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소낙비가 오락가락한 일기도 불순한 날, 우연히 (사)신라문화진흥원 문화답사팀의 천안지역 문화답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는 여정이 주는 설레임과 어색한 신선함이 미묘한 내적 갈등도 불러왔지만, 일상에 여유를 안겨준 씻김굿이기도 했다.
10여 일이 지난 뒤, 비록 지각답사기를 쓰게 되었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복기하는 이 순간은 행복하다.
답사의 시작은 천안시 박물관이었다. 유홍준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를 나누었던 각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한 시대를 자신의 믿음과 의지에 따라 일생을 걸고 묵묵히 삶을 영위해간 그들이야말로 그 시대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고, 그런 삶이 있었기에 지역문화는 사멸되지 않는 생명력을 갖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빡빡한 일정과 길도 서툴고 문화유적에 대한 지식도 얕은 탓에, 삶을 영위해 온 사람의 향기가 나는 곳에서 중원문화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모든 유적지와 유물을 당일 코스로 돌아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기에, 답사팀이 사전에 선정해둔 곳을 중심으로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답사팀의 김호상 박사의 해박하고도 편안한 설명은 무정(無情)의 유물이 유정(有情)의 실체로 다가오게 해주었다.
|
 |
|
봉선홍경사갈기비
|
|
답사팀이 탑승한 전세 리무진 버스의 행로를 따라 찾아간 곳은, 성환읍 대홍리 대로변에 위치한 “봉선홍경사갈기비(奉先弘慶寺碣記碑)”였다. 고려조 제8대 현종(顯宗)이 아버지 왕욱(安宗)이 법화경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 절을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그 뜻을 받든다는 의미에서 사찰명 앞에 봉선(奉先)을 붙였다고 한다.
|
 |
|
봉선홍경사갈기비 귀부
|
|
갈(碣)은 석비(石碑)보다 규모가 작으며,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碑)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한다. 그러나 봉선홍경사갈기비는 귀부(龜趺/거북받침돌)와 이수(姨首/이무기를 조각한 머릿돌)를 갖추고 있는 특징이 있다.
|
 |
|
천흥사지
|
|
그리고 일행이 찾은 곳은 성거읍 천흥사지(天興寺址)였다. 사찰이 풍광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사지(寺址)는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절터는 힐링의 공간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으로 사지를 답사해보는 것도 좋다. 그것도 별밤에.
|
 |
|
천흥사지 오층석탑
|
|
천흥사지는 문화재조사단의 유적발굴이 한창이었다. 천흥사지 5층탑은 통일신라의 탑이 안정감과 정제미가 돋보이는 3층인데 비해, 백제의 영향을 받은 듯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의 각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새겨졌고,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아 보였다. 탑의 완만한 체감률은 대체로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었다.
|
 |
|
천흥사지 당간지주
|
|
마을에는 2단의 기단위에 세워진 천흥사지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있었다. 절에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란 ‘깃발’을 달아주는 장대를 당간이라고 하는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돌기둥이 당간지주이다. 이를 통해 절집의 위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
|
광덕사 대웅전
|
|
절집에서 종(鐘)소리는 바로 부처의 소리이자, 부처와 보살에게 바치는 모든 소리를 의미하는 범음(梵音)을 만들어 내는 불교 사물(종, 법고, 목어, 운판) 중의 하나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높이 1,33m의 성거산 천흥사 동종(국보 280호)은 꿈틀거리는 용(龍) 모양이 새겨진 종의 고리인 용뉴(龍鈕)와 소리 울림을 도와주는 대나무 모양의 용통(甬筒) 등 고려 범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곽 아래 위패형 명문곽이 있어 종의 주조연대를 알 수 있다.
|
 |
|
삼태리 마애여래입상석불
|
|
일행은 발길을 재촉해 풍세면 삼태리의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을 찾았다. 태학산(455m) 태학사 뒷산 기슭에 있는 7.1m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다. 윗부분에는 비를 막아주는 건물 흔적이 보였다. 얼굴은 도드라지게 조각했고, 신체는 선(線)을 이용해 표현한 고려 후기 마애불 양식이었다. 특히, 두 손을 가슴까지 들어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오른손은 왼손 위에 손등이 보이게 한 것이 전형적인 미륵불상의 손 모양이다. 마애불에서 내려오는 좌측에 암굴 법당이 있는데,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영험한 지장보살 기도 도량이라고 한다.
|
 |
|
암굴법당
|
|
|
 |
|
암굴법당
|
|
답사 일정의 마지막 행선지 광덕사에 도달했다. 보화루 앞 계단 우측에 수령 400여년의 호도(胡桃)나무가 있다. 광덕사가 호두나무 시배지로 알려지게 한 나무이다. 높이는 18.2m, 지상 60cm에서 줄기가 갈라져 가슴높이 둘레가 각각 2.62m, 2.50m에 이른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16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유청신 선생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고 구전된다.
|
 |
|
최초의 호도나무
|
|
답사를 마친 후, 경주 일행과는 헤어지고 나머지 일행들은 인근 맛집에서 하산주(下山酒)를 겸한 정 나누기 한담(閑談)의 시간을 가졌다. 문화유산으로 떠났던 시간여행자들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크고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있던 옛터에 남은 흔적들은 그들의 삶의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랬다. 그날의 여정은 삶에 정(情)이라는 온화한 색깔을 입혔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