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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행복한 인생 ③ 인생철학

김영호(전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06일
ⓒ 김천신문
“고객을 위하여 친절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며 기술을 다하여 늘 변함없이 고객을 위하여 만족함을 흠뻑 드리겠습니다. -이용사 김하욱-” 2018년 2월 8일 토요일에 경북 포항시 청하면 청진리 어촌 마을의 이용소 내부의 현수막에 새겨진 문구이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이발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리면서 머리 모양을 살피다가 거울 위쪽에 붙은 현수막의 글씨를 본 것이다. 이용소 입구의 간판에는 위쪽에 ‘1995년 6월 22일 KBS TV <6시 내고향>에 출연한 업소’라는 문구가 있다. 중간에는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큼지막한 글씨의 ‘청진이용소’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줄에는 054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있다. 간판을 제작한 지 오래되었는지 전체적으로 빛이 바랬다. 이발을 마치고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이용소를 나서기 전에 김하욱 이용사에게 “지금까지 많은 이용소와 서너 곳의 미용실을 다녀보았지만, 오늘 같이 좋은 이발과 이용철학을 만나서 무척이나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라는 덕담을 건넸다. 문구에서 친절, 정성, 기술, 만족함은 붉은색으로 강조를 하고, 나머지 글자는 검은색이었다. 문구는 이용사 김하욱의 손님에 대한 다짐, 약속, 봉사, 헌신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이용사 김하욱의 이용철학이자 인생철학인 셈이다. 청진이용소를 다녀간 수없이 많은 손님이 감하욱 이용사의 글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란 생각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용철학이 더 반갑고 공감이 갔던 이유는 영호가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2015년 3월 1일부터 수업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교수·학습안을 사용하고 널리 공유를 시작한 전력이 있어서이다. “김영호의 국어과 교수·학습안. 수업철학-절차탁마(切磋琢磨). 절차탁마는 옥을 가공하는 네 가지 과정이다. 자른다(절-切), 썬다(차-磋), 쫀다(탁-琢), 간다(마-磨). 수업, 저절로 좋은 수업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 수업 기술도 익힌다. 남의 수업을 많이 본다. 내 수업도 많이 보여준다. 수업 친구 만들어 공유한다. 책도 많이 읽는다. 등등. 시나브로 좋은 수업이 내 그림자가 되지 않을까? 절차탁마, 좋은 수업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2014년 겨울방학 기간에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사들의 집단지성으로 교수·학습안을 전면 개편했다. 핵심은 수업철학을 반영하고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가 일맥상통하도록 한 것이었다. 제일 먼저 큰 글씨로 수업자의 이름이 나온다. 작성자의 얼굴이자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이지만, 주인공을 있게 하는 것은 교사이다. 이름 다음에는 해당 교과명과 교수·학습안이라는 용어가 이어져서 ‘김영호의 국어과 교수·학습안’이 시작을 알린다. 그 다음에는 표를 만들고 그 안에 수업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수업자의 수업철학을 넣어서 ‘수업철학-절차탁마’가 되었다. 수업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독자의 정확한 이해와 수업철학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그리고 수업철학을 설명하는 문구를 넣었다.

2015년 3월 1일 자로 전입한 배·박·김·이 교사가 개편된 교수·학습안을 제일 먼저 작성했다. 임상장학 대상자인 배·박·김·이 교사가 공동으로 작성한 개편된 교수·학습안 작성 소감이다. “교수·학습안 제일 첫 장에 이름 석 자를 적으니 마음속에서 자랑스러움과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연이어 수업 브랜드를 적는 난이 나옵니다. 수업철학을 적으며 수업의 장면마다 잘 녹여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습니다. 학생 중심 협력수업을 위한 정신과 지도안 요소들이 하나하나 잘 엮여진 지도안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안을 작성할 때 협력을 위해 무언가를 더 추가하거나 적는 것이 아니라, 잘 엮인 지도안을 따라가다 보면 협력학습을 위한 지도안을 적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도안을 적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어 좋았습니다.” 현장에서는 교수·학습안을 지도안이라고 말하곤 한다.

영호가 수업철학은 절차탁마였다. 학교에서 직접 수업을 하는 교사, 교육행정기관에서 장학을 하는 교육전문직원, 학교에서 관리직인 교감이나 교장을 할 때도 수업이 제일 기본이고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수업철학이라고 했다. 교육지원청에서 초등교육지원과장을 하거나 교장으로 근무할 때는 사무실 곳곳에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출력해서 붙였다. 메신저의 ‘김영호’라는 이름 앞이나 뒤에는 꼭 절차탁마가 따라다녔다. 또한, 어떤 연수를 하더라도 수업철학을 소개하고 자연스럽게 절차탁마도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현직에 있을 때는 김영호라고 하면 절차탁마 또는 조금은 좋은 의미로 수업에 미친 교장(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제 자연인이다. 명함의 한 면에는 화양연화 농장 대표, 또 다른 면에는 대구교육대학교 총동창회장이라는 명목상의 직함을 넣었다. 교직에서는 절차탁마라는 수업철학으로 사십 여년을 생활했다. 이제 자연인이 되었으니 다른 생각으로 살아볼까라는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절차탁마만 한 게 없었다. 자연인인 영호의 인생철학도 철차탁마이다. 농장의 이름이기도 한 ‘화양연화’는 절차탁마의 부산물이라는 생각이다. 하루 또 하루를 절차탁마의 심정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화양연화는 영호식 해석으로 ‘오늘도 참 좋은 날’일 것이다. 집에는 한자로 쓴 ‘절차탁마’의 걸개가 걸려있고, 화양연화 농장에는 십여 년 전에 후배가 만들어 준 절차탁마의 서각이 놓여 있다.

절차탁마가 영호의 수업철학이자 인생철학이 된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특별히 한자 공부를 많이 해서 굳이 어려운 절차탁마라는 사자성어를 택한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늘 김가네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구순하고 편안한 집안이었지만, 가난한 농부의 팍팍한 살림살이에 특별한 글귀나 그림이 걸려있을 리는 만무했다. 사시사철 낮이면 부지런히 논밭을 일구거나 땔감을 하고, 밤이면 홀치기를 하거나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는 게 일상이던 고향의 사계였다. 어느 집의 누가 더 부지런한지를 두부모 자르듯이 분간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참 부지런했다. 호미나 괭이 등의 농기구가 닳도록 논밭을 일구느라 고단했던 허리를 잠시 펴고 고향의 풍경이나 하늘을 보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던, 오로지 자식 잘 되기 만을 학수고대하면서 자신을 닦고 또 닦았던 부모님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글로 적어서 어디 걸어 놓지 않아도 당신의 평생이 절차탁마의 본보기가 된 삶이었다.

저마다 바쁘고 힘든 세상이지만 가끔은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좋겠다. 퇴직을 하고 가끔은 이전의 삶을 절차탁마라는 수업철학에 비추어 생각한다. 만족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은 길이었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지금부터는 절차탁마라는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영호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아쉬움을 줄이고 아쉬움을 줄인 만큼의 만족함을 늘리는 게 행복한 인생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자연인인 영호의 절차탁마하는 인생에서 만족하는 일이 곰비임비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다시 절차탁마를 생각한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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