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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우리나라의 근대문학은 갑오개혁과 한일합방, 3·1운동을 거치면서 시민계층의 보편적 정신 구현, 국문 사용, 민족국가의 정치사조 성행을 배경으로 시발됐다. 김천의 근현대문학은 언제부터 시발되었는가. 1925년 카프(KAPE) 탄생을 계기로 경향 각지에 프로문학이 활발해지면서 김천지역에서도 근대문학이 태동되었다.
1925년 대구에서 종합지『여명黎明』이 나오고 1930년 김천문예협회에서 지역 최초의 문학동인지『무명탄無名彈』을 발행했다. 김태은(金泰殷 필명 황악산인. 대항면 향천리 태생. 1919~1970)과 임연이 주도한 김천의 청년문사들이 전국의 신진문사들을 집필 동인으로 묶어낸 종합 문예동인지다. 김태은은 뒷날 서울에서 동인지『웅계(雄鷄)』(1939. 1)를 발간하기도 했다. 1959년부터는 미술계로 전환하여 김천화우회를 조직 하고 성의중학교에 근무하기도 했다.
김천의 근현대문학사를 정리,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김천문화화원에서 기술한『향토사』(이근구 엮음, 김천문화원, 1969. 12.)에서부터이다. 그 이후 윤사섭 아동문학가가『김천시지』(1989. 10)와『김천문학』제8집(1989. 11)에서, 민경탁 시인이『김천문학』제21집(2002. 12)에서, 조인호님이『사람의 문학』제10호(도서출판 사람, 1996. 5.)에서 그리고 권숙월 시인이『김천시사』(1999. 12)에서 개략적으로 기술한 적이 있다.
십오 년 전 필자는 김천 근현대문학 시발에 관하여 그 실체를 고증하면서 진술한 바 있는데, 이후 새로이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져 이에 바로 잡아 보완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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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최초의 문예지 '무명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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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최초의 문예동인지『무명탄無名彈』김천에서 탄생한 최초의 문학 동인지는『무명탄無名彈』(1930. 1. 20. 창간)이다. 김천의 청년 문사들이 중심이 되어 전국의 무명(無名) 문인 38명의 작품 46편을 수록했다. 편집과 재정 책임은 조경환·예종환, 김천문예협회라는 이름으로 벌써 1929년 8월부터 발간 계획을 늘리 알리며 원고를 모아왔었다. 진록성을 편집 겸 발행인으로 하여 우준식, 엄필진, 임연, 이산, 김태은, 진록성, 김갑연, 예종환 등이 주도하여 탄생했다.
『무명탄無名彈』은 창간사에서 ‘조선문단의 일대 혁명아, …… 소독제’가 될 것을 표방하면서 경영과 편집 본부를 김천에 두고 인쇄는 서울 연지동 조선문예협회에서 하였다. 김천문예협회는 나중에 조선문예협회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 범위도 전선문학청년全鮮文學靑年으로 확대했다.
기성문단에 도전하는 패기를 보인, 1930년대 대구ㆍ경북 지역 문인들의 고심을 잘 살필 수 있는 종합문예지『무명탄』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지역 청년문사의 전국 규모 수평 연대 결집체의 종합문학지였다. 제1호로 끝나 버렸지만 오늘날 지역문학의 소중한자산으로 남아 있다.
김천의『무명탄』은 대구의『여명(黎明)』과 1926년 8월 부산ㆍ경남 지역에서 탄생한 동인지『참새』, 1927년 2월 인천에서 발간한『습작시대』와 더불어 1920~1930년대 우리나라 지역사회에서 자생한 문학활동의 마당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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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선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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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김천에서 현대시조를 쓴 민동선김천지역에서 가장 먼저 현대시조를 쓴 사람은 민동선(閔東宣 본명 丙喜 호 香隱 감문면 은림리(사래) 1902~1994)이다. 향은은 양정고보와 혜화전문학교(동국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했다. 1920년대 말부터 안심사, 김룡사 등에서 수도하며 시조를 썼다. 민동선은 문경 김룡사지방학림에 다닐 때 전장헌의 주도로 송인수, 성도환, 최덕찰, 김훈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운동을 했다. 이들과 함께 일본 헌병에 연행되어 10일간 모진 고초를 겪었고 4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형을 받은 것으로 문경지방 3·1운동사에 전한다.
민동선은 안심사安心寺에 있을 때 현대시조 ‘한글경판 뵈옵고’를 발표(1932)하고, 월간『불교』지에 시조를 발표했다. “달빛이 곱습니까 꽃빛이 곱습니까/하고한 많은 중에 대광명은 한글이심/겨레야 누리 다 하도록 물려물려 지키자//”(민동선, ‘한글 경판 뵈옵고’ 제3수). 이는, 이육사가 자유시 ‘황혼’으로『신조선』지에 등단(1933)하기 직전의 현대시조이다.
“세상 일 다 버리고 산 속으로 들자 하니/야박한 인심은 지름길로 먼저 간다/중문에 엉거주춤하여 향할 곳을 몰라라//누구는 죽어 가서 낙락장송 된다하데/이 몸은 죽어가서 장강수되었다가/살아서 다 못 푼 한을 굽이굽이 씻으리//”(민동선, ‘추야단상’ 전문)
시조시인 민동선은 김천고교(1951~1953 재직)와 서울 보인상업고교, 성동고교에서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다. 김천의 민동선과 영양의 조애영(趙愛泳 1911~2000)은 경북 시조문학사 여명기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