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등을 기대고 가부좌를 하였다. 따사로운 새 봄의 햇살이 지친 어깨를 두드린다. ‘괜찮아, 걱정마, 이렇게 좀 쉬는거야.’라며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데 행복감이 확 밀려온다. 안경을 들고 책 한 권 꺼내 아예 배를 깔고 눕는다. 얼마만인가 이 고요함 속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48평 아파트를 팔고 작은 아파트로 오길 참 잘했다. 퇴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블라인드를 내리던 5층에서 이제 더 이상 커튼을 치지 않아도 되는 산 아래 남향집으로 왔으니 비록 낡은 집이라 해도 남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이 햇볕과 자유로움을 어찌 바꿀까싶네 밤이면 창가에 별들이 찾아오고 새벽엔 10층에서 내려다보는 운무가 황홀지경에 빠지게 한다. 크고, 화려하고 근사한 게 전부라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화장을 지우듯 하나씩 벗겨지는 이 느낌 또한 훨씬 가볍고 경쾌하다. 버릴 건 버리고 가볍고 단순하게 산다는 게 이렇게 좋은걸 왜 진작 몰랐을까. 코로나 19가 계속 확산되고 있으니 사람들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다. 무섭고, 두렵고, 혹시 나도 걸리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 속에 노심초사 벌벌 떨게 된다. 어디 나갈 곳도 없고, 누굴 만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한 집에 사는 가족들조차 각자 방 문 닫고 살아야하고 식사도 자기 접시에 덜어 먹어야하니 이런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뉴스는 계속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그래프만 키우고 시시때때로 삐~~하고 울리는 경보음 탓에 심장이 쿵쿵 내려 앉기만 한다. 괜히 목이 따끔거리는 것 같고 괜히, 열이 나는 것 같으며 숨이 가쁜 것 같기도 한, 이 공포 속에 죽느냐 사느냐는 길모퉁이를 매일 보내게 된다. 하지만 분명히 둘 중 하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처럼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넘어지는 자와 일어나는 자로 분명히 나뉘게 될 것이다. 이 탓 저 탓 하느라 오그라드는 시간 대신, 서랍을 열고 집안 대 청소도 좋고, 미루었던 냉장고 정리나 이불빨래도 딱 하기 좋은 시간들이다. 그 중에서 책 읽기도 즐겁고, 요즘 유튜브로 듣는 좋은 강의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스트레칭도 좋고,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들과 전화 한통도 좋고...... 오늘 아침 양파를 까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힘들어 죽겠다고, 속상해 죽겠다고, 아니, 어떨 땐 팍 죽어버리고 싶다고들 했건만 다들 코로나 앞에서는 벌벌 떨고만 있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가 다섯 단계가 있는데 첫째는 생리적 욕구, 둘째는 안전의 욕구, 셋째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 넷째는 존경의 욕구, 마지막에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명의 불안 속에 안전의 기본욕구에 두려움을 느끼며 심리적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니 어차피 치루어야할 코로나 전쟁이라면 각자, 이 시간을 조용히 자신만의 귀한 시간으로 갖자. 두 팔을 감싸고 자기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얘기도 좀 해주고, 좋은 음악 들으며 생강차 한 잔 따뜻하게 마시는 여유를 즐기자. 그 동안 우리는 너무 분주하게만 살아왔지 않았던가. 이 참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는 고요한 시간으로 말이다. 돈보다 중요한건 맑은 공기였다는 것, 화려한 불빛보다 천만 배 소중한건 따스한 봄 햇살이며, 많은 사람들과 모여 사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훨씬 향기롭다는 걸 느끼며 말이다.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그때까지 모두가 무사히 이겨내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갑게 만나길 바란다. 멀리 뛰기 위해 개구리는 최대한 몸을 움츠린다. 각자 고요히 재충전하는 귀한시간으로 보내자.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절절히 느끼며 말이다. 겨울동안 꽁꽁 얼어붙은 저 진흙을 밀어내고 곧 새싹으로 돋아날 노란 수선화처럼 그날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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