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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신부 아버지의 축가 - 내가 만일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09월 18일
ⓒ 김천신문
“사랑하는 나의 유정아 너는 아니 이런 아빠 마음을” 1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아’ 대신에 딸 이름인 ‘유정아’로, ‘나의’ 대신에 ‘아빠’라고 부르고 나니 하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 틈에 사회자가 하객들에게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서 좌우로 흔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금방 식장에는 별빛이 반짝이듯이 휴대폰의 불빛이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 찰나에 하객석의 큰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 저편에서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이러다가 2절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1절을 마치고 2절을 시작하는 10여 초의 간주 시간에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2024년 11월 2일 토요일에 구미에서 상견례를 마치고 올해 8월 23일 토요일에 평택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결혼식의 과정이나 다른 것들을 딸아이와 사위가 알아서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려고 하니 망설여지는 게 많았다. 학교에서 정년퇴직한 게 2년이 지나니 누구에게는 보내고 누구에게는 보내지 말아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그 많았던 지인들의 길흉사에 부조한 것을 꼼꼼히 적어 놓지도 않았던 터라 더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현역에 있을 때 자식 출가시키라고 했던 모양이다.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최소한으로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다.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는 와중에 딸아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빠, 축가를 부탁해야겠네.”
“축가를? 어떤 노래를 생각하고 있는데.”
“응, 검색을 해보니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가 좋을 것 같네.”
“그래, 그 노래는 예전부터 즐겨 부르던 노래인데.”
“그런데, 엄마가 하모니카나 펜풀룻으로 연주하고 아빠가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응, 좋은 생각이네. 엄마하고 의논을 해볼게.”

아내와 의논하니 처형은 하모니카를 아내는 팬플룻을 불고 나는 노래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각자 연습을 하기로 하고 포도밭 일을 하면서 차를 운전하면서도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 화양연화 농장에서 아내가 팬플룻을 불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와 팬플룻의 조화가 생각만큼 되지를 않았다. 각자 연습을 더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결론은 아내나 처형의 악기 연주는 생략하고 영호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영호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아내는 둘만 있을 때는 축가를 불러보라고 했다. 아내 앞에서 대구교육대학교를 다니면서 음악 시간에 노래 시험을 보는 기분으로 노래를 불렀다. 아내의 한결같은 노래 평은 목청은 좋으니, 힘을 빼고 부르라는 주문을 하곤 했다.

사실, 내가 만일은 나의 오랜 애창곡 중의 하나이다. 내가 만일은 가요계의 음유시인이자 대표적인 민중가수로 통하는 안치환을 대중에게 알린 곡으로 1995년 안치환의 4집의 타이틀곡이다. 안치환은 원래 4집에 이 노래를 수록할 계획이 없었는데, 음반사 사람이 앨범에 방송용 곡 한 곡 정도는 있어야 하겠다고 하자 수록하였다고 한다. ‘내가 만일’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칠 때도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정지용 시인의 ‘향수’ 등과 함께 빠지지 않는 노래였다. 특히, 국어 시간이나 사회 시간 등에 의인 유추로 많이 활용한 노래이다. 국어 시간에는 시 바꾸어 쓰고, 사회 시간에 역사를 공부할 때는 “내가 만일 이순신이라면.” 등으로 역사적 인물 속으로 들어가는 데 안성맞춤인 노래였다. 그리고 근무처를 옮기기 전에 송별회를 할 때는 마지막 소절을 근무지와 영호로 개사해서 부르면 큰 호응을 얻기도 했었다.
결혼식 전날 김천에서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평택에 갔다. 딸아이과 사위도 서울에서 평택으로 왔다. 같은 숙소에서 묶었다. 8시가 넘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빠, 축가 준비는 어때요?” “걱정 마라. 한두 번 부른 노래가 아니니 잘할 수 있을 거야. 화면에 노랫말은 나오지?” “아빠, 화면은 사용하지 않고 소리만 나오는데.”
“화면에 노랫말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연습을 했는데.”
“그러면 어쩌지, 잘할 수 있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라. 평소 실력이 있잖아.”
아차 싶었다. 딸에게 보낸 것은 반주와 함께 화면에 노랫말도 나오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걱정이 되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결혼식 날 아침에 전날 저녁을 먹으면서 봐두었던 김밥집으로 계란말이 김밥을 사러 나섰다. 이어폰을 끼고 반주만 있는 내가 만일을 듣고 또 들었다. 노랫말을 틀릴 염려는 없었다. 반주만 들으니 한두 군데 박자를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었다. 김밥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평택이 처음이라 길이 낯설어서 그랬는지 노래 연습에 정신이 팔려서 그랬는지 같은 길은 여러 번 오가다가 간신히 숙소를 찾았다. 예전부터 길눈은 밝아서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전에는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지 잘 찾았었는데 아침부터 길을 찾느라 진땀을 뺐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반주를 듣고 또 들었다. 사돈댁과 함께 미용실에서 화장하고 예복을 입을 때도 반주를 들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예식장에 도착했다.

큰누나 얼굴을 보니 부모님 얼굴이 스쳐 갔다. 부모님은 10여 년 전에 어머니가 먼저 가시고 2년 뒤에 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가셨다. 생전에 손주들이 결혼하는 것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셨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해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애틋했었다.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식장을 둘러보고 딸아이와 사위도 보았다. 딸아이와 사위는 간주에 맞추어 가볍게 춤사위를 하면서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 큰누나를 보니 아직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하객들의 휴대폰 불빛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을 박자 삼아서 마이크를 쥔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서 입 가까이 가져갔다.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댈 위해 비가 되겠어.” 박자를 놓치지 않고 2절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성연아 너는 아니 이런 장인 마음을 이런 부모 마음을” ‘사람아’를 사위의 이름으로 개사하고 두 번 나오는‘나의’를 ‘장인’과 ‘부모’로 바꾸었다. 마지막 어절인 ‘마음을’ 길게 빼면서 마무리를 했다. 사위의 이름을 부를 때는 딸아이와 사위를 향해서 두어 걸음을 옮겼다. 하객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누군가는 앵콜이라고 외쳤다. 큰누나의 얼굴에는 자나 깨나 자식 걱정이었던 그립고 또 그리운 어머니의 인자하고 편안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딸과 사위에게 가서 셋이 손을 꼭 맞잡았다. 내가 만일처럼 딸은 사위 마음을 사위는 딸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 살아가기를 당부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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