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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참깨야, 참깨야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28일
ⓒ 김천신문
“올해 참깨가 괜찮네.” “얼마 동안 말린 거지?” “지난 토요일에 세웠으니 일주일이 넘었네.” “깻단을 세운 뒤에 비가 오질 않아서 참깨 색깔도 햐얀 게 좋네.” “지금까지 참깨 농사를 지은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 같은데.” “깻단을 세운 것을 봐서는 제일 많은 것 같으니 참깨도 많이 나오겠지.”“오늘 1차로 털고 일주일 뒤에 마지막으로 털어보면 알겠지.”

2025년 8월 17일 오전 7시에 일요일에 김천시 아포읍 대신 3리 시내이 마을의 우리나라 지도로 치면 개마고원쯤 되는 고향집의 골목길에서 김가네 5남매가 참깨를 털면서 한두 마디씩 나눈 이야기이다. 골목의 담벼락을 따라서 세워둔 것부터 털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저마다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골목길에 펼친 커다란 방수천에 참깨를 털었다. 막내인 동생은 1차로 턴 깻단을 다시 처음의 자리에 세웠다. 아내는 청소부터 시작해서 새참과 점심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참깨 줄기 30여 개를 한 단으로 묶어서 일주일 정도 세워두니 처음보다 무게도 가벼워지고 부피도 줄어들었다. 깻단을 거꾸로 들고 막대기로 20~30회를 때리니 참깨가 하얀 눈처럼 떨어져서 천일염을 모으는 염전의 하얀 소금같이 소복하게 쌓였다.

일손이 필요한 일이라서 그런지 5명이 하니 금방 골목의 참깨를 털었다. 대문 앞쪽의 그늘로 가지고 와서 참깨와 같이 떨어진 마른 깻잎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는데 오른쪽 어깨의 등 부근이 따끔거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장갑을 낀 왼손으로 몇 번 문질렀다. 그래도 계속 따끔거려서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갔다. 작업복을 벗으니 아내가 손바닥으로 따끔거리는 곳을 찰싹하는 소리가 나도록 세게 때렸다. 개미 한 마리가 붙어있다고 했다. 아내는 옷을 벗은 김에 등목하라고 성화를 부린다. 땀이 온몸에 줄줄 흐르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못 이기는 척 두 손을 바닥에 짚으니 아내는 숨을 멈추라고 하면서 오른손으로 물이 흐르는 호스를 쥐고 왼손으로는 널찍한 등 이곳저곳을 문지르면서 등목을 해주었다. 지금의 고향 집에서 부모님과 아이들하고 함께 생활하던 40여 년 전에는 여름이면 참 자주 등목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골목에서 턴 참깨의 마른 깻잎을 제거하고 참깨가 빠지는 가는 체로 거른 다음 한 되짜리 되로 양을 측정한 다음에 동생이 옥상으로 가져갔다. 골목 작업을 마치고 미리 준비한 빵과 커피로 새참을 먹었다. 새참을 먹는 중에 아내가 같이 근무하는 사람이 참깨 3되를 사고 싶다는 말을 했다. 누나들은 이구동성으로 올해는 참깨도 많이 나올 것 같으니 팔라고 했지만, 동생은 한사코 팔지 않겠다고 한다. 동생이 반대하는 이유는 5남매가 충분하게 나누어 먹고, 올해 출가하는 유정이와 다음 해 결혼하는 광섭이도 생각한 넉넉한 인심이다. 그래도 계속 옥신각신하길래 영호가 “참깨를 파는 것은 내가 내년에 참깨 농사를 별도로 지을 때부터 팔자.”라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참깨를 파는 문제로 옥신각신한 새참을 마치고 마당에 세워둔 참깨를 털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동생이 마당에 펼친 커다란 방수천에 깻단을 쌓아두면 네 명이 털고 다시 동생은 턴 깻단을 처음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골목에 세워둔 것보다 참깨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골목에는 담벼락을 따라 깻단을 세워서 바람이 통할 공간이 별로 없었다. 마당에는 과일 수확 때 사용하는 컨테이너 박스를 지주 삼아서 긴 대나무를 넉넉한 간격으로 두 줄로 배치하고 대나무에 깻단의 윗부분이 가도록 세웠다. 그렇게 하니 가지런히 세워진 양쪽의 깻단의 중간에는 바람길이 생겼다. 골목길은 아스콘으로 마당은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반사열도 참깨가 마르는 데 일조를 한다. 일사천리로 마당의 참깨를 터는 작업도 끝이 났다.

