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타율 사이를 오가며
민경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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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탁 논설위원 |
그리스 신화에서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女神)이다. 어느 날 제우스가 심한 두통으로 쩔쩔매고 있었다. 참다못한 그는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돌도끼로 아픈 머리를 때리도록 명했다. 신의 일이니 죽을 염려는 없을 터. 도끼로 머리를 힘껏 때리니 머리가 깨어지면서,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으로 완전무장한 아테나 여신이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왔다. 물론 제우스의 머리는 상했을 리 없고 다만 그 모진 두통이 깨끗이 나았다. 이렇게 아테나는 어머니가 없이 태어났으며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방 전설에 의하면 에리크토니오스라는 남자 아이를 두었다. 이 아테나 신화에는 인간사에서의 자율과 타율의 관계를 시사(示唆)하는 바가 있다. 원래 ‘학(學)’의 자의(字義)는 아랫사람(子)이 윗사람을 두 손으로 받들어 본받다(爻)는 것. ‘교(敎)’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본받고(爻:자율적인 배움),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다(攴 :타율에 의한 가르침)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곧 배우거나 가르친다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본받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채찍질해 올바로 일깨우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것은 서로를 기르는 것(敎學相長)이 되나보다. 자율은 넘치면 방종, 악행, 퇴폐가 된다. 몇 해 전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연쇄 테러, 총기난사 사건을 기억한다. 수도 오슬로 출생의 브레이 비크라는 30대 청년이 정부 청사에 폭단 테러를 가하고, 집권 여당의 청년캠프 행사장에 총기를 무차별 난사했다. 그로 말미암아 정부 청사 테러에서 8명, 노동당 주최 청소년 정치캠프에서 68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행 동기가 극우 민족주의에 의한 정치적, 종교적 성향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그는 범행 후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과 일본은 보수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한 이상적인 국가다 … 일본과 한국의 가부장제를 본 받으라”고. 이 청년은 징역 21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오히려 노르웨이 당국을 인권 침해로 고소했다. 그러면서 “수감실에 장식이 되어 있지 않으며 풍경이 아름답지 않다” “빵에 바를 버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커피의 온도가 너무 차갑다”는 등의 불만을 토했다. 지난 7월 프랑스 바욘에서 50대 버스기사가 코로나 감염 방지 마스크를 쓰지 않은 20대 초반 두 사람의 승차를 거부했다가 집단폭행 당해 숨졌다. 프랑스에선 근래에도 대형 테러, 참수 사건이 멈추지 않고 있다. 2016년에는 무슬림 남성이 트럭을 몰아 축제를 즐기던 군중을 덮쳐 86명이 숨지게 했다. 두어 달 전 이웃의 오스트리아에서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적어도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에서 총기 사건은 국가적 골칫거리다. 우리는 미국에서의 총기 무차별 난사 사건을 흔하게 본다. 최근 어느 주에선가 도로에 인접한 농구장에서 청소년들이 놀이하던 농구공이 밖으로 굴러 나와, 주행하던 승용차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운전자가 청소년들에게 총을 쏘고 달아났다.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는 총격 사건이 흔히 일어나고 기관총이 동원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인간의 행위에서 자율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 자유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개인 총기 소유가 법적으로 허용된 나라가 동양보다 서양이 훨씬 많다. 평균적으로 테러나 총격,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은 동양에서보다 서양에서 훨씬 많이 일어난다. 프랑스에서는 지금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태권도 선수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다. 프랑스 내 1000 곳의 교육기관에서 약 6만 명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파리 근교 초등학교에서는 태권도를 정규 교과목에 편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단다. 프랑스가 태권도를 인성교육, 공교육 강화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왜 이러는 것일까. 동양무술 아니 한국의 태권도가 예의·인내·인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 절도 있는 동작이 서양인에게 정신 수양의 매력으로 보인 것이다. 동양무술 중 프랑스에서는 유도(약 53만 명), 가라테(24만 명) 다음으로 태권도 수강생이 많다는 보도가 있다.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서양보다 동양에서 먼저 강조됐다(공자). 서양에서 지혜·용기·절제·정의를 강조하기 이전이다(플라톤). 동양에서 인을, 서양에서 지혜를 최우선시 한 것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인이란 배려요 관용이며 결국 사랑이 아니겠는가. 이는 공자께서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고자 하는 축으로 삼은 사상이다. 그래서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공동체적 이익에 좀 밀려도 잘 참아내나 보다. 일반적으로 동양인은 단체의 정신과 가치를 존중하고 따르기에 서양인보다 앞선다. 무지해서 그런 것일까. 아닐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인 중동지방에서 대규모 테러, 끔찍한 살상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도 종교 갈등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성은 자율과 타율의 왕복 수련에서 올곧게 형성된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쳐 형성된 인간성에는 어떤 표가 난다. 자율과 타율 사이를 오가며 인성은 균형감 있게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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