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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근·현대사 순례 - 꽃피우다, 김천 근대미술 ②

민경탁(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05일
일제강점기 조선미전에서 최고상 받은 최근배

1942년 김천고보 미술교사 때의 최근배. 당시는 교원도 제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깎았다;사진, 송설역사관 제공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화가 중 조선미술전람회(약칭 鮮展)의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화가가 두 사람 있다. 이인성(李仁星 1912년~1950)과 또 한 사람은 누구일까. 최근배(崔根培 호 木朗)다. 목랑은 김천에서 교원생활을 시작해 대구경북의 여러 중등학교에 재직하며 근·현대 미술활동을 한 2세대 한국 화가이며 미술교육자다. 그의 이력과 작품 세계를 개괄해 본다.

최근배는 1910년 4월 3일 함북 명천군 하가면 화태동 81번지에서 태어났다. 1931년 함북의 경성공립고보 졸업식 때 자신의 시집「개나리」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수배, 만주로 도피했다가 도일하여 동경미술학교 회화과에 입학한다.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3학년 때에 동양화(일본화)로 전과해 수묵채색화에 집중하면서 1934년 일본미술전에서 은상을 수상(1934), 그다음 해에는 일본의 유력한 화가단체인 국화회와 청룡사의 신인작품 공모에 동시 입선하는 기량을 발휘했다.

1935년 3월 목랑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면서 일본 여성 다무라 치요코(田村千代子)와 결혼한다. 화재(畫材)에 겸하여 문재(文才)도 지니고 있었던 그가『신인문학』6호(1935. 4.)에 시「손톱으로 새긴 마음」을 발표하는 등 시문학 활동을 한 족적이 종종 나타나 보인다.

노년의 목랑 최근배

목랑 화가 초기의 작품은 표현주의풍의 유채가 주종인데 이는 서양화 도입기의 유화 양식을 접할 수 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1936년, 일본에서 개인전을 가진 후 귀국해서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면서 사실주의 수묵채색화에 주력한 것으로 탐구된다. 조선일보 광고부에 입사(1937)하고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동양화「승무」,「唐辛子」서양화「丘上女人」으로 입선하면서 화단에 이름을 떨친다. ‘唐辛子’는 고추밭, ‘丘上女人’은 언덕 위의 여인이라 알리고도 있다. 조선일보에 연재한(1939), 김내성의 소설「마인」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1940년대의 목랑 그림은 근대 대구경북 지역에서 채색 수묵화가 발아한 양상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목랑은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자(1940) 김천고보(현 김천고등학교)에 송병돈의 후임 미술교사로 부임, 김천공립여학교(현 김천여고) 강사를 겸하면서 미술지도를 했다. 이 해에 그는 제19회 조선미술전 동양화 부문에서 기녀를 모델로 해 그린「탄금도彈琴圖」로 대회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다.「봉선화」도 동시에 입선한다. 당시 조선미술전의 심사위원은 모두가 일본인이었다.

목랑이 그린「자화상」한 점이 미완의 풍경화와 함께 2004년 1월 차남 최문열 씨(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의해 발굴되어 화제를 모으며 대백프라자에서 공개되었다. 이 자화상은 오른편 아래에 ‘1941 MOK RANG’이란 사인이 있는데 제작 연도에 좀 더 고증이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인상주의 화풍 구도에 의한, 말쑥한 서양식 두발에 양복 조끼까지 받쳐 입은 모습에서 지성적인 이미지가 풍겨 나오는 유화로 얼굴 부분을 역광 처리하여 세련되게 묘사한 자화상이다.

목랑이 김천고보에 재직할 때인 1942년 제21회 선전에서 입선한 그림으로「暗香」과「농악」이 더 있다.「암향」은 봄햇살 가득히 내려앉은, 김천고보가 있는 부곡동의 어느 집 마당이 배경인 듯한 종이 채색화. 겨우내 움츠리고 지내던 사랑방에서, 이른 봄 정취를 못 이겨 나온 갓 쓴 이는 피리를 불며 앉아 있고, 등 뒤에선 빨간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사내아이가 뒷짐을 지고, 막 피어난 매화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서 있다. 꽃술을 연 매화가 피리 소리를 타고서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김천의 빗내농악을 모델로 한, 목랑의 대표작

김천의 빗내농악꾼을 모델로 한, 최근배의 대표작 '농악'(1942)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목랑의「농악」이 소장돼 있다. 다섯 명의 농악꾼이 흥겹게 농악하는 광경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종이 채색화다. 목랑이 김천에 살 때 한국의 전통에 기본 정신을 두고 김천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빗내농악을 모델로 하여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동양화에서 중시하는 여백의 미가 가득한 2곡 병풍화로 서양화에서 구사하는 색감을 한국화 형식에 끌어들여,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역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란 평을 받는다.