10시가 되기 전에 참깨를 터는 작업이 끝났다. 누나들은 멸치 손질을 시작했다. 동생은 마당 정리를 한다. 아내는 점심 준비에 분주하다. 영호는 망태를 괭이에 걸어서 왼쪽 어깨에 메고 오른손에는 전지가위를 들고 밭으로 갔다. 1차 털이를 한 깻단이 팔월의 햇살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골목을 지나서 수도관으로 연결되어서 지금도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을 지났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개울 바닥은 물기가 한 점도 없다. 경사가 45도 이상 되는 가파른 길을 지그재그로 오르면 부모님이 계시는 밭이다. 고추가 저마다 붉다고 자랑을 하는 양쪽으로 주중에 씨앗을 넣은 무와 배추가 검은 차광막 밑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부모님께 오늘 첫 참깨를 털었다는 안부 인사를 드리고 노각오이와 가지를 따서 망태에 담고 망태줄에 괭이를 걸고 왼쪽 어깨에 메었다.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지만, 야구를 할 때는 우투좌타이고 삽질이나 괭이질은 왼손잡이이다. 어려서부터 지게질을 많이 해서 웬만한 무게에는 단련이 된 어째지만, 그리 굵지 않은 괭이자루가 어깨에 맞닿는 부분에는 묵직함이 전해졌다. 집에 와서 노각오이 5개의 평균 무게를 측정하니 2.2㎏이고, 제일 큰 것은 2.45㎏이었다. 오남매의 식탁에서 상큼한 식감으로 일미를 더할 반찬이다.

10여 년 전까지는 참깨를 지금의 부모님이 계시는 밭에다 심었다. 한겨울에 밤바람에 말을 달리던 밭에 봄기운이 스며들면 관리기로 로터리를 하고 골을 짓는다. 비가 충분히 온 뒤에 참깨 비닐을 덮어 둔다. 아카시아꽃이 피고 이산 저산에서 뻐꾸기가 목청을 높일 때면 참깨 씨앗을 넣었다. 비닐 구멍마다 10여 개를 씨앗을 넣으면 저마다 경쟁을 해서 새싹이 잘 자란다, 적당한 시기에 구멍마다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솎는다. 솎을 때는 손으로 뽑으면 뿌리 흔들림이 심해지기 때문에 농사용 가위로 자른다. 8월 초순에는 참깨를 베는 작업을 한다. 그 뒤에 참깨 뿌리를 뽑고 8월 15일 전후에 무씨와 배추씨를 뿌렸었다. 경부고속도로 인근의 무논에 객토해서 밭으로 만든 다음에는 참깨를 재배하는 장소가 달라졌다. 씨앗 넣기, 솎기, 베기, 털기 작업을 할 때는 5남매의 공동작업이다. 그 외의 모은 작업은 부지런한 동생이 도맡아서 한다.

참깨 하면 “열려라 참깨”가 생각난다. 중동을 배경으로 한 모험담들의 원천으로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불리는 천일야화 중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 나오는 주문이다. 도둑들이 보물을 숨겨둔 동굴 문 앞에서 이 주문을 외우면 문이 열린다는 것으로 문 여는 주문의 대명사쯤 되며 이 말 자체가 숱한 창작물에서 인용되고 있다. 참깨가 중세 아랍어로 Simsim인데 참깨라는 뜻 이외에 문(門)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또한 “참깨가 법원에 간 까닭은?”이라는 고소하다는 낱말의 언어유희를 이용한 아재 개그도 있다. 참깨로 짠 참기름만큼 앞엔 ‘진짜’가 맡이 붙는 낱말도 흔치 않다. ‘진짜 참기름’, ‘진짜 진짜 참기름’……. 김가네의 참깨로 짠 기름은 굳이 진짜를 붙이지 않아도 말 그대로 참기름이다.

아내가 준비한 닭볶음, 호박잎 등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일주일 뒤인 일요일에 2차이자 마지막으로 참깨를 털자고 했다. 그 전날이 수도권에서 딸아이 결혼식이라 멀리 오가자면 모두가 피곤할 테지만 약속을 잡았다. 터는 작업이 끝나면 햇볕 좋은 고향집의 옥상에서 말리고 아포의 창성떡방앗간으로 간다. 어머니 때부터 다녔던 오랜 단골집이다. 참기름병으로 사용하는 소주병은 하나둘씩 모아두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참기름은 연 2회로 나누어서 짜고 있다. 누나들과 동생이 참기름을 분배한다. 아내와 나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전체의 절반 정도를 영호 몫으로 하고 나머지는 누나들과 동생이 나눈다. 장남과 맏며느리에 대한 과한 배려이다. 오늘 아내는 지난해 짠 참기름 중에서 영호 몫으로 남은 12병 가운데 8개를 누나들과 동생 몫으로 나누었다. 맏며느리가 김가네를 지탱하는 나눔의 힘이다. 시인 류시화는 ‘소금’이라는 시에서 소금이 바다의 상처이고 아픔이고 눈물이라고 했다. 영호는 김가네 참깨와 참기름은 김가네의 인지상정, 이심전심, 도란도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김가네의 참기름이 김가네의 밥상에서 영호나 아내 지인의 식탁에서 도란도란의 고소한 정이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참깨야, 참깨야. 김가네 참깨야.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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