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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사나이 실연의 반성문 ˝갈대의 순정˝

민경탁 (시인)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10월 23일
ⓒ 김천신문
리드악기는 얇은 떨림판이 마우스에 밀착돼 소리를 만든다. 리드(reed)를 우리말로 하면 갈대, 한자로는 황(簧:관악기 부리의 얇은 조각 또는 혀란 뜻)이다. 리드를 떨게 하여 마우스피스를 울린 다음 그 진동을 통해 높낮이의 소리를 내는 것이 색소폰의 구조다. 리드는 갈대 또는 얇은 금속판을 이용하는데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등의 구조에도 적용돼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요정 시링크스(syrinx)는 숲과 들 양떼와 목동의 신, 음악을 좋아하고 요정들의 춤을 지도하던 신인 판(pan)의 구애를 받고 피해서 도망가다가 강둑에 몰리자 그만 갈대로 변해 버린다. 그러자 판은 그녀가 그리울 때마다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분다. 팬플룻(panflute)이란 악기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우리나라에 팬플룻을 제작하는 회사에 시링크스란 브랜드를 쓰는 제작사도 있었다.

갈대는 바람이 불면 쉽게 한 쪽로 잘 쏠린다. 그러기에 문학예술에서 흔들림, 지조 없음의 보조관념으로 흔히 쓰인다. 신경림 시인은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시, ‘갈대’)"라며 외로움과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읊는다. 베르디는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는가.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 때 당 내의 찬성파를 두고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리더십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갈대는 가고 억새들끼리 뭉치자”고 했다.

갈대가 유심히 보이는 계절이다. 갈대 가지고 가요 만들어 대중의 심금을 크게 울리는 가요작가가 있다. 가요 <갈대의 순정>(오민우 사/곡, 박일남 노래)으로 알려진 오민우(본명 차상용) 작곡가다. 오 작곡가가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장으로 있을 때, 서울 충무로 사무실에서 김병환 이사장이 필자를 가요사연구가로 소개하자 오 작곡가는 <갈대의 순정> 탄생 과정을 한 시간 가까이 걸려 들려준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신이 이리 만경강 갈대밭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누다 입대했는데 그리움을 참고 참으며 군복무, 제대해 돌아와 보니 그녀는 빨리 결혼하라는 부모의 강요를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해버린 것이란 자전적 실연담이다.

가요 《갈대의 순정》 음반(킹레코드공사 1966)

차상용은 뒤늦게, 연인과 데이트하던 만경강 가의 갈대밭을 찾아갔다. 자신이 결단력이 없어 사랑을 잃어버린 참담한 심경, 속으론 울지만 겉으론 울지 않아야 하니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나이의 순정. 이를 흔들리는 갈대에 비겨 시로 읊었다. 이 노랫말을 킹레코드사 박성배 사장에게 건네줬더니, 전 세계에서 노래를 제일 잘 만드는 작사가 되란 뜻으로 차상용에게 전세일(全世一)이란 예명도 지어줬다. 차상용은 곡을 붙여 완성한 후 어머니의 성을 딴 오민우란 예명으로 발표했다. 원래 곡명이 <사나이 순정>이었는데 박일남 가수가 <갈대의 순정>으로 하자고 해 제목이 바뀌었다.

음반 《갈대의 순정》은 1966년 킹레코드사에서 박일남(본명 박판용) 노래로 취입해 나왔다. 원래 곡을 정원 가수에게 주려 했는데 그는 이미 다른 레코드사로 가버려 이 노래에 걸맞는 호소력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찾다가 박일남을 택했다. 음반이 출시되자 많은 남녀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키며 단숨에 3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이로써 박일남은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고 잇달아 <엽서 한 장> <정> <마음은 서러워도> <희야> 등의 히트곡을 냈다.

한국 가요사에서 1960년대는 비애감을 바탕으로 하는, 단조 트로트 위주의 가요들이 안정적이고 대중적이면서도 트로트의 특성과 생명력을 강렬하게 발휘하는 시기였다. 트로트의 비극성이 힘을 상실하지 않고 있을 때, 이때 나온 <갈대의 순정>은 기교나 가장된 가창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깊은 호소력을 발휘하는 매력이 있는 가요다. 박일남의 데뷔곡으로서 오민우, 박일남의 대표곡이 되고 있는 곡이다. 한국의 현대 가요사에서 <무너진 사랑탑>, <갈대의 순정> 등이 남성 실연의 반성문이라면 <님이라 부르리까>, <동백 아가씨> 등은 여성 실연의 반성문이라 할 수 있는 노래다. 가요는 시대를 뛰어넘어 대중의 정서와 삶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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