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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7년전 구미 봉곡동에 사는 작은딸이 초대권을 가지고 왔다.
대구 계명대학교 아트홀에서 가수 장사익이 콘서트를 연다고 어렵게 구한 표이니 꼭 보러 가야 한다면서 신신부탁을 하고 갔다.
가수 장사익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흰 고무신에 모시옷을 입고 청아함이 엿보이는 얼굴에 다가 노래 곡목도 찔레꽃 같은 순수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아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7월에는 자두를 따고 8월에는 복숭아를 따는데 9월 10일쯤 추석 선물용 마지막 복숭아를 따고 나면 과원 정리 작업 외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어 해외여행이나, 며칠 볼일 보러 다녀와도 별 탈이 없다.
그래서 7~8월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올 여름은 40℃ 가까운 폭염이 오래 지속되었지만 강한 햇볕 덕분에 흠과도 적게 나오고 당도가 평년에 비하여 2~3브릭스 높아 고객분들에게서 맛있다는 전화가 쇄도 하였다. 복숭아가 열대성 작물이기 때문이다.
과일 수확이 끝나고 한숨 돌릴 즈음에 장사익 콘서트가 며칠 후에 있으니 같이 가자고 아내가 간곡한 부탁을 해 왔다.
사실 나는 총각 시절부터 농사일에 전념했기 때문에 그때 인기 가수였던 하춘화, 토끼소녀가 김천에 공연을 와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작은딸하고 같이 다녀오라고 일축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장사익을 싫어하지 않아 아내가 재차 애원하는 터에 억지를 부릴 수가 없어서 OK 해 버렸다.
열차표까지 작은 딸이 구입해 놓았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대구는 이웃이라 여겼지만 모처럼 열차에서 내다보는 황금물결은 여름 내내 시달렸던 온갖 시름을 잊게 해주고 아내와 함께 홀가분하게 떠난 이번 일정은 처음부터 성공작이었다.
대구역에서 계명대학교 아트홀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 캠퍼스가 얼마나 넓은지 한참을 가야했다.
아트홀 입구에는 벌써부터 40~60세 전후의 여성분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비집고 들어가야 할 만큼 대성황을 이루었다.
남성은 몇 명 되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여성분들이라 아내가 장사익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역시나 장사익이 모시옷에 흰 고무신을 신고 ‘찔레꽃’을 열창한 다음 ‘어머니’를 불렀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른쪽에는 아내가 앉고 왼쪽에는 아내 또래의 여성분이 앉았는데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 가요, 어머니~”하자 내 눈에서 눈물보가 터진 것이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지 3년 되는 해였기 때문이리라.
한두번 손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두 눈에서 어찌나 많은 눈물이 쏟아지는지 컵으로 물을 내려 붓는 느낌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옷은 빨면 되는 것이니 실컷 울어 버렸다. 방수되는 여름 잠바를 입고 있었기에 눈물이 스며들지 않아 바지까지 흘러내려 공연 라이트가 앞을 스칠 때면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번쩍였다.
60살이 넘도록 이처럼 많은 눈물을 쏟아본 적이 없는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쌓였던 서러운 일 등등. 응어리졌던 모든 것들이 화산이 폭발하듯 눈물이 되어 쏟아진 모양이다. 어머니 다음에 부른 노래는 기억에 없다.
공연을 마치고 계명대학교 정문을 나서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초승달이 떠 있고 어찌 그렇게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겠는가.
밤 12시가 가까워서 배는 고팠지만 마음이 개운하고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열차를 타고 올라와 역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를 몰고 황금동까지 내려오면서 봤지만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고 우체국 골목에 분식집에서 다행히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고마운 말을 전했다. “이번 장사익 공연은 백만불짜리야”
여러분! 가수 공연이 있거들랑 지체마시고 가 보시라, 응어리졌던 가슴속 생채기를 모두 뱉어내면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