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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코로나와 손녀(1)

정성천수필가 “할아버지, 우리 뱀 놀이해요”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6일

삶의 향기
코로나와 손녀(1)

정성천 수필가



정성천 수필가

“할아버지, 우리 뱀 놀이해요.” 손녀가 내 손을 아래로 마구 잡아당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방바닥에 엎드려 손녀와 함께 뱀이 되고 만다. 뱀 놀이는 내가 고안해낸 손녀와 함께하는 놀이이다. 쉴 새 없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손녀의 술래잡기 놀이 대신에 내가 좀 편해 보고자 애써 고안해 낸 놀이가 뱀 놀이다. 손녀와 재미있게 놀긴 놀아야 하겠고 내 체력이 감당할 수 있는 놀이가 바닥에 누워서도 할 수 있는 뱀 놀이다.

내 외동딸의 자손 피붙이라고는 이 손녀가 유일하다. 이제 겨우 다섯 살 유치원생 계집애지만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함께 놀아 주려면 내가 항상 체력이 달린다.

손녀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6년 8월 10일이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생애 처음 맞이하는 손녀라 가슴 두근거리는 흥분을 억누르며 첫 상봉을 했던 일이 기억난다.
하지만 신생아들이 다 그럴 것이나 지금처럼 예쁘지도 않았고 살갑게 가슴에 다가오는 진한 느낌은 없었다. 그저 내 피붙이려니 하는 막연한 친밀감이 전부였다.

3주간 산후 조리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난 후 친정에서 석 달간 몸조리를 시키고, 모녀를 시댁으로 보내는 게 산후 후유증으로 고생을 해 본 아내가 할 수 있는 딸내미에 대한 최대한의 봉사이었다. 물론 그 계획에는 딸내미 몸조리도 몸조리이지만 처음 안아보는 손녀에 대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 풀이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펼쳐지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의 속성이라서 그런가? 생후 한 달 만에 사랑 풀이는 고사하고 아직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데 손녀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년퇴직 후 쉬고 있던 내가 남미 페루의 한국교육 자문관 시험에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퇴직 후 2년이라는 세월은 무료함과 함께 서서히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간다는 좌절감을 나에게 각인시키며 나를 무기력함의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발버둥이라도 쳐 보자는 속셈에 응모했던 것이 해외파견 퇴직자 교육자문관 시험이었다.

손녀가 산후 조리원을 졸업하고 우리 집에 내려오던 날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이내에 페루로 파견 나가야만 한다는 통보도 함께 받은 것이다. 한 주라도 파견을 미루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파견을 포기해야 한다는 답변만 들었다.

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파견 일주일 전에 딸은 서울 저네들 집으로 올라가야 했다. 우리 내외도 출국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달포도 되지 않은 핏덩이를 포대기로 싸안은 채 보내기가 얼마나 마음이 안 됐든지 아내는 찔끔찔끔 눈물을 훔치며 그렇게 모녀를 서울로 보내야 했다. 특히 출국 하루 전날 딸네 집에 머물 때 방긋방긋 웃던 손녀의 그 모습은 삭막한 페루의 힘든 이국 생활을 이겨내는 청량제가 되었다.

3년간 페루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30여 시간의 항공여정에도 손녀를 안아볼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카톡 영상통화로 매일 보다시피 해온 3년이지만 어떻게 성장했는지 가슴에 직접 안아보고 그 보드라운 살결의 감촉을 느껴보지 않고는 손녀는 나에게는 항시 신기루와 같은 존재였다.

3년 만에 공항에서 이루어진 손녀와의 해후는 나에게는 꿈만 같은 감동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손녀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던가 보다. 영상통화로 열심히 손녀에게 낯익은 모습이 되려고 노력해 왔지만 마치 내가 손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처럼 무덤덤하고 약간은 귀찮은 듯한 제스처도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안겨보라고 건네주니까 마지못해 나에게 안겼으나 몸은 굳어있는 상태로 긴장됨이 확연히 느껴졌다.

3년이란 세월의 강은 손녀와 나 사이에 서먹함과 어색함의 장막을 짙게 드리워 놓았다. 손녀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에게 달려와 덥석 안기는 장면을 얼마나 많이 상상해 왔던고? 그리고 그 보드라운 손녀의 볼에 나의 볼을 비비기도 하며 내 어깨 위에 무동을 태우고 덩실덩실 공항 대기실 문을 나서는 장면을 얼마나 많이 상상해 왔던고? 허무하고 실망스러웠다. 그저 바라보며 미소 짓는 사이로 만족해야 했다.

작년 9월 페루에서 귀국하고 손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기도 하고 작년 성탄절에는 선물 공세도 펼쳤다. 하지만 손녀와 나 사이는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없었다. 만나면 반갑게 스스로 달려와 덥석 안기는 사이가 아니라 엄마나 아빠의 손을 통해서만이 나에게 다가왔다.

꼭 의무방어전을 치르야 하는 복싱선수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 즉 엄마 아빠의 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손녀는 나의 외곽에서만 빙빙 도는 아웃사이드였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듬어 안고 볼에 뽀뽀도 하고 등에 업고 추스르며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손녀의 마음을 마냥 무시하고 나의 욕심만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하듯이 한쪽이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어느 한쪽에서는 좋은 일도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인 모양이다. 손녀와의 막막한 어려운 관계를 풀어 준 것은 의외로 코로나19사태였다. 코로나19가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고 경제를 위축시키는 등 사회에 나쁜 해악을 끼치고 있으나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코로나19의 감염사태가 시작되자 서울 소재 유치원의 등교가 중지되었다. 맞벌이로 바쁜 딸네가 낮 동안 손녀를 돌볼 수가 없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손녀를 돌봐 줄 수 없겠느냐는 딸내미의 요청에 우리 내외는 서울로 올라가서 손녀를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의 좁은 공간은 장시간 손녀를 돌보기에는 너무 갑갑하고 아내에게는 손이 낯선 주방이 불편했다.
(계속)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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