼 필요할 때 공구를 빌려 쓰는 시스템의 ‘공구도서관’을 운영해 주민편의를 도모했다.
△벽화마을의 원조 부산 감천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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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의 낙후된 달동네였지만 문화예술을 가미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연간 20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가는 대표 관광명소로 떠올라 2016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감천문화마을은 전국 최초의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꿈을 꾸는 맞추픽추’에 선정, 2010년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문화마을의 첫 발을 내딛었다.
2011년부터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사업을 추진, 감내카페와 커뮤니티센터인 감내어울터를 개소하고 작은박물관, 미술관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주민협의체 발족 및 조례 제정 등 주민참여형 마을을 만들며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부산시는 2011년 2월 16개 구·군 가운데 동·중·서·사하·사상·부산진구 등 6개 구의 원도심 1천44만㎡를 2020년까지 3개 권역 9개 사업구역으로 나눠 산복도로 르네상스 정책을 펼쳤다. 그동안 69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스토리가 있는 도시 재생에 주력한 결과 부산형 도시 재생이라는 새로운 롤모델을 세웠다.부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산자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 같은 골목길의 경관이 특징이다.
산지 비탈면에 자리 잡아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는 계단식 주거형태와 미로 같은 골목길은 옛 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알록달록 파스텔 색으로 채색된 낮은 지붕들은 이국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로같은 골목길을 그대로 살려 골목골목을 예쁘게 사진 찍고 싶은 공간으로 꾸며 SNS이용자들 사이에도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게 해 방문객 수 증가에 한몫 하도록 만들었다.
△마산창동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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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은 2010년 7월 창원, 마산, 진해 3개시가 자율통합되며 통합창원시로 출범했다.
마산은 한때 섬유산업과 철강산업 등 근대산업의 중추도시였으나 1990년대부터 차츰 산업시설이 철수하기 시작해 원도심이 급격히 쇠퇴했다. 통합 후 마산권역은 문화예술이 중심이 되는 도시재생정책으로 마산르네상스 원도심 재생프로젝트를 시행해 ‘창동예술촌’ 중심으로 마산원도심 활성화가 본격화됐다.
원도심 내 비어있는 점포를 활용해 도심밀착형 예술촌을 조성하는 행정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졌다.
창원시는 2011년부터 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창동일대 빈점포 50개를 2년간 건물주에게 임차한 뒤 50명의 개별 예술인들에게 2년간 무상으로 지원해 예술활동을 돕는 형태의 사업을 운영했다.
문신예술과 예술인이 융화하는 △창동예술촌을 조성하고 마산 르네상스시대의 맥을 이어가는 △에꼴 드 창동으로 창작공간을 마련했으며 마산의 추억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흔적골목을 조성하는 등 3가지 테마로 예술촌을 구성했다.
2. 번성했던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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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은 구한말 전후부터 산업화 이전까지 영남 서부권 경제의 중심지였다. 낙동강 지류인 감천을 끼고 형성된 김천장은 전국 5대 시장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전국 최대 규모의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농기구 제작 등 전근대적인 제조업과 유기 등 전통적 가내공업도 발달했다.
일찍이 김천은 동서남북으로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관로가 발달했으며 찰방역인 김천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관로의 모양은 철도의 입지로도 충분해 김천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1901년 경부선 철도 공사를 위해 일본 건설업체 아라이구미가 김천장에 사무실을 열면서 일본인의 본격적인 김천진출이 시작됐다. 같은 해 3월에는 일본인 모리모토가 김천에 잡화점을 열고 철도 건설인부를 상대로 물건을 판매했다. 대자본을 끌어들인 일본인들은 연이어 김천에 정착하고 지역 상권을 속속 장악해 나갔다.
김천시는 1949년 포항시와 함께 경북에서 가장 먼저 시로 승격됐다. 지금은 인구 15만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소도시이지만 1972년에는 인구가 22만에 달했다.
이렇게 번성하던 김천은 최근 들어 다양한 이유로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천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전개해 부활의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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