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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7]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대감(大監)!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셨소?”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8월 16일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대감(大監)!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셨소?”

칼럼니스트·전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 김천신문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신숙주(1417~1475)의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며, 본관은 고령이다. 세종을 비롯한 6명의 임금을 모시고 20여 년간 재상을 지낸 노련한 정치가이자, 유능한 외교가이며 언어학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저간의 역사에서 그는 공보다 과실이 많은 변절자라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종의 복권을 모의하다 멸문(滅門)의 화를 당한 지 어언 200여 년이 흐른 1691년(숙종17), 성삼문 등 사육신의 관작이 추복(追復) 되었다. 이후 사육신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되는 반면, 세종의 은혜를 받고도, 세조의 편에 서서 목숨을 부지하였던 신숙주는 당시 변절자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변절자로 매도되었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여름철에 맛이 쉽게 상하는 ‘숙주(녹두)나물’을 잘근잘근 씹으며 신숙주를 욕하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일국의 재상 신분이었던 신숙주를 한갓 숙주나물에 비유한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평소 신숙주가 ‘녹두나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조가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부르게 했다는 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숙주가 충청도 체찰사로 활약할 즈음, 기근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빨리 자라고 쉽게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녹두를 콩나물처럼 물을 주어 길러서 먹도록 권장했다는 설이다. 굶주린 백성들을 위하여 먹기를 장려하였던 식품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폄하시켜 치욕의 여죄를 추가시키는 오명으로 이어진 셈이다.

신숙주의 변절을 논할 때 또 하나 많이 회자(膾炙) 되는 부분은 신숙주의 부인 윤씨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사육신의 옥사가 있었던 날, 신숙주가 대궐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자 방문이 훤히 열려있었다. 신숙주가 방안을 살펴보니 부인이 다락 위에 올라가, 두 어 자쯤 되는 베로 들보에 목을 반쯤 매고 울고 있었다. 신숙주가 놀라 그 연유를 묻자, 윤씨 부인은 남편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감께서는 평소 친하게 지내셨던 성학사(성삼문)와 함께 오늘 죽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대감께서 죽었다는 통지를 받는 데로 소첩도 자진(自盡)하려 했는데, 대감께서 이렇게 살아 돌아오시니 정말 뜻밖입니다.” 신숙주가 충절의 도리를 저버린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여,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윤씨 부인은 이미 보꾹에 목을 매고 축 늘어져 있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중기 문신 이기(李墍,1522~1600)가 지은 야사 『송와잡설(松窩雜說)』을 참고한 월탄 박종화의 단편소설 『목 매이는 여자(1923년)』와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1929년)』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사육신의 옥사(1456)가 있기 5개월 전 윤씨 부인은 이미 병사하였으며, 당시 신숙주는 중국에 사신으로 가 있어 부인의 부음조차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역사적 고정이 어렵던 시절, 춘원과 월탄은 본의 아니게 신숙주의 부정적 평가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신숙주는 오늘날까지 변절의 대표적인 인물로 낙인찍혀 명예를 잃긴 하였지만, 저술 등으로 많은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신숙주는 만년에 지난날 세조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 체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살아온 자신의 처지에 일말의 자책이라도 하듯, 자신의 고향 나주에서 멀지 않은 남원 땅 광한루에 올라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다. "뜬구름 같은 부귀공명 따질것이 못되니/ 임천(林泉)의 흥취 아직 버리지 못하겠노라/ 인생에 천명있음 이제야 믿겠노니/ 공명은 구하기도 어렵고 물리치기도 어려워라." 이래저래 모든 것이 변질하기 쉬운 삼복(三伏)의 뜨거운 계절이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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