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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저는 대구교대 20회 1반 김영호입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농사짓는 일입니다. 포도와 복숭아 농사를 조금 짓고 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신 고향의 형님들에 비하면 새내기 농부입니다. 특별한 기술은 없고 그저 정직하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둘째는 소소한 일상생활을 담아내는 글쓰기입니다. 대구신문에 2020년 8월부터 매월 1회 선생님의 글을 싣고 있습니다. 퇴직한 이후인 2024년 1월부터는 김천신문의 수필공원에 매월 1~2회씩 일상의 기록을 싣고 있습니다. 셋째는 노래 부르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음악 실기평가(수행평가)에서 독일의 베르너가 작곡한 들장미를 부르고 100점을 받은 것이 노래를 좋아한 계기였습니다. 매년 아포읍 노래자랑이 열리고 있는데, 지난해는 배금성의 ‘사람이 비를 맞아요’를 올해는 배일호의 ‘폼나게 살거야’를 불렀습니다. 넷째는 운동입니다. 매주 토요일 배드민턴을 칩니다. 매일 출근하는 화양연화 농장에서 일하기 전이나 하는 중에도 틈틈이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기 여러분들 오래오래 이런 소풍 가는 날이 이어지면 참 좋겠습니다,”
2025년 10월 23일은 금요일은 대구교육대학교 20회 동기들이 대구에서 울산으로 소풍 가는 날이다. 8시 30분에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앞에서 7명이 1차 탑승을 하고,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10명이 탑승했다. 경주에 사는 친구 1명은 울산에서 합류했다.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28인승 리무진 버스가 출발하자 총무를 맡은 양화숙 동기가 마이크를 잡고 수려한 말솜씨로 분위기를 이어간다. 먼저 정해진 출발 시각에 맞게 한 명도 지각한 동기가 없다는 칭찬부터 시작했다. 모두가 듣기 좋은 칭찬이다. 명료한 일정 소개를 한 뒤에 김문일 동기회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김문일 회장은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했다. 그리고 대구교육대학교총동창회장인 영호 차례가 되었다. 동기들의 안부와 20회에서 20명이나 부회장을 맡아 준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에 감사하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올해 동창회 행사에 대해 안내를 했다.
그리고 잠시 도란거림이 끝나자 양화숙 동기가 마이크를 잡고 김문일 회장의 의견이라면서 한 명 한 명이 자기소개와 동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뒷자리에 앉은 영호는 거의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가 건강에 대한 당부와 본인의 근황을 솔직담백하게 공유했다. 지나고 보니 녹음을 하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특히 코이카가 주관하는 네팔의 초등학교로 1년 동안 해외 봉사를 떠나는 정진표 동기에게 많은 박수와 격려가 쏟아졌다. 초등교육에 40여 년 전후를 헌신한 한 명 한 명이 말을 마칠 때마다 공감의 박수가 이어졌다. 또한, 진솔하고 유려한 말솜씨에 잔잔한 박수와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사실 영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앞서 동창회 관련으로 제법 길게 말을 해서 줄였다.
“저는 정년퇴직을 하면 장(長)이 들어가는 자리는 가장(家長)만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40여 년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 구미에서 대구로 출퇴근한다는 핑계로 교육청이나 학교 일이 많다는 핑계로 가정에는 소홀했었습니다. 그래서 만시지탄이지만 퇴직하고서라도 가정에 충실하자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하고 보니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정년퇴직 이후로 미루어 두었던 560 배드민턴 동호회의 회장을 2024년부터 2년 동안 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구교육대학교총동창회 제28대 회장을 2025년 4월 26일부터 2027년 4월 23일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생기고 어떤 자리를 맡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면 ‘이것도 다 내 복이구나’라고 생각하고 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런 일이 그런 자리가 그리울 때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대구교대 20회는 1981년 3월 5일에 600명이 입학했으며, 장기환 학장은 “대학에서의 생활은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인간교육이 근본목표이며 학생에 대한 지나친 간섭의 연장인 중등교육에서 탈피하여 자유와 인격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당부가 있었고, 6일과 7일은 양일간 학교 소개, 각 부설기관 소개, 도서관 이용 방법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9일부터 정상 강의에 들어갔다. (대구교육대학교 50년사 380쪽). 남학생 대부분은 학군부사관훈련단(RNTC-Reserve Non-commissioned officers Training Corps) 활동을 했다. 이 제도는 병 및 하사관으로서의 신체적 조건에 합당한 모든 교육대학생이 2년 동안 병영훈련을 포함하여 720시간의 군사교육을 마치면 현역병 입영을 면제하고 졸업과 동시에 예비역 하사관으로 임용되어 바로 교직에 임할 수 있게 하였다. (대구교육대학교 50년사 277쪽).