또 목랑은 1944년 제23회 선전에서「待春」으로 입선, 8·15 해방을 맞아서는「만세」를 발표한다.「만세」(1945)는 해방을 맞은 화가의 가족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종이 채색화로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린다. 화면 중앙에 한복을 입은 일본인 아내와 그 좌우에 태극기를 들고 선 두 아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여인은 오른손으로 아이의 손을, 왼손으로는 치맛단을 여며 쥔 채 어디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감격이라기보단 놀라는 표정이다. 두 아이 모두 태극기를 들고 서 있는데 큰아이만 맨발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세 사람의 표정에는 모두 기쁨과 감격이라기보다는 놀람과 긴장이 가득하다. 당시의 일반적인 한국인이 맞이한 해방 및 역사에 대한 인식과는 좀 동떨어져 보인다. 어머니가 일본인이어서인가. 일본과의 미묘한 정황까지를 넘볼 수 있게 하는 그림이다. 이에 대해 이구열 미술 전문기자는 ‘작위적인 속임수를 쓸 줄 모르는 목랑의 성격적 정직성과 선량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평한다. 한국의 근대미술사는 물론 역사적으로도 소중히 취급해야 하는 한 점 채색 수묵화가 아닌가 한다.

최근배의 '만세'(1945)

이 무렵 김천중학교-공립 5년제, 1951년부터 사립 3년제 김천고등학교가 됨-교사와 동문들이 참여하여 김천시문학구락부를 창설,『오동』지를 발간함(1947. 8. 창간)에 목랑은 축사와 시「적모」,「제염」으로써 참여한다. 김천고보 교감직을 이임하고 대구의 경북공립중학교(경북중학교의 전신) 교감으로 전임되자 학교의 문예지 “새벽”을 장정하기도 했다. 6·25 전쟁 후에는 김천여중, 상주여중, 김천여고, 경북여고, 경북고, 대구고 등의 교장을 역임했다.

6·25전쟁 후 목랑의 화풍은 스케치 여행을 다니며 섬세한 필선과 단아한 채색으로 한국의 경치를 담아내기에 주력하기에 이른다. 일본 화풍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김천문화의 집(현 김천문화원)에서 문학, 미술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의 현대미술 풍토를 조성하고 발전을 이어갔다.

목랑은 말년에 전통 산수화에 현대적 미감을 결합하기에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1962년, 영남지역에선 처음으로 효성여자대학(현 대구가톨릭대)에 생활미술과가 개설됐는데, 주임교수로 부임하여(1965) 대구 현대미술 발전에 선구적으로 활동했다. 1960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전통 수묵화법을 기반으로 하되 색점을 이용하여 자연을 묘사하는 새로운 기법의 작품을 낳았다. 효성여자대학에서 정년퇴임하고(1976) 1978년 11월 14일 대구 자택에서 별세했다.

최근배의 '금릉못의 가을'(1959);유족 소장

화가 목랑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동양화와 서양화 모두에 걸쳐 8회 입상한 작가다. 김천에 거주할 때에 조선미술전람회에 네 번 입상했다. 목랑이 김천의 경치를 담아낸 현대화로「금릉못의 가을」(1959)을 더 소개할 수 있다. 그가 김천여고 교장으로 재직할 때 금릉군 개령면의 묘광 연화지 너머, 금오산 봉우리가 저 멀리 보이는 가을 들녘의 경치를 그린 종이 채색화로 보인다. 그림 속 여인네의 흰옷이 백의민족의 이미지를 무언으로 전하는 그림이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화 풍에서 벗어나 강직하게 한국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던 목랑의 그림에는 아직도 잘 알리지 않은 작품이 더 있을 것 같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최근배 회고전(2009), 예의 상업은행대구지점에서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기념전(2011)을 여는 등 몇 차례 회고전을 연 바 있다.

김천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의 정체성과 전통과 미술 풍토를 개척해 나아간 화가 목랑의 소신 있는 미술 혼을 김천은 사실대로 알고 있어야 하겠다. 목랑 김천 거주, 재직 때의 작품만이라도 찾아서 보유해 연구, 전시하면서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계속)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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