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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단골식당을 자주 찾는 이유가 있다. 음식 맛 때문이다. 친분관계로 갈 수도 있지만, 맛이 없다면 단골이 되기는 어렵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식당에서 고객에게 씹기 어려운 설익은 밥이 나왔다. 그 고객이 식당에 다시 올 것인가? 설익은 밥을 먹은 고객은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식당은 영원히 그 손님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런 행동이 반복된다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차라리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식당으로 안내했다면, 고객은 주인의 책임감에 매력을 느껴 다시 찾았을 것이다.
식당의 성패는 고객의 재방문 여부에 달렸다. 손님의 입소문으로 다른 손님까지 와야 장사가 된다. 지역농산물 역시 식당과 다르지 않다. 맛을 경험한 소비자에게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구매할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주어야 한다. 그런 재구매가 계속 반복되면 그 상품은 지역명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나는 김천명물 샤인머스켓 포도에 대한 선입감이 있다. 그것은 맛이다. 선입감은 미리 형성된 고정적인 느낌인데, 재구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묘하게도 나는 지난해 샤인머스켓을 두 번 먹었다. 질이 높은 포도와 그렇지 않은 포도를 먹었다. 일반적으로, 상품이 좋으면 맛이 있고 질이 떨어지면 맛이 없지만 내가 경험한 김천 샤인머스켓은 반대였다. 상품이 나빠야 맛이 있었다.
처음 맛을 본 것은 지난해 추석 며칠 전이었다. 명절 직전이라 많이 출하가 되었을 것이다. 추석 전 포도는 좋은 물건이었고 가격도 비쌌다. 김천이 고향이지만 처음 샤인머스켓을 먹어볼 기회였다. 좋은 맛을 기대하고 먹었는데, 나는 먹는 시늉만 냈다. 포도알 두개만 먹고 고개를 돌렸다.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풀냄새가 나고 덤덤한 맛이었는데, 남들이 맛있다는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문보다 겪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진리만 확인했다. 그 뒤 남들이 샤인머스켓이 맛있다고 하면 고향 상품이라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캠벨이나 거봉포도보다 못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샤인머스켓의 첫 이미지는 돈주고 사먹을 정도는 아닌 그저 그런 포도였다.
첫 번째 포도를 맛본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직장동료가 농사를 지었다며 싸게 팔았다. 다른 직원이 직원남편은 원하는 당도가 되지 않으면 수확하지 않는 외골수라 맛이 있을 거라고 구매를 권했다. 나는 직원이 판매하는 것이라 속는 셈 치고 두 박스를 주문했다.
두 번째 포도는 저렴한 가격답게 상품의 질도 떨어졌다. 알갱이도 작았고 색도 일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맛은 극과 극이었다. 한 박스를 가족에게 보냈는데 아이들이 맛을 보고는 샤인머스켓만 찾았다. 그 뒤 직원에게 부탁하여 몇 차례나 샤인머스켓을 사서 가족과 다른 지인에게 보냈다. 두 번째 포도를 먹었던 모두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김천 샤인머스켓 최고라며 인사를 했다.
김천포도하면 박피포도로 알려졌다고 한다. 박피는 이른 출하를 위해 껍질을 벗겨 색을 빨리 내는 방법이다. 높은 가격은 받을 수 있지만 맛이 형편없다고 한다. 식당으로 따지면 설익은 밥인 셈이다. 김천포도라는 식당에서 설익은 밥을 먹은 고객은 다시는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설익은 밥은 식당 주인만 피해를 보지만, 설익은 포도는 김천 농민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지역 특산물이 유명해지기란 쉽지 않다. 성주참외, 나주배, 진영단감이 우연히 지역특산물이 된 것이 아니다. 생산자와 해당 지자체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즘 김천에서 샤인머스켓이 많이 생산된다. 가격이 높아 가까운 시일 내에 타 지역에도 많이 생산되어 경쟁이 심해질 것이다. 샤인머스켓이 김천명물특산품이 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김천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피포도나 설익은 포도로 돈을 좇아 맛과 명예를 버린다면 김천포도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생산자는, 덜 익은 포도를 절대 수확하지 말아야 한다. 나처럼 좋은 상품이 맛이 없다는 이미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재구매하도록 반드시 익은 상품만 판매해야 한다. 정해진 당도 이상이 되어야 수확하고, 당도가 기준보다 낮은 상품은 폐기하는 용기까지 있어야 한다. 만약 김천포도가 당도가 낮아 폐기하였다는 용기있는 소식이 방송을 탄다면, 소비자에게 큰 신뢰를 얻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산해야 한다.
또한 김천시나 지역농협에서도 생산 농민을 도와야 할 것이다. 우선 제품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당도, 무게, 포도알의 크기까지 정확히 표시한 제품을 김천시가 인증해 준다면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만약 인증마크에 적힌 상품보다 질이 떨어지면 지자체 예산으로 즉시 환불해주고 보상하는 제도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 인증마크를 붙여 판매하는 제품은 정기적으로 적정여부를 확인도 해야 할 것이다.
가끔 방송에서 유명한 맛집을 본다.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주인의 변함없는 손맛으로 이루어진다. 고향 김천에서 생산된 샤인머스켓도 변함없는 맛으로 명품이 되기를 기원한다. 생산농민과 김천시의 협력으로 우리지역 명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번 추석만큼은 돈을 위해서 명예를 버리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란다. 김천명품 샤인머스켓 포도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불러주는 이름이 되기를 빈다.
* 수필가 정근식은 대덕출신이며 지난해 국민연금공단 김천성주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공단본부에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