울산으로 가는 도중에도 날씨는 오락가락했다. 대왕암 주차장에 내리니 바람과 비가 잦아들었다.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출렁다리를 건너고 거북바위를 보았다. 거센 바람은 높은 파도를 몰고 왔다. 대왕암을 오가는 다리에는 파도의 물보라가 간을 조리게 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느긋한 식사와 오가는 술잔에 대학 시절 화원유원지에서 커다란 이동용 녹음기를 틀어놓고 춤을 춘 청춘의 기억이 소환되기도 했다. 배부른 점심을 마치니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반짝 나기도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태화강국가정원을 들러보았다. 하늘 높을 줄 모르는 왕대숲길을 국화가 만발한 꽃길을 걷고 또 걸었다.
대구교대 20회는 2년제 교대 마지막 세대로 1883년 2월 18일 졸업하고 대구와 경북 등 전국의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청춘의 푸른 꿈을 초등교육에 헌신했다. 2004년 1월 17일 토요일에는 졸업 20주년 행사를 바르미 인터불고호텔 대구에서 가졌다. 그 10년 뒤에는 졸업 30주년 행사를 호텔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가졌다. 경향 각지에서 많은 동기가 초등교사로 명예로운 교직 생활을 마쳤다. 또한, 교감, 교장 교육전문직원으로 활동한 동기도 많았다. 대구와 경북 그리고 경남에서 교육장 및 직속기관장 20여 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동기가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한 상태이다. 우리 대구교대 20회 동기들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듬뿍 담아 드린다. 이제 치열한 교육현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제2의 인생의 길을 걷는 그대들을 응원한다. 제2의 인생의 길을 걷는 동기들의 걸음에 소풍 가는 길이 작은 보람이라도 되었으면 참 좋겠다.
단톡에는 소풍 가는 날의 행복과 또 다른 소풍 가는 날의 기대감이 넘쳐났다. 다정다감한 김명숙 동기의 글이다. “김문일 회장님과 양화숙 사무국장님이 덕을 많이 쌓으셨나 봐요! 날씨가 우릴 알아봐 주고 억수같이 비가 퍼붓다가도 차에서 내리면 싸악 가시고……. 대왕암에선 거센 바람이 하얀 파도를 데려와 우릴 격하게 반겨줄 줄도 알고……. 김영호 총동창회장님을 비롯한 20회 우리 친구들, 멀리 가서 만나니 더 정답고 더 반가웠네요! 담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길요. 내내 행운을 빌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소풍 가는 날을 정례화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매년 10월 4주 금요일로 정해서 2026년 10월 23일 금요일에 봉화 청량산과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1년 뒤의 소풍 가는 날을 확정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소풍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일.’로 정의한다. 혼자 하면 기억이 되고, 둘이 하면 추억이 되며, 여럿이 하면 역사가 된다고 한다. 우리 대구교육대학교 20회 동기들의 하루하루가 기억이 되고, 추억을 쌓아서 소풍 가는 날에는 역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오늘도 소풍 가는 날, 화영연화, 오늘도 참 좋은 날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