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정초(正初) 이정기(李廷基 192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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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정초 인살 나누자 해서 오백 원 빌려 세 번 버슬 갈아타니 사백 십 원 남더라 자꾸 바둑을 두자 해서 열한 판 두어 삼백 원 소주 값 내고 10점 반이 지난 후 허둥지둥 한 번의 버슨 탔으나 두 번째는 영영 죽어라 오지 않네 11점 반이 넘은 정초의 밤거리는 질주하는 빈 택시도 많고 다른 방향의 버스도 수두룩하건만 분주히 상점은 닫히며 남은 것은 시인과 팔십 원의 외로운 호주머니 흘깃 맞은편을 바라보니 허옇게 솟은 장의사 간판 위로 반월 하나 꽂히듯 걸렸네. ■ 해설:정초에 시인들이 인사회를 갖는다. 교통비를 빌려 세 번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밤길. 버스가 오지 않으니 어렵고 외롭다. 하지만 시인의 퍼소나는 벌써 다른 세상의 희망(반달)까지 내다본다. 정초에는 딴 세상에도 가득 차 있으리, 희망이. - 민경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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