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현대수필의 출발 김천 수필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하다 (6)
논설위원 민경탁
수필가 김도양은 「흘러간 세월, 님도 가시고」 (1965.10) 부터 김효상(金曉想)이란 제2의 필명을 쓰기도 하며 수필작품을 남겼다. 그의 수필은 잠언적, 사변적이다. 1960~1970년대 김천 지역사회에서 본격 수필로 주목받은 수필작품을 더 소개해 본다.
돌풀
ㅤ김도양(金島陽)
실제(失題) 잊으려는 몸부림은 그리움의 감옥으로 가는 것이다.
다시 실제(失題) 사랑과 정을 빼놓은 인생은 시체와 다를 게 어디 있겠는가.
무제(無題) 지금 이때에도 흐르고 있는 시간이 제한된 인생에서 소진되어 가는 가장 귀중한 때임을 그대는 아는가.
종교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종교는 지리를 모르는 자를 인도해 주는 것과 같았다면 앞으로의 종교는 지리를 잘 아는 자가 스스로 자기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을 풀어 주어야 되잖을까.
20세기 후반에 대하여 20세기 후반은 마치 자기가 정성껏 살고 길러 논 나무숲에 들어가 빠져 나올 길을 잃은 과수원의 주인과는 같을 것이다.
다시 무제(無題) 어쩌면 예술이란 인간과 신의 중간 존재가 아닐까.
괴로움 자신으로 인한 괴로움이 없는 자는 자기 자신을 벌써 잃은 것과 같을 것이다.
또 다시 무제(無題) 진리를 찾는 것은 곧 시간을 잡아 놓은 것을 뜻한다.
신(神)의 존재 신은 대우주 진화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엄연한 완성이려니.
- 『소문화』(1964. 10)
움직임에 대하여 만물의 움직임을 가만히 살펴보라. 어느 크고 적고 간에 하나의 움직임은 과법의 움직임과 똑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대우주의 발걸음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권태에 대하여 권태, 이 얼마나 많은 명작을 상실한 이름인가.
- 『소문화』(1965. 10)
서러운 공짜
김수명(金壽命)
세상에 공것이 어디 있노. 옳은 말이다. 선악 간에 그 대가는 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노력이나 인정이나 상품까지도 그 대가는 형식이 여하튼 가면 오는 법인데,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자네 그림 한 장 안 줄려는가. 제일 좋은 것으로. 뭐 할려고 그 많은 그림을 쌓아 놓기만 하면 어쩔 작정인가. 내 한 잔 살 테니 언제쯤 찾아갈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땐 가도 부도 대답을 못한다. 한 잔 값밖에 안 되는 나의 그림. 그 친구는 나를 좋아하고, 내 그림을 한 장 집에 걸어 놓고싶은 호의를 모르지는 않는다. “또 그리면 될 걸. 얼마든지 척척 나올 것 아닌가, 자네 사.” 이런 말도 듣는다. 쟁이 밖에 못 되는 내 신세야. 그 친구가 나를 높이 평가해 주는 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그림을 그리자면 첫째 좋은 생각이 떠올라야 하고 그 생각을 옮기자면 그 만한 재료와 시간과 정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좋은 생각이 무진 샘솟듯 나오질 않는다. 이는 역량이 부족에서 오는 탓이겠지만, 오랜만에 하나씩 떠오르고 그것마저 버려야 할 때가 일수이다. 직공이 같은 물품을 자꾸 만들어 내듯이 하면 안 되는 것이 또한 그림이다. 열 장이고 백 장이고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수록 실패작뿐이 된다. “실패했다는 그 작품이라도 좋으니 달라”는 동정가(同情家)도 있지만 실패가 영영 그것도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재료와 시간과 정력도 마찬가지다. 재료는 공것이 아니다. 다 돈을 치르고 사야하고 그나마 구하기 힘든 것이다. 시간이 남아서 못 견디는 그런 한가한 사람도 아니다. 살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는 신세고 보니 넉넉하기는 고사하고 재료가 아까워서 작품하기를 주저 할 때가 많다. 산이라도 빼내 옮길 수 있는 정력가는 더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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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화』 제11집 (김천문화원, 1965.10). 1950~1970년대 지역사회 문화, 문학활동의 메인스타디움 역활을 했던 『소문화』지는 제21집(1974.3)부터 제호가 『김천문화』로 바뀌었다. 자료 제공 : 김천문화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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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가운데는 의사가 된 사람, 법률가가 된 사람, 목수가 된 사람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미술 공부를 20여 년 해왔다. 그런데 의사 친구보고 주사한데 공짜로, 법률가 친구에게 일 부탁 맨손으로, 목수 친구에게 문짝하나 그대로 달라고는 못하는 데. 그들이 유독 그림에 대해서는 공짜를 바랄까 모르겠다. 나도 공짜 아닌 공부를 했는데 있으나 마나의 공짜 공부, 그림, 노는 장난? 재료가 어떠 하느니 시간이 어떠 하느니 해서 대가 운운하면 돌았다고 하고, 인정머리 없다고 하고, 물욕에 더럽다고 한다. 물질생활을 떠난 한사(寒士)를 귀히 여기는 풍습은 좋다. 권세나 부귀에 끌리지 않고 지조를 지켜나가는 그들이야말로 선비이다. 그러나 지조를 지켜나가면서 부귀와 권력을 가진 선비는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 아닌가. 예술이나 학문하는 사람은 으레 가난해야 하고 공짜 평생을 살아야 값이 있고, 옳다고 생각하거나 봐 주는 세태를 못 견디겠다. 예술이나 학문은 더욱 높고 깊게 키워나가자면 가난해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예술 하는 사람은 광인이나 기인(奇人) 대우로, 살림이나 세상 물정은 모르고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 탓인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고쳐야 할 생각이다. “예술이라 해서 공것이 어디 있노.” 공짜로 왔다가 공짜로 가는 것이 인간이기는 하지만 한생을 사는 데는 공짜 아닌 것도 필요하고, 공짜이기 때문에 그 고생된 그림은 파리들의 배설장소가 되어버리는 수가 많다. 이것은 대접이 아니고 큰 모욕이다. 그림은 장난이 아니고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에.
- 『소문화』(196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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