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코로나와 손녀(2)
정성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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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천 수필가 |
그래서 시골 전원주택 우리 집으로 손녀를 데리고 와서 돌보는 방법이 가장 안심되고 더 편한 방법이 될 것 같았다. 딸네도 그게 좋겠다고 해서 손녀를 시골 우리 집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어린애들의 심성이 자연에 가까워서 그런지 자연 속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손녀는 나에게 마음을 쉽게 열기 시작했다. 나는 손녀를 손수레에 태워서 밭둑길을 거닐며 풀꽃 이름을 알려 주기도 하고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아서 함께 놀기도 했다.
풀꽃 중 손녀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애기똥풀’이다. 노란 꽃을 꺾으면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액체가 꼭 갓난아기 똥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일러줬다.
두 달 반 동안 시골 우리 집에서 ‘코로나’ 피난 생활을 하고 유치원이 다시 문을 열자 손녀는 서울로 올라갔다. 두어 달 지난 뒤 손녀가 보고 싶어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 지냈다. 운동 삼아 함께 북한산 자락을 오르다가 손녀가 산 길옆 풀꽃을 보고 “애기똥풀이다.”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김천의 ‘배때이’못에 가서 오리도 보고 싶단다. ‘배때이’못은 시골 우리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저수지이다.
손녀가 시골의 풀꽃과 장소 이름을 아직도 외우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또한 고맙기도 하다. 손녀는 유치원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다시 김천 외할아버지 집엘 가고 싶다고 한다. 외가를 가고 싶은 장소로, 외조부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이제 소원 성취한 느낌이 든다. ‘코로나’가 너무나 고맙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손녀와 내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친밀하게 가까워질 수가 있었겠는가?
손녀가 유치원 방학으로 우리 집에 올 때는 ‘코로나’를 피해 올 때와는 태도가 전혀 달랐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파란 잔디밭을 가로질러 “할아버지!”라며 뛰어와 내게 와락 안기는 손녀의 모습!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상상해 왔던 손녀와의 상봉 장면이 아니었던가? 감격의 눈물이 났다. 마치 젊었던 시절 사랑하던 여인이 떠났다가 오해가 풀려 돌아와 품에 안기는 듯한 감격이랄까.
손녀와 나, 우리 사이에 드리워졌던 서먹함과 어색함의 짙은 장막이 걷히기 시작했다. 손녀는 이제 부드러운 스킨십으로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임팩트가 강한 대화 즉 몸으로 부딪치는 대화를 나누기를 원한다. 달려와 부딪치거나 높은 곳에서 나에게로 뛰어내리기가 일수다. 안아 달라 업어달라는 것은 기본이다. 내가 앉아 있으면 어느새 어깨 위로 올라가서 목에 매달리며 무동을 태워달라고 조를 때가 많다. 손녀가 다칠까 조심스러워 항상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더구나 이제 내 나이도 나이인지라 팔다리와 허리가 아플 때도 있고 무엇보다도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애 어미는 손녀의 응석을 다 받아주지 말고 무례하게 굴면 따끔하게 나무라기도 하고 아버지 허리도 항상 조심하라고 누차 이야기한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데 언제 이런 시절이 또 오겠는가? 어떻게 여기까지 만들어 온 관계인데. 이런 시기가 또 얼마나 오래 지속이 되겠는가? 길어야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앞으로 고작 1년이지 않을까 싶다. 힘에 부치지만 내 나이로 손녀와 함께하는 시간 중 가장 젊은 나이가 지금이 아닐까?
손녀의 모습에서 때때로 나를 본다. 나의 유년 시절의 아련한 모습들이 스치는 시선에 중첩될 때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녀의 모습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아내도 보이고 때로는 딸내미도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통의 어떤 업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건가? 이래서 피붙이인가 보다.
내가 방바닥에 엎드리자 “친구야, 우리는 뱀이지? 그지?” 손녀가 확인한다. “그럼 우린 사이 좋은 뱀 친구지. 우리 이제 뭘 할까?” 내가 묻자 손녀는 재빨리 재촉한다. “뭘 하긴 뭘 해! 빨리 공주를 구하러 ‘마법의 성’으로 가야지! 마녀에게 사로잡힌 공주를 하루 빨리 구해야 한단 말이야!”
내가 일부러 천천히 뜸을 들이며 말한다. “뱀인 우리가 과연 공주를 구해 낼 수 있을까?” 다시 손녀는 시간이 급한 듯 말한다. “공주를 가둔 마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뱀이라고 했어. 그러니 우리가 빨리 가야 해.” 나는 다시 느긋이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마법의 성’을 지키는 악어가 있잖니? 어떻게 악어 몰래 ‘마법의 성’에 들어가지?”
이번에는 손녀가 얼른 내 등 위로 올라탄다. 그리고 내 목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내가 너의 등 위에 올라타면 우리가 꼭 악어처럼 보이잖아. 그래서 악어가 우리를 친구인 줄 알고, 모를 것이야. 어서 빨리 가자.” “ 아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네.” 나는 손녀를 등에 태우고 이제는 악어처럼 엉금엉금 건넌방으로 아니 ‘마법의 성’으로 기어서 간다.
손녀는 젖먹이 아기 때부터 잠자리 동화를 많이 들어 온 덕택에 동화와 같은 스토리를 넣고 역할극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술래잡기 놀이 대신에 고안해낸 것이다. 바야흐로 내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손녀는 이 놀이를 좋아한다. 한 번도 공주를 만난 적도 없이 중간에 놀이는 끝난다. 하지만 손녀는 나만 보면 팔을 잡아당기며 뱀 놀이하자고 조른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나 겉으로는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체력 소모 없이 편하게 누워서 그것도 서로 몸으로 부대끼며 손녀와 노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놀이 인지.
8월 말인데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에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조짐이 보인다고 방역 당국에서 야단이다. 다시 유치원도 등교 중지되는 지역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손녀를 다시 데리고 내려와야 하는 기분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빨리 다른 좋은 놀이를 고안해야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