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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넘어서야 인근 구미 해평에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 고맙게도 목화와 관련된 의미 있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학교 뒷편 월호리 어리개 마을에 문익점의 손자 문영(文英)의 묘가 있고, 묘의 뒤쪽에 베틀산이 자리잡고 있음을 안 것이다. 어린 시절 동쪽의 낙동강 건너 먼 곳에 여인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의 산을 보며 자랐다. 그 산이 바로 베틀산이다. 문영이 일선(선산의 옛 지명) 부사로 부임했다. 처가가 일선현이었다. 그의 형 문래(文萊)도 함께 내려와 해평면 월호리에 터를 잡고 살았다.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천을 짜려는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데 힘을 쏟았다. 문래는 목화솜에서 나온 실을 감는 기구를 고안했다. 문영은 동쪽에 있는 조계산의 모양과 인근 오상리에 있는 공상다리 모양을 보고 베틀을 만들었다. 문래가 만든 기구는 오늘날 ‘물레’가 되었다. 목화에서 생산되는 실을 뽑아서 문영이 만든 베틀로 짠 문영베가 음운이 변하여 ‘무명베’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조계산이 베틀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베틀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임진왜란 때 마을앞 영남대로를 따라 들어온 왜놈들의 만행을 피해 베틀산으로 숨어든 여인들은 베를 짜는 것으로 나날을 보내었다. 마침내 다가온 왜놈들을 피해 짜던 베를 모두 없애고 함께 자결하여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이야기는 시집 못간 노처녀가 지나가던 대사의 말을 듣고 베틀산 자락에 들어가 평생 동안 베를 짜다 죽었다는 슬픈 사연도 있다. 그 후 섯달 그믐날이면 한 많은 처녀가 ‘딱 딱 딱’하고 베 짜는 소리를 세 번씩 내어 자신을 알린다는 것이다.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산 위에서 베 짜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바로 그 노처녀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베틀산은 좌베틀산, 베틀산, 우베틀산 세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고찰 도리사를 품고 있는 냉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구미 방향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베틀산에는 바위굴이 다수 있는데 그 중 상어굴이 특히 유명하다. 굴이 많은 것은 아득한 옛날 바다가 융기하여 지금의 산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저곳에서 모가 전혀 없는 둥근 바닷돌을 많이 볼 수 있다. 단단한 돌들은 바위 속에 박혀 있고 푸석푸석한 것들인데 오랜 세월의 풍화로 인하여 빠져나가 그런 모습이 된 듯하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시골마을에서는 베틀로 삼베를 짜는 어머니들이 많았다. 방 한가운데 베틀을 설치하고 뒷쪽에 날실이 감겨진 도투마리를 걸치고 양발로 날실을 열고 닫는 개구를 만들면서 그 사이로 씨실이 든 북을 양손으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베를 짰다. 전해오는 ‘베틀가’에는 여인들의 애환이 묻어 있다. 베를 짜는 일은 실로 고된 노동임이 분명하다. 밤늦게까지 베틀에 허리를 동여 메고 베를 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와 어머니가 부르던 베틀노래가 잇따라 떠오른다. 땅땅 보디집 치는 소리 삼간 초당이 다 울린다 쳇발 질러가는 양은 동에 동쪽 서에 서쪽 무지개가 걸려온 듯 자질개 물 주는 양은 세우비가 뿌리는 듯 자질개를 띄운 양은 게기 낚는 저 노인이 낚싯대를 띄운 듯 싶다 북 나드는 거동은 강남의 연자제비 처마 안에 새끼치고 넘나드는 연자로다 잉애대 삼형제는 드자놓자 굽니흔다 호부래비 눌기대는 알생 혼자 노는구나 엉기정 엉기정 잘도 간다 쿵절쿵 도투마리 많은 군사 거느리고 얼사쿵쿵 잘 넘어간다 - 구미 구전 ‘베틀가’아버지는 밭에서 목화농사를 지었다. 어머니는 그 목화에서 실을 뽑아 무명베를 짜서 옷을 만드셨다. 목화꽃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꽃 진 자리에 다래가 달린다. 어린 다래를 입에 넣고 깨물면 달달한 맛이 배어든다. 어른들 몰래 다래를 많이 따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목화와의 인연은 소년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베틀산 아래 자리 집고 있는 학교의 화단에 목화씨앗을 파종했다. 씨앗은 의성군에서 구해온 것이다. 의성군 금성면 탑리는 문익점의 맏아들 문승로가 현령으로 부임하며 가져온 씨앗을 널리 재배했던 곳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의성의 목화 씨앗이 해평에서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목화꽃 지고 다래가 달리고 다래가 익어 목화솜이 되고 목화솜을 풀어 무명베를 짜던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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