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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청암사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05월 22일
ⓒ 김천신문
“1689년(숙종 15년)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권력을 잡은 기사환국으로 노론계는 대부분 유배되거나 사사되었고, 동년 5월 인현왕후 민씨는 폐출되고 장희빈을 정비로 책봉하였다.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는 청암사에서 3년간 은거하면서 청암사와 수도암 일대를 왕래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숲길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전으로 ‘왕비길’ 또는 ‘인현왕후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1694년(숙종 20) 원자의 생모를 내세워 차츰 방자해지는 장씨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숙종이 민씨를 폐한 일을 후회하게 되었고, 때마침 일어난 복위운동을 옳게 여겨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이 재집권하게 되고 폐비 민씨도 복위되었다. 인현왕후가 복위되어 청암사를 떠난 후 스님들의 산책로나 나무꾼, 들짐승들의 통행로로 명맥을 이어왔다. 1980년대 초 산림청에서 산불 진화용 임도를 개설하면서 확장되었고, 2015년 김천시에서 숲길을 조성하면서 인현왕후길로 명명되었다. 2018년에는 한국관광공사로부터 ‘8월에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현왕후길의 총 길이는 8.1㎞이며, 도보로 2시간 20분이면 충분히 완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2020년 말에는 미개통 구간이었던 청암사 방면으로도 연결이 완료되어 청암사에서 수도암까지 보다 쉽게 접근이 가능해졌다.” 포털에 인현왕후길을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이다. 다음은 2002년에 청암사를 다녀와서 쓴 글을 가감(加減)한 것이다.

마음의 고향 청암사

청암사는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태어난 고향은 엄연히 따로 있다. 지금부터 만 10년이 넘은 1992년 4월, 김천에서 버스를 타고 길을 묻고 물어서 찾은 곳이다. 그때는 성주댐 완공과 함께 성주에서 증산을 거쳐 대덕으로 가는 길을 막 포장하고 있을 때였다.
그 뒤로 마음이 적적하거나 울적할 때와 중요한 일을 하기 전이나 마치고 난 뒤 혼자서 청암사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눈 덮인 청암사나 늦가을 늦은 저녁에 안개를 헤치고 청암사를 돌아 나오던 길을 잊을 수가 없다.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다.

청암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에 있는 비구니 승가대학이다. 성주댐 공사가 끝나고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김천 지례에서 증산면으로 들어가는 아랫가랫재가 유일한 길이었으나, 지금은 성주댐부터 증산, 대덕을 거쳐 무주, 거창으로 가는 길이 잘 포장되어 있다. 증산면 소재지에서 조금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는데 직진하면 청암사이고, 왼쪽으로 가면 수도암이 나온다. 청암사 들어가는 길은 최근에 포장되기 전에는 수십 년 농사일을 한 늙은 농부의 손바닥 같이 울퉁불퉁하였으나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편하게 갈 수는 있으나 못내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절 입구 곳곳에는 시주를 한 사람이나 다녀간 사람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이름이 최송설당이다. 최송설당은 조선의 마지막 왕 영친왕의 보모상궁으로 이재에 밝아 거금을 모아 장학 사업을 하였다. 현 김천중고등학교를 세우고, 청암사에 많은 시주를 한 인물이다. 필자는 김천고등학교를 나왔는데, 2년 선배까지는 그 옛날의 인연으로 특설반 학생들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에 청암사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불령산은 수도산의 다른 이름으로 청암사를 세운 뒤에 부처님의 이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암사에 관한 자세한 내력은 최완수의 명찰순례에 잘 나타나 있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청암사를 방문했는데 비구니들이 대웅전 맞은편의 시외전화기 앞에 줄을 선 모습을 보았다.

청암 비구니

속세의 연을 끊고 청암의 부처님전
잘려진 머리카락 그 위에 눈물방울
대웅전 우리 부처님 염화시중 미소만

흰고무신 까까머리 언제나 합장하고
꽃다운 처녀 자태 승복에 여미면서
살포시 웃는 그 얼굴 부처님을 닮았네

볕받이 섬돌 위에 오순도순 정담하고
불령산 걸린 해와 저녁 공양 함께하니
청암의 길고 긴 밤이 소리 없이 내리네

늘어선 시외전화 속세의 연줄인가
눈 감아도 어리는 그리운 얼굴이여
밤새워 뒤척이련가 바람 같은 인연을

늘 그렇지만 마음이 심산하거나 어떤 일을 하기 전이나 마치고 나서 청암사를 찾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청암사에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비구니와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가 되었듯이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세우신 분이 청암사에 많은 도움을 주어서 2년 선배까지는 여름, 겨울방학에 청암사에 가서 공부를 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사연이 없다.

그러면 왜 청암사인가? 왜 그렇게 청암사에 집착하는가? 어쩌면 청암사, 그 자체보다는 그곳에 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름대로 푸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독서나 한 잔의 술 또는 사우나를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각자의 취향에 맞는 방법으로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청암사 가는 길은 즐겁다. 혼자라도 좋다. 인간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존재가 아닌가? 성주댐을 거쳐 구불구불한 계곡 사이를 지나노라면 세상사 근심 걱정 맑디맑은 계곡물에 흘려보낸다. 한 줄기 바람에 실어 날린다. 굳이 청암사에 들리지 않아도 좋으리. 그렇게 마음을 비운다면 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청암사는 조용하다. 깊은 산 속의 주인인 산새가 나그네를 반긴다. 산새도 조용하다. 비구니를 닮아서일까? 바람 소리는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태풍이 아니다. 그저 풍경을 흔들 정도의 비구니의 미소 같은 바람이다. 바람에 매달린 풍경소리는 엄마 품에 안긴 아가의 자장가이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는 어릴 적 놀이하던 물레방아 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비구니 담소하는 소리는 다가가서 엿듣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다. 독경소리는 옛날 서당에서 글공부 하던 학동들의 하늘천따지이다. 그리고 어쩌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웃음소리가 그치면 깊은 산 속 청암사의 밤이 소리 없이 내린다.

2002년 10월 19일 토요일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기 전에 청암사를 뒤로 하고 한참을 걸어서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내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 속에서 잠시 상념에 잠기다가 차를 몰았다. 밤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골짜기를 돌고 돌아서 속세로 나오는 내내 청암사의 풍경소리가 자꾸만 따라왔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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