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 그릇
‘평화(平和)의 탑’에 부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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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식
수필가,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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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2일, 김천 직지사 아래에 사명대사공원이 개장되었다. 사명대사가 주지로 있던 사찰 곁에 조성된 이 공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평화의 탑’이다. 높이가 41미터로 국내에서 최고로 높은 5층 목조탑이다.
탑의 1층 안에는 사명대사의 일생과 행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이 탑의 명칭과 가장 관련되는 안내판이 ‘평화의 사자(使者)’라 하겠다. 대사는 임진왜란 중이던 1594(선조27)년에 강화사(講和使)이자 대선사의 자격으로 당시 일본군 전체의 대표격인 가토 기요마사와 울산 서생포에서 첫 회담을 하였다.
이후 선사는 1604년 일본 본토로 들어가 당시 집권자인 도쿠가와이에야스와의 회담을 통하여 전란으로 인한 어지러운 국제질서를 정리하고, 아울러 조선통신사의 길을 열어 이후 260년 동안 양국 간의 평화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렇듯 이 탑은 우리들에게 일차적으로 ‘전쟁’에 대비되는 평화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소극적 의미의 평화라 할 수 있다. 평화는 전쟁만 없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평화지도자이며 국제창가학회 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 박사는 “평화의 실제 내용은 굳이 말하자면 인권을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는 아직 평화와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가 아니라 당장 현재의 우리 국내 현실만 보더라도 전시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평화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는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정주진 평화학 박사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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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공원 내에 있는 평화의 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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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에게는 ‘폭력’에 대해서 철저히 아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일이 된다. 이 폭력을 낳는 씨앗의 하나는 ‘평화(平和)’라는 한자의 뜻풀이에서 드러난다. ‘평(平)’은 높낮이에 차이가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 반대되는 글자는 ‘차(差)’이다. ‘화(和)’는 서로 다른 것들이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뜻이며, 그 반대되는 글자는 ‘별(別)’이다. 그래서 ‘평화(平和)’의 반대말은 차별(差別)인 것이다. 예컨대 공정과 도리와는 거리가 먼 편 가르기식 법 적용과 같은 차별이 분노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감정들이 싸움 혹은 폭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한결같이 소중히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서로가 한 인간으로서 수평적 눈높이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인권을 실현하는’ 평화의 근본이다. 또한 이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의 요새를 구축’하는 일이요,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마침 김천시에서는 “Happy together” 운동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가꾸려는 이 운동이, 새로운 랜드마크인 ‘평화의 탑’과 조화롭게 만날 때, 언제 어디서나 전쟁은 물론 차별이나 폭력이 없는 화평(和平)한 세상을 꿈꾸는 희망(希望)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웅장한 목탑이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긴 안목으로 항구 평화에 대해 종합적인 연구를 하고, 그 평화의 사상을 널리 펴는 센터로 발전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탑의 아름다운 야경(夜景)이 진정한 평화의 불빛으로 온 누리를 더욱 밝게 비추어 나아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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