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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일기, 그 오래된 미래 ①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11월 27일
ⓒ 김천신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에 근무하던 2000년 9월 25일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학습 자료실이며 여러 가지로 유용한 공간이었다.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교단 일기도 947번을 썼다. 2005년에 홈페이지 회사에서 유료로 전환하고, 기존의 홈페이지는 폐쇄한다는 연락이 왔다. 5년 동안 120,000번이 넘는 접속이 이루어진 홈페이지를 그냥 날려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다행히 얼마의 돈을 지불하고 모든 내용을 시디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게시판 형태의 교단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자료 보존을 위해서 여러 공간에 일기를 쓰고 있다.

“배추를 뽑았다. 지난 주 일요일에 무를 뽑았고, 다음 주 일요일은 김가네 김장하는 날이다. 올해는 배추 무름병 때문에 지난해에 비해서 배추가 흉작이다. 그래도 동생이 잘 갈무리를 한 덕에 김장을 하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올해 김가네 김장 주제는 “함께 즐겁게 행복을 나누자”이다. 큼지막한 현수막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김장하는 날은 김가네 다섯 집, 천교장댁 부부, 교대부초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다섯 분, 오늘 배추를 실어준 정석균 동생 등이 함께한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김장 전날의 양념 반죽, 배추 절이는 장면까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고 한다. 오후에는 산에 가서 참나무잎 모아놓은 것은 마대자루에 담았다. 복숭아밭에 뿌린 청보리씨앗 위에 덮을 것이다. 경북생활예술축전에 김천 대표로 출전한 8명의 김천 팬울림 팀이 전체 2등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음악 활동에 진심인 아내는 오늘은 뒤풀이를 즐기고 싶다고 한다.” 2025년 11월 23일 일요일에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외장 하드 5개를 뒤지다가 오래전의 일기를 찾았다.

초동목아(樵童牧兒)가 되어 (2007.1.19.금)
키가 커서인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전용 지게가 있었다. 여름이면 소 먹일 풀을 베어서 지고, 겨울이면 아궁이에 땔 나무를 지던 지게였다. 그 전용 지게는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시골집에는 지게가 있다. 상당히 오랜만에 지게를 메었다. 짧은 겨울 해가 산 그림자를 만들어 응달인 산자락은 어느새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만 해도 모든 집이 나무로 보온을 하던 시절이라 나무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까운 산보다는 멀리 가야 제대로 나무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전에 나무 한 짐을 하고 점심을 후딱 먹고 나서 다시 오후에 나무를 한 짐 하고 나면 길고 긴 겨울밤이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조금 가난하긴 했지만, 그런 일이 힘들다거나 하기 싫지는 않았다. 그저 즐겁게 일을 하였다. 늘 또래 아이들보다 풀이나 나무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이웃집 어른들도 시원찮은 어른보다 낫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산에서 나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산이라면 어디서나 나무가 넘쳐난다. 산소 부근에는 산소에 햇볕이 잘 들도록 주변에 나무를 베어 놓은 것이 많고, 각종 병해충에 쓰러진 나무도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큰 참나무를 네 개, 아카시아나무와 소나무 각각 하나씩 지게에 얹고 칡 줄기로 잔가지를 한 다발 묶어서 지게에 얹었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니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참나무가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세월의 나이를 생각해도 그리 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말이다. 하는 수없이 참나무 둥치 두 개를 내리고 다시 묶었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도 식힐 겸 보온병에 가지고 간 물을 한 잔 마시고 잠시 앉았다. 지금쯤 면접을 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집으로 내려와서 내려놓고 다시 산으로 갔다. 남은 것과 다시 조금 더 나무를 해서 집으로 내려왔다. 산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달게 먹었다. 그렇다. 이왕에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겨울 방학에 오전에 나무 한 짐 하고, 점심으로는 시래깃국에 밥을 말고 고추장을 넣어서 먹는 것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자주 그렇게 먹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즐거움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작한 일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끝을 보아야 할 것이다. 저녁에 전문직 시험을 친 동기들과 통화를 했다. 여러 가지 걱정을 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내공을 더 쌓아서 다음에 보자고 했다. 시험 문제가 꽤나 어려웠나 보다. 그렇다.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지만, 어느 것이나 하루 이틀을 소홀히 해서 될 일도 없다. 아내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왜 뜬금없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지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좋을 듯도 하다. 오늘 초동이 되었다. 그 어린 시절의 초동 때와 같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려 한다. 무엇이 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 내 마음이 즐거워야 모든 것을 즐겁게 대하고 행복한 결실을 맺을 거란 생각을 한다. 다시 어린 시절의 초동목아가 되어본다.

와신상담(臥薪嘗膽) (2008.01.18.금)
다시 교육전문직 시험을 쳤다. 그전 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육학도 어렵고, 교직 실무도 어렵다. 교육학과 교직 실무는 시험을 마치고 나니 생각나는 문제가 몇 개 되지 않았다. 교수ㆍ학습안은 그런대로 작성을 했다. 워드와 엑셀은 당황하는 바람에 쉬운 것도 놓쳤다. 준비가 부족한 탓이리라. 수업시연과 면접은 그런대로 한 것 같았다. 하루 종일이 걸렸다. 밤에는 같이 시험을 친 동기와 대학 친구들을 만나서 그동안 굶주린 음주와 담화를 즐기면서 길고 긴 하루를 마감했다. 고진감래가 아니라, 고진이 되면 또 어떠리. 와신상담의 결과가 다 달콤할 수만은 없다.

내 꿈을 향한 (2013.10.29.화.)
6교시를 마칠 시간에 화단으로 나갔다. 시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눈부시다. 화단에 전시된 아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유유자적이다. 여학생 하나가 자기 작품을 들고 말을 걸어온다. 작품을 보니 3학년 1반 차주은이다. “교감 선생님, 제 산문인데요. 김연아 선수가 나오는 책이 있어요.”아이의 작품을 받아 들었다. 제법 무겁다. 김연아 선수가 출판한 책이 오른쪽 모서리에 장식이 되어 있다. ‘김연아처럼’이라는 책이다. 찬찬히 글을 읽어 보니 솜씨가 좋다. “주은아, 글을 아주 잘 쓰는구나. 교감 선생님은 특히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든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액자를 아이에게 주고 사진을 찍었다. 현관까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문장 잘 기억해. 공책이나 책상에 써 놓아도 좋을 것 같다. ‘내 꿈을 향한 발걸음을 옮겨 내 꿈까지 가야겠다.’ 참 잘 생각했다. 항상 기억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네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이 말도 명언이 되는 거야.”

훈화 (2013.12.9.월.)
다음은 오늘 훈화 내용이다. 두 번을 읽게 하고, 세 번째는 보여주지 않고 말하게 하였다. 마지막에 다시 보여주면서 읽고 마쳤다. ( )의 내용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도록 했다. 일방적인 훈화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훈화이다. “오늘은 2013년 ( )월 ( )일 월요일입니다. 참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1. 장갑을 꼭 ( ) 2. 쓰레기를 ( ) 3. 친구야, 사랑해 4. 선생님, 고맙습니다.”

 <계속>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5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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